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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전시회

미국 유학 마치고 돌아와 첫 가구 전시회 여는 백은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3. 10. 10

완연한 가을이다. 슬슬 집안 분위기를 가을빛으로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다. ‘앤티크’ ‘웰빙’ ‘오가닉’ 등 올가을 유행할 가구 스타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특별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건국대 백은 교수의 가구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 유학 마치고 돌아와 첫 가구 전시회 여는 백은

지난해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선 건국대 공예과 백은 교수(33)의 가구 전시회 ‘Studio Furniture’(9월24일∼10월7일 인사동 두(do) 아트 갤러리)는 기존의 대량생산 가구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느낌을 주면서도 예술작품을 관람할 때처럼 손을 대면 큰일날 것 같은 부담감이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주부들이 조용히 혼자 독서를 하거나 가계부를 쓰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은 책상과 의자, 흔히 콘솔이라고 불리는 홀 테이블, 다기 보관용으로 만들었다는 캐비닛, 서랍장, 현관에 놓으면 좋을 것 같은 소품과 조명등 등 올해 제작한 가구 7∼8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국내에서 여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명색이 개인전인데 고작 가구 10점도 안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으나 작가는 회화와 달리 가구공예는 한 작품에 한달은 꼬박 걸리는 등 제작기간이 현저히 길기 때문에 7점이 그리 적은 규모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백은 교수는 “목공예는 실생활에서 사용돼야 그 목적을 다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바라보는 것에 그쳤던 게 사실”이라며 “직접 만지고 쓸 수 있는, 그래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사용자가 불편해 하는 것은 지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일 가구들의 재료는 대부분 매우 딱딱하고 견고성이 뛰어난 북미산 단풍나무 원목을 사용했고, 최소한의 변형과 최대한의 강도를 갖도록 하기 위해 굳이 본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분리되지 않는 전통 짜임기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원목의 자연스러운 결과 색깔을 최대한 살렸고, 칠을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4백∼5백년 전부터 전통방식으로 유지방을 원료로 만든 밀크 페인트를 사용했다. 천연 소재 페인트라 피부에 자극이나 상처를 줄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목공예는 실생활에서 쓰여야 제몫 다하는 것, 낮은 가격이라도 파는 게 중요하죠”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던가. 정작 그의 집에는 그가 직접 만든 가구들이 아직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서 꼭 필요한 가구들만 몇점 구입했는데 모두 기성품으로 장만했다. 심지어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직접 고른 것이 아니라 가구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서 배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스스로 “몰상식하게 한 거죠” 하며 웃고는 “눈은 높은데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안되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앞으로는 직접 만든 가구로 집안을 채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그는 뭔가 각오를 다지는 듯하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유학 마치고 돌아와 첫 가구 전시회 여는 백은

① 키 플레이트(Key Plate). 결이 확연한 느릅나무를 사용했다. 현관에 비치해 열쇠나 지갑, 휴대전화 등을 올려놓기에 좋을 듯하다. 현관에 지나치게 육중하고, 부피를 차지하는 소품을 놓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선과 원의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해 가볍게, 공중에 뜨게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br>② 서랍장. 단풍나무를 주재료로 썼는데 서랍장 가장자리의 삼각형 무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검정색과 밝은 나무 색깔의 대비가 인상적이다.<br>③ 라이팅 데스크(Writing Desk). 주부들이 독서를 하거나 가계부를 쓸 때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서랍에 간단한 필기도구를 넣을 수 있다. 마치 양말을 신은 것 같은 의자의 다리는 토끼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흰색과 검정색 페인트를 번갈아 칠했는데 유지방으로 된 밀크 페인트를 사용했다.<br>④ 서랍장. 서랍은 앞으로 뺀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정면에서 볼 때 옆쪽에서 서랍을 밀고 당기도록 만들었다. 손잡이를 마치 동물의 귀같이 과장시킨 것은 가구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손잡이도 하나의 조형물이자 가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도.


“사실 겁이 좀 나요. 이번 전시의 첫째 목표는 뭔가 다른 걸 보여준다는 거였는데 잘 안된 것 같아요. 가구 공예 분야에는 아직까지 유학파가 많지 않아 후배들에게 뭔가 다른 걸 보여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나친 이질감은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어 그 중간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가 뭔가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일 터다. 첫째는 기존의 한국 가구시장은 유럽식 가구의 영향을 크게 받은 반면 미국에서 유학한 그가 선보일 가구들은 스튜디오 퍼니처(Studio Furniture), 이른바 미국식 공방가구라는 점이다. 유럽식 가구는 대량생산에 목표를 두고, 해마다 유행의 큰 흐름을 따르는 반면 미국식 공방가구는 디자인과 생산, 재료 선택과 단가 결정까지 작가가 모두 책임지는 작가 책임 생산제 방식이다. 따라서 작가 개인의 개성이 크게 드러나 하나의 예술품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공방가구는 생활공간에 놓였을 때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한다.
또 다른 점은 지금껏 많은 작가들이 목공예를 순수 미술품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전시품을 판매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부감마저 보여온 터라 국내에는 공예가구 시장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예는 생활 속에 들어가야 제 몫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되도록 생활문화에 접근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낮은 액수로라도 파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번 전시회로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꿔보려는 것은 아니다. 첫 개인전인 만큼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약간의 변화는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양성이 부족한 국내 목공예 분야에 작은 파장을 일으켜 앞으로 다양성을 이끌어내는 게 자신의 과제이자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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