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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변해야 산다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으로 도시환경의 위험성 고발한 박정훈PD

“‘환경의 역습’은 우리 가족의 경험에서 출발, 아내는 환기만큼은 철저히 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4. 02. 10

‘육체와의 전쟁’ ‘생명의 기적’ ‘잘먹고 잘사는 법’ 등 일상을 파고드는 다큐멘터리로 화제를 일으켜온 SBS 박정훈 PD. ‘다큐멘터리의 미다스’로 불리는 그가 2년 만에 도시의 환경문제를 다룬 ‘환경의 역습’을 내놓았다. 대기오염과 간판 공해, 중금속, 실내 공기오염까지 현대인의 주생활 근거지인 도시의 오염이 심각한 수준임을 파헤친 박정훈 PD를 만났다.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으로 도시환경의 위험성 고발한 박정훈PD

95년 ‘육체와의 전쟁’으로 비만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데 이어 자연분만의 중요성을 일깨운 ‘생명의 기적’(2000년), 채식 열풍을 몰고 온 ‘잘먹고 잘사는 법’(2002년)까지, 내놓은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SBS 박정훈 PD(43).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혹은 알면서도 참는 일상의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변화를 종용해온 그가 지난 1월3일 SBS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환경의 역습’으로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2002년 11월, 방송위원회 기획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환경의 역습’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환경이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얘기하지만 정작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환경오염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그 폐해가 결국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박정훈 PD는 국내외에서 수집한 생생한 사례와 실험을 통해 실내외 환경이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됐고, 그 폐해가 다시 인간의 몸속으로 되돌아오고 있음을 보여줬다. 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석유화학물질들의 유독성을 다루고, 2부 ‘우리는 왜 이 도시를 용서하는가’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노출된 서울시 노점상인 31명의 정자를 실험한 결과를 통해 대기오염과 간판 공해의 심각성을 보여준 것. 3부 ‘미래를 위한 행복의 조건’에서는 수은과 농약, 살충제 등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밝혀냈다.
이중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국내에는 생소한 신종 질환 ‘화학물질과민증’과 ‘새집증후군’의 존재를 알리며 현대인이 하루의 95% 이상을 보내는 실내공기의 질을 문제삼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화학물질과민증(Multi Chemical Sensibility)은 석유화학물질이 있는 공기에 노출되면 몸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상당수가 고통을 호소하는 신종 질병. 새집증후군(Sick House Syndrome)은 집안 공기를 오염시키는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일시적으로 눈과 목이 따갑고, 심하면 천식 비염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으로 화학물질과민증으로 악화될 위험이 있다.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동안 이유도 모른 채 두통 비염 아토피 등 고질적인 질환에 시달렸는데 ‘새집증후군’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글들이 이어졌다. 한 20대 직장 여성은 “새로 지은 지 6개월 된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후 두드러기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밝혔고 한 주부는 “새집으로 이사온 후 아이의 아토피 증상이 심해졌다”는 글을 올렸다. 3년째 인테리어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힌 한 시청자는 “아토피 질환에 시달려왔다. 친환경적 자재가 있어도 소비자의 관심이 적고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일반 화학자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사한 뒤 가족들에게 피부병, 기관지염 생기자 ‘새집증후군’의 심각성 절감
박정훈 PD가 이처럼 또 한번 충격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으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와 가족이 실내 공기 오염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기획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집을 옮기면서 대대적으로 집수리를 했어요. 이사를 하기 전에 집수리를 한다니까 평소 알고 지내던 환경 저술가 이진아씨가 인테리어 자재들이 몸에 안 좋다며 말리더라고요. 그런데 이왕이면 깔끔하게 새단장해 이사가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 공사를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환기를 하며 지냈는데 겨울이 되니까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머리가 띵하고, 피부가 가렵고, 기관지염까지 생기니 이거 문제가 심각하구나 싶었죠.”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으로 도시환경의 위험성 고발한 박정훈PD

박정훈 PD는 자신이 만든 작품이 사람들이 변화를 계획하는 단초가 되길 희망했다.


막연히 인테리어 자재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정도만 알고있던 그는 환경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것이 ‘새집증후군’이고, 그 원인이 벽지와 바닥재를 비롯한 내장재와 그것을 붙이는 접착제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포름알데히드는 눈 코 목 등의 점막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발암 물질로 알려진 독성 물질.
“인테리어 자재로 쓰이는 무늬목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바르는 포르말린이 유독성 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수용액(40%)이거든요. 지난번 주한미군이 한강에 무단 방출해 문제가 됐던 유독성 물질이 바로 포르말린이라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겠죠. 사실 우리가 집을 옮기면서 예쁘게 꾸미고 화려하게 치장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새옷과 새차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데 그게 바로 유독가스이고,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는 결국 새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1년 넘게 ‘환경의 역습’ 제작에 매달렸다. 지난 1년 동안 독파한 환경 관련 서적만 1백여권이 넘고, 미국과 일본 등 6개국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해 5월 취재차 일본에 갔다가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를 만난 것. ‘화학물질과민증’이라는 병명 자체가 생소한 그에게 환자들의 상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들은 석유화학 제품에 너무 예민해 화장품이나 샴푸, 심지어 비누 냄새만 맡아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때문에 그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그는 몇날 며칠을 물로만 씻어야 했다고 한다.
더욱 놀란 건 국내에도 그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면서 새집증후군이나 화학물질과민증과 유사한 증세를 겪은 사람들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방송 자막을 내보냈는데 수백 건의 제보가 들어온 것. 그는 그중 민수와 형래의 사정을 방송에 내보냈다.
중3 학생 민수는 집에만 들어오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밖에 나가면 증상이 가라앉는 희한한 질병에 시달렸고, 네살배기 형래는 인테리어를 새로 한 뒤 아토피 증상이 심해졌다. 두 집안의 공기를 조사한 결과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실내공기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한 민수네는 실내 공기를 바꿔주기 위해 환기 장치를 설치했고, 강남구에 살던 형래네는 공기 좋은 관악산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그 결과 두 아이 모두 상태가 호전됐다. 박PD는 두 가족에 대해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공간을, 더군다나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국내에는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유독성 가스를 규제할 만한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유해물질 함량이 높은 건축자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일본의 경우 유통되는 건축자재 중 90% 이상을 친환경적 자재가 차지한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국내외로 떠돌고, 한달 반 동안 꼬박 밤새며 편집, 가족들이 지긋지긋하다고 해요”
“결국 개인이 나서 집을 건강하게 짓는 수밖에 없어요.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적 제품을 사용하고, 지속적인 환기를 통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죠.”
흔히 바깥 공기가 더 오염됐다는 생각에 문을 꼭꼭 닫아두곤 하는데 24시간 동안 문을 닫아뒀을 경우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유독성 물질로 인해 바깥보다 오히려 오염도가 5배 이상 높다고 한다.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맞바람이 치도록 30분 이상씩 하루 세번 이상 환기를 시켜야 한다고. 박PD는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환기만은 철저히 한다”고 전한다. 특히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엔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는다고. 실내 공기가 오염될수록 학습능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으로 도시환경의 위험성 고발한 박정훈PD

일본의 한 화학물질과민증 환자가 유기농 야채를 싼 신문지를 벗기며 잉크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숨을 참고 있다.


그는 내놓은 작품마다 큰 반향을 일으킨다고 해서 ‘다큐멘터리의 미다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수식어가 본인에겐 적잖은 부담이라고.
“작품을 만들 때마다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이 이 정도냐’ 하는 반응을 얻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죠. 그런 생각이 정신을 무장시키는 한편 나를 불편한 상황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카메라 메고 외국 출장을 가기도 하고요.”
그는 ‘허허’ 웃지만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일에 몰두하는가를 잘 아는 가족들은 그가 새 작품을 시작한다고 하면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을 혹사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한달 반 정도는 꼬박 밤을 새며 편집 작업을 해야 하는 탓에 일을 시작했다 하면 가족들과는 ‘남처럼’ 지낸다고.
“늘상 붙어 있다고 좋겠어요? 그렇게 가끔씩 남처럼 지내야 더 애틋하죠” 하며 웃고 마는 그가 이토록 다큐멘터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방송으로 토해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는 것. “생소한 질병을 다루고, 실내·대기·중금속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느라 전작들에 비해 두 배는 힘들게 만들었다”고 토로하지만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면 그걸로 그는 만족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으로 도시환경의 위험성 고발한 박정훈PD

외국의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를 취재하고 있는 박정훈 PD(오른쪽 가운데).


그는 이번 작품을 “대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했다. 대기를 관리하는 사람에는 관련 당국의 담당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해당된다. 무심결에 타고 다녔던 자동차와 소비 문명이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 절절히 느끼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 그게 바로 이번 작품이 내놓은 문제제기이자 이 사회를 바꾸는 대안이다.
그 역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안 ‘자동차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도시인이라 당장에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고 해서 사용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1년에 최대 6000km까지만 사용하기로 한 것. 이를 지키기 위해 목동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그는 일주일에 사흘 이상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도시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라고 명명한 이런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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