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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농안법 개정되면 밥상 물가 치솟고 농업 망한다”

문영훈 기자

2024. 05. 23

양곡관리법·농안법 개정안이 5월 29일 종료되는 제21대 국회의 마지막 쟁점 법안이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해당 법안이 밥상 물가에 미칠 영향을 알아봤다.

최근 10년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연평균 2.2%씩 감소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연평균 2.2%씩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뜨거운 감자’였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살아 돌아왔다. 지난해 최종 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일부 내용이 달라진 채 올 4월 18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본회의 직회부 의결이 결정되면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최종 부결된 바 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역시 함께 본회의에 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농안법 개정안으로 급격한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작물 다양성 감소 등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한국 농업에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도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농안법이 아니라 ‘농망법’”

4월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무기명 투표하고 있다.

4월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무기명 투표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하락 시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사들이도록 하는 쌀 의무매입제 도입이 핵심이다.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지난번 법안은 “쌀 초과생산 3~5% 이상이거나 햅쌀이 나오기 직전인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했을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 초과 생산량을 매입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뀌었을 뿐 큰 틀에서는 유사하다.

함께 직회부된 농안법 개정안은 양곡, 채소, 과일 등 농산물 시장 가격이 기준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을 정부가 보전하는 농산물가격안정제가 중심이다.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가 매년 대상 품목, 기준가격, 차액의 지급 비율, 적정 재배면적·생산량 등을 심의·의결한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는 ‘법의 목적’으로 “생산자의 이익을 보호하며 양곡의 적정한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식량안보와 식량자급률을 제고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농가소득을 보전해 농촌을 살리겠다”는 야당의 취지는 언뜻 그럴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산 효율성과 농업 발전 면에서 모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정부와 학계의 중론이다.

우선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관리법과 농안법이 개정되면 연 3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기준 1조2266억 원의 쌀 매입비가 든다”고 밝혔다. 여기에 연간 4000억 원의 보관비까지 얹어진다. 농산물가격안정제에도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 한국농업경제학회 분석에 따르면 품목별 평년 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정해 시장가와의 차액을 지원하면 고추·마늘·양파·배추·무 5대 채소에만 연 1조2000억 원이 소요된다.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예산은 더 불어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으로 3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10년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연평균 2.2%씩 감소했으나 생산량은 0.7%씩 감소하는 데 그쳤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상황에서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2030년 기준 쌀 매입비는 2조7000억 원, 보관비는 5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문제는 예산 소요에 비해 농가를 살리는 효과는 적다는 것. 정부가 쌀을 매입하면 쌀농사를 짓는 농가가 늘어나고 결국 쌀값이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는 쌀값 하락에 따른 농민 피해를 보전하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운영했는데, 당시 전체 면적의 30% 수준이었던 쌀 전업농 경영 면적 비율은 2017년 58%까지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농안법에 따라 농산물가격안정제가 시행되면 특정 품목 쏠림현상이 벌어져 농산물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부의 의도적인 개입이 시장 상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셈이다. 두 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되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쌀 의무매입제와 농산물차액지급제는 한국 농업을 망치는 ‘농망법’”이라고 말했다.

농가의 수요 예측 기술도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술적 숙련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농산물가격안정제 대상 품목으로 생산 작물을 전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별 농가는 시장 수요에 맞춰 작물을 선택하는 능력을 갖춰야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농민들이 스스로 시장성을 판단해 작목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점점 약해지고 결국 농업 전체에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진단했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한다. 매년 농산물가격심의위원회가 대상 품목과 기준가격을 정하는 과정에서 개별 농가와 농업계, 정부와의 갈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농안법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제도 시행 대상이 아닌 타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업경영지원시스템에 포함된 양곡, 채수, 과수만 400개가 넘는다”며 “매년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 대상 품목 제외된 작물 가격 널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안법 개정안으로 일부 품목에 대해 기준가격과의 차액을 지불하게 되면 장바구니 물가, 특히 밥상에 올라가는 농작물의 가격은 널뛸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일부 농산물에 대한 가격을 보장할 경우 영농 편의성이 높고 보상 기준이 마련된 농산물로 생산이 집중되고 나머지 농산물은 생산이 줄어 가격이 치솟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농안법이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더욱 얇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한두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은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돼야 하는데 농안법은 정부가 나서서 특정 농산품에 대한 일정 가격을 지지해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농산물가격안정제 대상 품목으로 정해진 농산물로 재배가 쏠리면 그렇지 않은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대상 품목이 아닌 상품 가격은 불안정성을 띠게 되고 결국 시장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커져 농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물가 인상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외식업계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국외식산업협회는 “농산물가격안정제로 특정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그 외의 품목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우리 외식업체들은 더욱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농안법 개정안의 신중한 접근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역시 “외식업계는 농축수산물 및 인건비 등의 급등으로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정부의 불필요한 재정 지출과 특정 농축수산물 가격 폭등이 예상되는 농안법 개정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 의무매입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양질의 쌀이나 잡곡을 먹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정부가 쌀을 매입해주면 재배가 까다로운 고품질 쌀이나 잡곡 대신 일반 쌀로 작물을 전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농업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농림어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농가 수는 99만 가구로 집계 이래 처음 100만 가구 이하로 떨어졌다. 농업 인구 고령화로 생산 농가는 줄고 농산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농가소득은 불안정한 상황. 실질적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봉책이 아닌 효율적이고 본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쌀 공급과잉을 막고 수입 농작물의 대체 생산을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 중이다. 논에서 벼 대신 밀,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업인에게 지급하는 직불금이다. 그 외에도 농촌 고령화를 막고 농업의 현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청년농·스마트팜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매년 쌀 의무매입제와 농산물가격안정제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 청년농 유입 정책, 친환경 농업 등 다양한 정책 지원 예산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연 교수는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개정안의 통과는 한국 농업에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한국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작물 다양성을 보장하고 고령화된 농촌에 청년 인구를 유입하게 해주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두봉 원장은 “쌀 등 특정 작물에 대한 지원 대신 모든 농가에 일정하게 적용되는 직접지불제나 수입보장보험 등의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며 “생산량과 가격을 의도적으로 조절하지 않고도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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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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