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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사과 한 상자로 아픈 지구에게 사과하는 법

수익금 기후 행동에 쓰이는 ‘지구에게 사과해’ 출시

문영훈 기자

2024. 06. 05

수익금 전액이 기후 행동에 쓰이는 사과 브랜드가 등장했다. ‘지구에게 사과해’는 기후 행동 기업이 오마이어스가 사과 재배 농가와 유통회사와 협력해 출시한 사과 브랜드다. 경북 지역의 ‘못난이 사과’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은 기후 테크 기업 지원 등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지구 위한 마음 담은 사과 한 상자

3월 사과 한 알 가격이 5000원에 달하며 ‘애플레이션(apple+in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사과 가격 상승은 기후 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장마철, 기상 관측 이래 세 번째를 기록한 강수량과 폭우까지 동반되며 사과 생산량은 급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전망 2024 보고서’에 따르면 농가 고령화와 이상 기후 등의 추세가 지속되면 2033년까지 9년 동안 사과 재배면적 2900㏊(8.6%)가 줄어든다.

오마이어스는 지구 변화의 상징인 사과를 통해 지구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브랜드 이름을 정했다. 경북 지역에서 생산되는 ‘못난이 사과’를 판매한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생산된 부사로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도 높지만 일부 홈이나 변색, 벌레가 먹은 흔적으로 정품으로 출시되지 못한 사과를 말한다. 이중 14브릭스의 높은 당도의 ‘맛난이 사과’를 골라 3㎏와 5㎏ 두 종류로 출시한다. 오마이어스 관계자는 “사과가 기후 위기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상황과 기후 행동을 연관 지어 소비자가 환경 운동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자 했다”며 “흠이 있는 사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와 농가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과 판매로 마련된 수익금은 기후 테크 기업 지원 등 전액 기후 행동을 위해 쓰인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제고라는 취지에 맞게 포장재도 친환경 제품으로 만들었다. 종이 박스, 내장재, 인쇄물, 테이프 등 모든 포장 재료에 생분해 효율이 높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했다. 이중 테이프는 오마이어스가 직접 개발한 상품으로 물에 녹는 알칼리 해리성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기후 행동은 힙하다”

‘지구에게 사과해’ 브랜드를 만든 오마이어스는 ‘기후 행동 문화 기업’을 표방하며 2020년 탄생했다. 서울 충무로 일대에 저탄소 문화복합공간 어스돔을 운영하며 공공기관, 기업 등과 함께 다양한 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지구 온도 상승 1.5℃를 막기 위한 비밀 요원 ‘마이’와 ‘어스’ 캐릭터 IP(지적재산권)를 이용해 뮤지컬 ‘핑크버블의 습격’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 콘텐츠를 통한 기후 위기 인식 제고와 함께 특별한 사과 브랜드까지 출시한 김대일 오마이어스 대표를 만났다.

기후 행동 기업, 오마이어스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2012년 중국 베이징에 산 적이 있어요. 8차선 건너편에 아파트가 한 달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모그가 심했죠. 한국에선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디스토피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자연스럽게 환경과 기후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에 돌아오면 기후 변화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후 변화와 문화를 연결했습니다.
기후 위기는 보통 무겁고 우울한 주제처럼 보이잖아요. 때로는 시위의 형태로 과격하게 표현되기도 하고요. 저는 기후 위기를 다정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알리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문화 콘텐츠의 힘이 필요했죠. 처음엔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예술가와 함께 연대하기 시작했어요.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함께 소개할 공간을 만들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작품의 담긴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오마이어스가 운영하는 어스돔은 어떤 공간인가요.
단순히 멋있고 예쁜 카페를 만들자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재지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 과정을 통해 기후와 환경을 이야기하는 아고라로 탈바꿈 시키고자 했어요. 카페 영업시간이 끝나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기후와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축제나 전시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레퍼런스가 많이 쌓이다보니 환경을 생각하는 분들이 문의를 많이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님이 운영하시는 생명다양성재단 10주년 행사를 이곳에서 열었어요.

환경 관련 뮤지컬도 제작했는데요.
기후 변화를 맞닥뜨려야 할 세대는 어린 아이들이잖아요. 3년 전 아이들을 위해 기후변화 1.5℃ 상승을 막는 요원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뮤지컬 ‘핑크 버블의 습격’이 탄생했습니다. 김문정 음악 감독님이 참여하시면서 정말 좋은 작품이 나왔고 긍정적인 후기도 많이 받았어요. 올해 겨울 시즌에 다시 상연하고, 동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들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지구에게 사과해’는 기존 문화 기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강원도 양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요즘 강원도 사과 농가가 정말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사과하면 경북이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사과 농가가 점점 북상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지구에게 사과해’라는 브랜드를 떠올렸습니다. 사과로 기후 변화의 경각심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친환경 패키징을 사용하고 디자인도 등고선을 이용해 사과 농가 북상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수익금은 기후 활동에 쓰신다고요.
소비자들에게 기후 변화를 알리면서 수익금도 의미 있는 곳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후 문제와 관련된 벤처캐피털 등을 이용해 기후 테크 기업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행사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요. 저희는 사과 전문 유통기업은 아니어서 브랜드가 만들어지어지고 출시에 이르기까지 사과 유통업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사과 농가도 저희가 추진하는 행사의 취지를 이해하시고 동참의 의미로 마진을 남기지 않고 사과를 제공해주고 계십니다.

문화와 기후를 연결시킨 사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후 문제를 콘셉트로 잡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거다’ 생각하는 시선도 있었고요.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3~4년간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게 일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반응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환경과 관련된 기획을 해달라고 먼저 제안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기후 위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최근엔 한국도 기후 변화로 폭염과 폭우가 매년 반복되는 등 많은 분들이 실제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친환경이 아니라 필환경의 시대가 된 거죠. 또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최근에는 돈을 아낄 수 있는 금융상품도 많이 출시됐어요. 이제는 환경을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갖는 게 돈도 절약하면서 멋지게 사는 일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오마이어스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국은 콘텐츠 강국이잖아요. 문화 콘텐츠를 통해 기후 변화라는 전 세계적 문제 해결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여기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현대인으로 살면서 지구를 위해 해외여행도 가지 말고 자연인처럼 살아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거든요. 다양한 행사와 기획을 통해 작은 습관의 변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기후 행동을 삶의 중심으로 두는 것 자체가 즐겁고 힙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하면 탄소 배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도 발맞춰서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오마이어스 #지구에게사과해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오마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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