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양옥을 리모델링한 호호식당 성수는 일본 가정식 맛집이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수인분당선 서울숲역 사이, 삼각형 꼭짓점에 위치한 호호식당은 패션, 미술,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성수동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성수대교와 영동대교 북단에 위치한 성수동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죽·피혁·봉제 공장, 자동차 정비소, 고물상, 물류 창고 등이 즐비하던 준공업지대였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로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한때 대한민국 구두의 80%를 책임졌던 1000곳에 달하는 수제화 공장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무너지고, 수입 신발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 동네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성수동은 풍부한 문화, 상업 콘텐츠와 MZ세대 유동 인구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에서 힙한 지역이 됐다. 뜨고 싶은 기업들은 성수동에 팝업스토어와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하고, 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올 상반기 성수동 일대 부동산 가격 상승률, 서울 평균의 2배
성수동 건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벽화(왼쪽). 아직 준공업지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로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토대로 올해 초부터 5월 22일까지 서울 핵심 지역의 제1·2종 근린생활과 판매·숙박 등 상업 시설의 평균 매매가를 분석한 결과, 3.3㎡당 8927만 원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던 2020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5.5% 오른 수치다. 그런데 MZ세대 ‘핫플’로 떠오른 성수동1·2가 일대의 평균 매매가는 3.3㎡당 1억3240만 원으로, 2020년보다 62.5%나 상승했다. 성수동 일대 부동산의 매매가가 서울 평균의 1.5배이며, 상승률은 2배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호호식당 바로 옆 대성갈비처럼 예전 성수동의 향수를 간직한 노포도 있다. 공장이 밀집해 있던 시절, 노동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쌓인 피로를 풀던 이곳은 지금은 웨이팅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맛집으로 거듭나 성수동 메인 스트리트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쇠퇴하던 공장지대가 감성 넘치는 핫플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성수동은 종종 미국 브루클린과 비교된다. 과거 산업단지, 물류센터 등이 밀집해 있던 브루클린은 1960년대 관련 산업이 쇠퇴하면서 흉물스럽게 방치됐으나, 맨해튼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아틀리에, 디자이너 작업실 등이 자리하는 개성 넘치는 동네로 탈바꿈했다. 빨간 벽돌과 녹슨 철문 등 오래된 공장의 외관은 물론 콘크리트 내부, 주인이 두고 간 기계와 가구까지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의 일부로 활용한다는 점도 닮았다. 물류 창고를 카페로 개조한 성수동의 터줏대감 대림창고, 염색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로 활용되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할아버지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언더스탠드에비뉴는 성수동 물류 창고의 상징이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창조적인 공익 문화공간이다.
김학렬 소장은 성수동 일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권이 빠르게 형성된 이유가 바로 준공업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지식산업센터 같은 젊은 층 유입이 많은 시설이 들어선 점도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
“아파트나 소규모 주택들의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지역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수동은 공장지대였기에 각각의 부동산 규모가 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이해당사자들도 상대적으로 적었죠. 수도권 노후 공업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공장주들도 부동산 가격이 올랐을 때 팔고 나가는 게 이득이었고요. 그래서 큰 공장들은 지식산업센터, 작은 공장들은 카페나 식당 또는 상가로 바뀐 사례가 많습니다. 일반 주택이나 빌라는 건물 전체를 상가로 용도 변경한 경우도 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지하를 상업 시설로 바꾸거나 주차장 부지를 활용한 사례도 있고요.”
힙해지고 싶으면 일단 성수동으로 가라!
컨테이너 박스를 건축에 활용한 언더스탠드에비뉴(왼쪽)와 창고를 리모델링한 성수동의 터줏대감 대림창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학렬 소장. 김 소장은 이번 달부터 ‘빠숑의 부동산 맛집’ 연재를 함께한다.
메가박스, 큐브 엔터테인먼트, 드림티 엔터테인먼트 등에 이어 지난해 SM이 성수동으로 옯기며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새로운 아지트가 됐다. 미술관도 평창동에서 삼청동, 한남동을 거쳐 지금은 성수동 시대다. 디뮤지엄, 그라운드시소 성수, 더페이지갤러리. 피어 컨템포러리 등 크고 작은 미술관과 복합문화공간들이 속속 이곳에 들어서 강력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한때 핫플로 이름을 날렸던 가로수길, 경리단길 상권이 예전만 못한 데 반해 성수동은 날로 핫해지고 있다. 김 소장은 “성수동은 다른 상권과 비교해 입지가 각별하다”고 말한다.
“지하철역 2개를 끼고 있고, 평지기 때문에 확장성이 좋습니다. 그리고 건국대학교와 한양대학교가 인접해 있어 젊은 층 고정 유입 인구가 많죠. 무엇보다 여기는 저층 공장지대였던 게 호재죠. 경리단길은 원래 상업지역이었고, 가로수길도 오피스와 상가가 있던 곳인데 반해 성수동은 공장지대였어요.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어서 초반에 들어온 사람들이 버티다가 나중에는 비싼 돈(임대료·매매가)을 지불할 수 있는 대기업, 세계적인 명품 기업들이 들어왔거든요.”
여기에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넘사벽’ 부촌이 됐고, 상권도 더욱 탄탄해졌다. 맨해튼을 마주 보는 브루클린 워터프런트 지역, 윌리엄스버그에 고급 주상복합건물과 콘도들이 들어서 고급 주거지역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인 공장지대가 고급 상권과 주거지로 변한 데는 서울숲의 영향도 크다.
“서울숲은 원래 뚝섬경마장이 있던 곳인데, 한국마사회가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공간이 생긴 거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 파크 같은 도심 속 공원을 목표로 서울숲을 조성한다고 했을 때 이 좋은 부지에 왜 공원을 만드냐면서 반대도 많았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숲이 이 지역의 엄청난 가치 상승을 이끌어냈죠.”
삼표레미콘 공장 철거, 중랑천 건너편도 호재
팝업과 플래그십스토어의 성지 성수동에서도 단연 존재감을 자랑하는 디올 성수.
성수동 한강변에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와 갤러리아포레 등 고급 주상복합이 위치하고 있다.
쉬지 않고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음 대신 리모델링 공사 소리로 가득한 성수동. 이곳의 힙한 감성과 비싼 땅값의 정비례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하다.
#성수동 #브루클린 #디올 #여성동아
도움말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언더스탠드에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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