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랑 맞습니다. 근데 저도… 제가… 누가 될지 모릅디다.”
정이랑은 유튜브 채널 ‘정이랑의 진기명기’에서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오가며 말 그대로 ‘자아분열 쇼’를 펼치고 있다. 2007년을 배경으로 한 ‘쇼팽 휘아노 학원’의 원장 선생님부터 숙녀복 전문 판매점 ‘김점숙 부띠끄’의 주인까지. 표정, 말투, 액세서리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완벽한 고증으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정이랑의 제 N의 전성기는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5년 9월,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출연해 ‘랑데뷰 미용실’에 놀러 온 속옷 방문 판매원 역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고 해당 영상은 조회수 286만 회를 넘어섰다. 이어 11월에는 쿠팡플레이 ‘자매다방’에서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는 다방 주인으로 등장해 “신의 경지다” “미치도록 잘한다”는 반응을 얻었다.
2005년 SBS ‘웃찾사’로 데뷔한 그는 2008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돼 가수 박정현을 모사한 ‘방정현’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인기가 잦아들며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걷는 기분”을 느꼈다고. 이후 2012년 ‘SNL코리아’(이하 ‘SNL’)에 합류하며 ‘욕쟁이 할머니’ ‘레드준표’ ‘장첸’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사랑받았다. 정이랑은 “어떤 연기든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며 “특히나 ‘쇼팽 휘아노 학원’은 가장 자신 없었던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즐겁게 연기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다”며 연기 철학을 드러냈다. ‘증~말 으뜸’인 것은 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쇼팽 휘아노 학원’ 자신 없었어요
제 N의 전성기를 실감하시나요.일 시작한 이래 이렇게 바쁜 건 15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부터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이런 시국에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말 그대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요즘입니다.
댓글 반응도 뜨거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초반에는 나쁜 반응이 있을까 봐 무서워서 댓글을 못 읽었어요. 지인들이 캡처해서 보내주는데, 반응이 좋아서 뿌듯하더라고요. 특히 ‘쇼팽 휘아노 학원’ 영상에 “이걸 보려고 일주일을 기다린다” “아이와 함께 본다”는 댓글이 있으면 정말 힘이 돼요.
‘쇼팽 휘아노 학원’ 원장님은 참고한 인물이 있나요.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게 소원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을 못 다녔거든요. 당시 분위기를 알지 못해 대본을 받았을 때 도무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제가 제작진한테 “이 역할을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제작진이 역할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저를 믿어준 덕분에 좋은 반응이 있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맹꽁이 아가씨”라며 학생을 부르는 장면이 재밌었어요.
그건 제 경험담이에요. ‘김점숙 부띠끄’ 옷 가게 사장인 ‘김점숙’ 캐릭터는 제 친구 어머니를 모티프로 한 건데요. 그분이 예전에 저를 “맹꽁이 아가씨”라고 부르곤 했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콘텐츠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김점숙 부띠끄’도 반응이 뜨거워요.
시작은 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였어요. ‘랑데뷰 미용실’에 놀러 온 아줌마 역할을 맡았는데, 그냥 놀러만 오면 좀 심심하잖아요. 예전에는 미용실에 화장품이나 속옷을 방문 판매하시는 분들이 있었잖아요. 수지가 미용실 사장님이고, 제가 미용실에서 기능성 속옷을 파는 역할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수지도 “너무 재밌을 것 같다”며 흔쾌히 화답해줘서 의류를 판매하는 ‘김점숙’ 캐릭터가 탄생했죠. 이후 그 세계관을 제 유튜브 채널 ‘정이랑의 진기명기’로 옮겨와 ‘김점숙 부띠끄’로 선보이고 있어요.
‘자매다방’에서 이수지 씨와의 케미도 화제예요.
‘자매다방’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오래 준비해온 프로그램이에요. ‘랑데뷰 미용실’을 먼저 공개한 뒤 반응이 좋았던 시점에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죠. 두 콘텐츠 모두 기본적인 대본은 있지만, ‘자매다방’은 토크쇼 형식이라 게스트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예측하기 어려워 애드리브가 많은 편이에요. 수지랑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즉흥적인 교감이 자연스럽게 오가고 그게 재미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두 분의 연기력이 놀라워요.
수지는 대본을 보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 잘 놀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편이라면, 저는 걱정이 앞서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가능한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워 연기에 들어가요. 그런데 수지도 막상 연기가 끝나면 후회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전에 충분히 연구한 만큼 현장에서는 후회 없이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끝난 뒤에는 되도록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해요.
서울 출신인데 ‘자매다방’에서 완벽한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어요.
사실 완벽하지 않다는 반응도 많아요(웃음).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다만 남편이 부산 태생이라서 경상도 사투리가 무의식적으로 밴 것 같아요. 수지는 특히 대구 사투리를 잘하니까 그 결에 맞춰서 저도 말투를 설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인물을 참고해서 사투리를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면요.
친한 네일 숍 언니가 있는데 대구 사투리를 쓰면서도 말투가 사근사근하고 애교가 많아요. 그래서 전화를 걸어 “직접 만나서 대사를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표현을 쓰는지” 물어봤어요. 그 대답들을 녹음해 반복해서 들으며 말투를 익혔죠.


정이랑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정이랑의 진기명기’에서 ‘쇼팽 휘아노 학원’ ‘김점숙 부띠끄’ 등의 콘텐츠로 다양한 ‘부캐’를 선보이고 있다.
“증~말 으뜸” 제가 들어도 재밌어요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꾸셨다고요.여섯 살 때부터 사람들한테 “난 탤런트가 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엄마 앞에서 책을 읽으며 구연동화 하듯 연기하던 기억도 있고요. 공채 탤런트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제가 성인이 될 즈음엔 공채 탤런트 제도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극단을 알아보던 중, 당시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시트콤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재미 위주의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박승대 극단에 들어가게 됐죠. 그 후에 MBC 공채 개그맨이 됐어요.
개그맨이 된 이후에 정극 연기에 대한 갈망도 있었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 당시 MBC ‘웃고 또 웃고’에서 가수 박정현 씨 모창을 하는 ‘방정현’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신인상도 타고 소속사에도 들어갔어요. 모든 게 탄탄대로 같던 때도 잠시, 금방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거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늦은 시간대 방송이다 보니 사람들 기억에서 금방 잊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기회가 마지막이 되진 않을까’ ‘그만둘까’ 하는 고민도 많았어요. 그러다 ‘SNL’에 합류하게 됐는데, 정극 연기와 코미디 연기를 반반씩 할 수 있어 연기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아요.
‘SNL’을 하면서 가장 성장했다고 느낀 점은요.
사실 아직도 제 연기력이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다만 예전에는 카메라 앞에 서면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하면서 계산도 많고 고민도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기본 틀만 탄탄히 잡아두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해보려고 하죠. 연기력이 늘었다기보다 연기할 때 훨씬 편해졌어요.
‘욕쟁이 할머니’로 큰 사랑을 받으셨어요.
반응이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SNL’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건 아니에요. 코미디언이 되면서 기도할 때 ‘눈만 깜빡이고 숨만 쉬어도 웃기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대사 한마디 없는, 존재감이 미미한 역할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표정만으로도 웃겨야겠다’고 결심했죠. 카메라 앞에서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내가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잡았어요.
최근 김원훈 씨와의 호흡도 화제예요.
원훈 씨는 저랑 비슷하게 준비와 연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천부적인 개그 감각도 있고요. 그래서 사전에 “우리 이렇게 해보자”고 약속을 많이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웃기다” “진짜 재밌다”는 말이 계속 나와요. 그만큼 서로 재미있게 맞춰가는 편이에요.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요.
요즘은 ‘김점숙 부띠끄’나 ‘쇼팽 휘아노 학원’처럼 친근한 아줌마 역할이 특히 좋아요. 사실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인물이에요. 그런데 주변에서 “너만 아는 아줌마 흉내 내면 재미없다”는 말을 많이 해서 시도하지 못했죠. 그런데 아줌마 역할에 “증~말 으뜸이야” 같은 말투를 더하니까 제가 들어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보는 분들도 그 재미를 함께 느껴주시지 않을까 싶었죠. 하고 싶었던 연기를 통해 사랑을 받고 있어 행복합니다.

일도 육아도 ‘후회 없이’ 해요
남매를 두고 계신데 아이들은 엄마의 연기를 보나요.‘SNL’은 못 보게 해요(웃음). 대신 요즘 하고 있는 ‘쇼팽 휘아노 학원’은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따뜻한 정이 담겨 있어서 아이들이 보면서 깔깔 웃더라고요. “엄마 너무 재밌다”고 직접 말해주기도 하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의 반응에 힘이 나겠어요.
제가 일이 없을 때는 큰딸 샤론이가 ‘감독’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엄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제가 너무 바빠져서 얼굴을 자주 못 볼까 봐 걱정된다며 “속상하다”고 말해요. 그래서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건지, 미안해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좀 복잡해요(웃음).
집에서는 어떤 엄마인지 궁금해요.
일이든 육아든 후회 없이 하려고 해요. 틈이 나면 아이들과 놀러 가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쌓으려고 하고요. 여유가 조금 생기면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해요.
코미디에 이어 드라마나 영화 활동까지 기대해도 될까요.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아파트’를 촬영 중이고요. 영화 ‘우리 아빠 좀비’와 ‘어쩌다 셰프’에도 작은 역할이지만 출연하게 됐어요. ‘SNL’이나 유튜브에서는 어떻게든 시청자분들께 인상 깊은 코미디를 보여드리는 데 집중했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작품 속에서는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연기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오히려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웃음). 너무 많은 캐릭터를 해서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태거든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나 “이런 연기가 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다면 DM이나 댓글로 전달해주세요. 잘 반영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볼게요.
#정이랑 #진기명기 #SNL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유튜브 ‘정이랑의 진기명기’ 캡처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