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매 순간 서로를 좋아하고 질투하며, 동경하고 미워하는 두 친구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의 시간을 담고 있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를 연출한 조영민 감독과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송혜진 작가가 의기투합해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은중을 연기한 김고은은 넉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당당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은중의 20대부터 40대로 분해 선망하고 원망하며 삶에 영향을 끼친 상연을 절절하게 바라봤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감싸주기도, 헐뜯기도 한다. 왁자지껄 떠들어도 둘 사이에는 격류가 흐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포스터.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작품이 공개된 후 주위에서 “이런 작품을 보여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유독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저만의 착각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찡긋 웃었다.
내면 살피고 마음 도닥여주는 작품
‘은중과 상연’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나요.주인공과 시청자들 모두 함께 견뎌줘야 하는 작품이에요. 극이 진행되면서 감정 소모가 커지고 생각도 많아지거든요. 개인적으론 다루기 힘든 소재를 심플하게 풀어내서 여운이 많이 남아요. 매 장면을 신중하게 만들어갔는데, 잘 마무리 지은 것 같아 다행이고요. 특히 이번 작품은 공개 후 정말 많은 동료 배우가 연락을 줬어요. “너 때문에 수면 패턴 망쳤다” “밤새워서 봤다” 등 흐뭇한 반응이 많았죠. 많은 분이 작품성을 인정해주신 것 같아 너무 행복해요.
첫 대본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대본을 읽으면서는 은중과 상연이 함께 그려나가야 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책임감을 가지고 묵직하게 서사를 쌓아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에 촬영에 임할 때도 매 순간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은중과 상연의 이야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투, 감정 등을 더욱 정교하고 신중하게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고요.
20대부터 40대까지의 은중을 연기했어요. 각 세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 촬영이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돼 감정선을 이어가기 좋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은중의 주위 사람들과 환경이 완전히 바뀌거든요. 만약 시간대가 얽히면 몰입도가 떨어졌을 것 같아요. 20대의 앳된 모습을 찍을 때는 6kg을 증량해 볼살이 통통한 새내기의 느낌을 표현했어요. 30대와 40대 신에서는 각각 3kg씩 감량하며 외형적으로 변화를 줬고요. 30대는 사회생활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시기잖아요. 기운이나 에너지, 말투 등이 직업군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죠. 극에서 은중의 직업은 프로듀서예요. 그래서 현장을 다니고 사람들과 조율을 하는 등 활기차면서도 진중한 기운을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40대를 연기할 때는 같은 연령대의 주변인들을 관찰했던 것 같아요. 생김새, 말투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봤죠. 그런데 40대와 30대 중후반의 외적 차이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김새보다는 은중의 바뀐 직업인 작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더욱 집중했어요. 작가는 프로듀서와 달리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요. 따라서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을 전하려 했어요.
은중에게 상연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했나요.
애증의 존재지만, 그래도 애(愛)가 더 큰 것 같아요. 상연은 은중의 삶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후반부에 은중이 침대에 누워 있는 상연에게 “너 때문에 내가 망했어”가 아니라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해요. 두 사람이 항상 좋은 에너지만 주고받았다면 관계가 더 좋았겠죠. 개인적으로는 은중은 상연에게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연을 멋있고 빛이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망가지는 것 자체가 슬펐을 것 같아요.
상연을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전혀요. 은중은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고 긴 호흡을 차분하게 이끌어주는 인물이에요. 그에 반에 상연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고 연령대별로 변화가 크게 일어나죠. 대본을 받고는 ‘이 널뛰는 감정을 과연 누가 소화할까’ 생각했어요. 그 후 연기로 신뢰를 주는 박지현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뛸 듯이 기뻤죠. 원래 지현이를 좋아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 지현이를 처음 만난 건 아니에요. 2021년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지현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감독님께 “저 배우 연기 너무 잘하는데, 어떻게 캐스팅하셨어요?”라고 묻기도 했었죠. 이번에 함께 촬영하며 지현이의 진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살뜰하게 챙겨주는 동생이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집중력 있는 연기로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려요. 지현이가 상연을 너무 훌륭하게 소화해줘서 고마워요.
카메라 밖에서도 서로를 많이 챙겨줬나요.
저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지현이를 바라보고 살피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쯤이면 쉬고 싶겠다’ ‘힘들겠다’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아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현이는 제 외적인 부분을 챙겨줬어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융털 내복 같은 아이템을 “언니 이거 입어”라며 2세트씩 건네주더라고요(웃음). 제가 필요한 것들을 툭 건네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스타일이었어요.
은중이 상연을 보내주는 장면을 촬영할 땐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 신을 준비하며 상연을 웃으며 보내줘야 할지, 고생했다고 말해줘야 할지 수만 번 생각했거든요. 은중이 상연과 스위스 동행을 결심했을 때, ‘상연 앞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어요. 그래서 눈물을 계속 참고 있다가 상연이 잠든 순간에 소리 없이 터트려야 했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참느라 몸이 뻐근할 정도였죠. 그리고 상연이 잠든 후 곁에 다가갔을 때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울었던 것 같아요. 아마 지현이는 더 힘들었을 거예요. MBTI ‘F(감정형)’거든요. 지현이는 저와 눈만 마주쳐도 울더라고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을 거예요.
“조력 사망, 소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행해야죠”
조력 사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제가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하진 못해서 찬성과 반대를 논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조력 사망은 개인의 선택이지 않을까요? 다만 소중한 누군가가 동행해달라고 하면 기꺼이 함께할 거예요.
은중의 남자 친구인 김상학(김건우)으로 인해 상연과 갈등을 빚는 장면이 화제예요. 박지현 배우와의 팽팽한 연기 대결로 긴장감이 느껴졌죠. 두 사람은 상학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요.
상학이 너무 좋지 않나요(웃음)? 저는 상학이 보기 드문 안정형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은중이 저런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라는 말도 했었어요. 김상학을 연기한 김건우 배우는 대학교 후배예요. 현장에서 “나 때는 2년 차면 눈도 못 쳐다봤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라며 잡도리 좀 했죠. 하하. 지현이도 그렇지만 건우도 제가 장난치면 뭐든 잘 받아줬거든요. 건우는 상학과 닮은 점이 많아요. 성격이 너무 선하고 친절하거든요. 저랑 지현이가 장난을 치면 너른 사람처럼 받아주고, 현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어요. 건우가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어요. 내면의 섬세함과 디테일이 연기에서도 느껴지거든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현장 분위기가 시끌벅적했을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일단 조영민 감독님이 차분하고 조용한 스타일이시거든요. 현장은 어수선함 없이 큰 소리 나지 않고 묵묵하게 착착 진행됐어요. 저희끼리 감독님을 두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품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심플하고 권위의식이 없는 모습에 모두가 감탄했거든요. 감독님은 ‘은중과 상연’ 작품과 비슷한 결을 지니고 계신 것 같아요.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김고은을 비롯해 박지현, 김건우 등 연기파 배우가 출연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크게 차이는 없어요. 어느 자리에서든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있거든요.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선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경험이 주는 성숙함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이로 인해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고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의 전체적인 감정선, 디테일 등에 대해 느끼고 이야기할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느 현장에서든 사랑받는 것 같은데, 비결이 뭔가요.
(부끄러운 듯 웃으며) 알려주세요. 저도 알고 싶어요. 굳이 찾아본다면 유머 감각? 하하. 저는 현장에 웃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서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최대한 친근하고 밝게 임하려고 노력해요. 툭툭 던지는 소소한 제 유머를 주위 사람들이 잘 받아주셔서 너무 다행이고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제34회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아쉽게도 참석을 못 했는데, 이 자리에서 수상 소감 부탁드려요.
먼저 참석을 못 해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부일영화상은 제가 ‘은교’ 때 상을 받은 뒤 정말 오랜만에 불러주셨거든요. 꼭 참석할 생각에 의상도 준비하고, 스태프 스케줄까지 정리해 티켓도 끊어놓았는데 못 가게 됐어요. 이 상은 무엇보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사랑받은 것에 큰 의미가 있어요. 그해 ‘파묘’와 ‘대도시의 사랑법’이 개봉했는데, 두 작품 모두 상을 받았다는 게 너무 기쁘거든요. 또 작품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연기력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도시의 사랑법’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요즘 고은 씨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있다면요.
현장이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현장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 기운이 제 일상까지 이어지는 것 같거든요. 또 스스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도 느껴지고요. 그래서 매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겁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물론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해선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서도 배우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죠. 즐거운 현장에서 만든 좋은 작품이 인정받을 때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 정말 큰 것 같아요.
#김고은 #은중과상연 #넷플릭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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