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올 8월 수필집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를 내는 등 부캐 ‘커플 매니저’ 역할에 충실했던 묘장 스님이 최근 ‘나는 절로’ 실무에서 손을 뗐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이자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일을 맡게 됐다.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이 일복이 많은 법. 국제구호협력기구 더프라미스 이사장이기도 한 묘장 스님의 본캐는 국제 구호 전문가다. 재난 현장이라면 어디든 간다.
지금도 묘장 스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묘장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는 서울 회기동 연화사 주변 대학교 학생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묘장 스님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묘장 스님은 유튜브 채널 ‘나는 절로 묘장 스님’을 운영하며 라이브 방송도 하고 있다. 몸이 2개여도 모자란 그를 만나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계사를 찾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묘장 스님이 대웅전 앞에서 포즈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묘장 스님은 “내 MBTI 성향이 INTP다. INTP가 내향적이라 나서는 걸 안 좋아하지만 막상 주목받는 자리에 가면 잘한다”며 웃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직 업무 파악이 다 안 끝났어요. 기획실이 조계종의 모든 일에 관여하다 보니 다 잘할 생각은 포기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을 실어주려 합니다. 다만 예전에는 내 스케줄을 내가 조절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계획대로 안 돼요. 그래도 얼른 적응하려고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얼른 이 안에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아 여기 맞춰 살아야죠.
‘나는 절로’가 드디어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어요.
결혼을 확정한 세 커플이 다 인사를 다녀갔어요. 주례 없는 결혼이라 따로 요청은 없더라고요(웃음). 대신 제가 족자로 만들어둔 저만의 주례사를 보내주려 합니다. 언제나 사랑할 수 있는 법과 행복에 대해, 다툼을 만들지 않는 법에 대해 적었어요.
신청률이 저조하던 ‘나는 절로’를 살려낸 비결이 뭔가요.
결혼은 본능이에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바뀌어요. 다만 조금 젊은 나이에 결혼하면 더 좋겠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본인의 커리어가 높아지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요구조건도 많아져서요. 그래서 신청자 연령대를 좀 낮췄어요. 무엇보다 예전에는 ‘만남 템플스테이’에서 템플스테이가 더 중요했어요. 강의를 2시간씩 하고 밤 9시면 재워서 아침 일찍 108배를 시키니 기운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불필요한 건 다 빼고 짝을 찾는 목표에 집중했어요. 절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늦게까지 개방하고 간식도 떨어지지 않게 챙기니까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여기에 함께 버스 타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아름다운 사찰에 여행 가는 듯한 설렘을 살리려고요. 비록 저의 소임이 바뀌었지만,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우려고 해요.
묘장 스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우리 삶에는 늘 행복과 불행이 함께합니다. 살다 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만큼 어렵고 힘든 고난이 따라올 텐데, 그럴 때면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거예요. 결혼해서도 자신의 역할을 배우자로만 한정하지 말고 때로는 다정한 친구이자 때로는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가가 되고, 때로는 용기와 힘을 북돋는 응원단장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매 순간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곁에 있어준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겁니다.
사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스님이 잘 알까’ 의심했습니다(웃음).
누구나 욕망이 있잖아요. 홀로 조용히 있고 싶은 것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것도 다 욕망이에요. 그런 욕망들이 충돌한 지점에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거죠. 그래도 저는 결혼해서 자녀를 갖는 삶을 추천합니다. 독신으로 지내다 노후를 맞은 분들을 많이 상담하는데, 희망이 없대요.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는 우리 같은 삶을 살 게 아니라면 ‘재가(在家)’를 하라고 합니다. 불교에선 집을 중심으로 집을 나가면 출가(出家), 집에 있으면 재가로 나눠요. 출가는 소유에서 떠나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고, 재가는 집에 있는 것이니 결혼해 자녀를 갖고 사회적인 역할도 하고 집에서 할 도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예능 ‘나는 솔로’에서 영감을 얻어 지난해 ‘나는 절로’로 이름을 바꿨다. 올가을 드디어 부부가 탄생했다.
열린 불교의 매력 MZ 저격
평소 TV나 인터넷, SNS를 가까이하시나요.연화사에는 TV가 없어요. 대신 휴대폰과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도 하고 모금을 위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도 합니다. 젊은 친구들과 소통할 때는 저도 젊어지는 듯해 기분이 좋아요. 특히 SNS를 보며 젊은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제가 기획한 콘텐츠들이 그래서 더 호응을 얻은 게 아닌가 싶어요.

연화사에서 열린부처님 생카의 굿즈.
불교는 항상 열려 있었어요. 부처님 당시부터 보면 사찰은 시내 중심지에 있었어요. 그만큼 대중과 함께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은둔’의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젊은 사람들 곁으로 더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주목받지 못했죠. 그러다 SNS를 통해 젊은 층이 우리가 했던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석가탄신일에 열린 ‘부처님 생카(생신 카페)’는 지난해에도 했었거든요. 그땐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올해 한 유튜버가 SNS에 올린 행사 예고 게시물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20·30대 여성들이 수천 명 다녀갔어요. SNS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저도 요즘 SNS를 활용한 콘텐츠를 준비 중이에요.
지금의 관심을 이어가려면 고민이 되겠는데요. 계속 재미있는 행사만 벌일 순 없잖아요.
여러 가지 신경을 써야겠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불교만의 매력이 또 있어요. 불교는 막 당기지 않아요. 부담 없이 절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둘러보고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어요. 다른 곳처럼 외부인에게 말을 걸지 않거든요. 제가 요새 불자들이나 스님들에게 하는 얘기가, 따뜻한 무관심을 보여주라고 해요. 본인이 요청할 때 도움을 주고 환영해주자고요.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으로서 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기획실장은 종단의 예산과 홍보, 대관, 감사, 법무 업무까지 관장하는 소임입니다. 우선은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살필 계획이에요. 업무가 안정되면 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하는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다만 할 일이 많아져서 재난이 발생할 때 가기가 힘들어졌어요. 무척 아쉬운데, 더프라미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계속해야죠.
재난 현장 봉사자들도 트라우마를 겪잖아요. 멘털이 강한 편인가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트라우마로 남기도 해요. 특히 10년 정도 도운 미얀마에 대지진이 났을 때는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때는 몇 군데 돌아보다가 더는 못 보겠다고 했어요. 제일 무서운 건 쓰나미예요. 피하지 못해 90% 이상 사망해요. 그런 재난 현장에 갔다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한국이 정말 좋은 사회구나 느껴요. 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사는 게 힘들죠. 역시 힘들고 안 힘들고의 결정을 하는 건 마음이에요. 내 마음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훈련이 명상이에요.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에 집중하면 평화로운 상태가 돼요. 5분만 해보세요.
“잘하려 하기보다 잘 쉬는 법을 배우세요”
사회 활동을 바쁘게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중심은 어떻게 잡나요.일단 제가 바쁜 이유는 저녁 시간에 고요함을 갖기 위해 일을 몰아서 하니까 남이 보기에 더 바빠 보이는 거예요(웃음). 평소 명상을 하기도 하지만 고요함이 주는 기쁨이 있거든요. 밤에는 전화도 잘 안 받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수행을 하거나 글을 써요. 매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꼭 갖고, 무슨 일을 하든 저의 모든 판단 기준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항상 고민해요. 그래서 지금도 부처님 생애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연화사에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겠네요.
요새 학생들은 “차 한 잔 줄까요?” 그러면 거절하질 않아요. 제가 한 마디를 하면 서너 마디를 합니다. 저는 의도치 않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죠(웃음). 듣다 보면 다들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지, 길을 찾는 방법을 다 알더라고요. 다만 저는 청년들에게 잘하려 하기보다 잘 쉬는 법을 배우라고 권합니다. 마음이 지쳤을 때는 산새 소리, 절의 풍경 소리에도 위로받을 수 있어요. 거창한 운명이나 특별한 인연을 기다리기보다 매일 조금씩 마음을 돌보고 가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불교의 수행은 특별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을 살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거든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출가한 묘장 스님의 20대는 어땠나요.
제 20대는 수행자의 삶을 시작한 시간이었죠.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지냈어요. 군대 가기 전 학생 법회를 보러 서울에 갔다가 그제야 뒤늦게 유행이 지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들었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초짜’의 기운이 가득했지만 나름대로는 어떻게 하면 더 수행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간이었어요. 특히 공동체 안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한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뭘 해도 할 수 있겠다. 누군가 어떤 질문을 해도 다 답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제가 지금 어른이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정신은 안 늙어서 그래요. 항상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다만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게 좋아요. 또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하나씩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개울이 있으면 깡충 뛰어서 넘어갔지만 나이 들면 뛰다가 넘어져 다치지 않게 길을 돌아가야죠. ‘내 몸이 왜 이렇게 늙었지’ 아쉬워하면서 하염없이 개울 앞에 머무를 게 아니라 돌다리를 찾아서 건너가면 돼요.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각자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삶이 제일 중요해요. 불교에 불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가 있어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예요. 생명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보호받을 이들을 음해하고, 거짓말하고,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이 5가지를 하면 감옥에 가고 비난에 휩싸여 험난한 삶을 살아야 해요.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소욕지족(少欲知足)’을 말하고 싶어요. 일상에서, 작은 것에서, 가까운 곳에서 감사함을 찾는다면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물론 미래의 꿈을 그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작게 시작해 큰 그림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스님은 삶에 만족하며 잘 살고 계시나요.
제 성격상 사회에 살았으면 아주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향인인 데다가 나만의 세계관이 너무 분명해서요. 제 성향상 ‘관심병’이 있어요(웃음). 지금 하는 일들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불교의 세계관 중에 인간계가 있고 또 높은 단계인 신들의 세상이 있습니다. 신들의 세상에 태어나려면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러니 바빠도 즐겁지요. 남을 돕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게 제가 추구하는 삶이에요.
#묘장스님 #불교 #조계종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출처 묘장스님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