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그가 넷플릭스 7부작 시리즈 ‘광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광장’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광장 세계를 떠났던 기준(소지섭)이 조직의 2인자였던 친동생 기석(이준혁)의 죽음으로 11년 만에 돌아와 복수를 위해 그 배후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무엇보다 영화 ‘회사원’ 이후 약 13년 만에 선보이는 누아르 액션 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약 일주일 후인 6월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소지섭을 만났다. 영화부터 사생활까지 다소 넓은 범위의 인터뷰였지만, 기자의 눈을 마주하며 하나하나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에서 30년 차 배우의 내공이 느껴졌다.
‘광장’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합니다. 체감하나요.
사실 실감이 안 나요. 글로벌(비영어) 2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거든요. 잘되고 있는 거 맞죠(웃음)? 관객 수나 시청률은 바로 체감이 되는데 넷플릭스는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겠어요. ‘광장’은 성적을 떠나 얻은 게 정말 많은 작품이에요. 오랜만의 누아르라 촬영할 땐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재미있는 부분이 더 많았어요. 연기 갈증도 많이 해소됐고요.
꾸준히 누아르에 도전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누아르를 정말 좋아해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하고 싶은 장르죠. 저는 기분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보다는 몸이나 눈빛으로 하는 연기를 좋아해요. 이런 부분이 누아르와 잘 맞는 것 같고요. 솔직히 ‘광장’은 그냥 제 마음이 끌려서 하게 된 작품이에요. 누아르라는 장르 자체는 정말 귀해요. 많이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1년에 한두 편 나올까 말까 하거든요. 시놉시스가 들어왔을 때 감사했고, 꼭 하고 싶었어요.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원작의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로 캐스팅 1순위였다고요.
작품을 선택한 후에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사실 저는 이전까지 ‘광장’이라는 웹툰을 알지 못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한참 뒤에 웹툰을 봤으니까요. 캐스팅 1순위, 높은 싱크로율 등 다양한 수식어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에요.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 인물의 성향 등이 변하는 건 아니기에 그저 대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원작과 비교했을 때 각색된 부분도 있지만 큰 그림 자체는 비슷한 구도를 띠고 있어요. 저 역시 원작 속 기준을 닮아가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고 공부했고요. 기준만의 눈빛이나 행동 등을 모두 완벽하게 따라 할 순 없지만, 마음속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원작에 대한 팬덤으로 각색된 스토리에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간 원작 기반 작품을 서너 번 정도 했었어요. 호불호 반응은 늘 있었죠. 각색된 시나리오에 대한 호불호는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촬영에 임한 모든 사람이 원작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원작과 시리즈의 매력은 달라요. 시리즈는 그만의 서사와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미 각색된 대본을 받고 수락했기 때문에 그 세계관을 인지한 뒤 연기했고요. ‘광장’을 좋게 봐주신 분들은 저를 “한국판 존 윅”이라고 표현해주시는데,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반응이에요. 전설적인 킬러, 존 윅을 연기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저를 비교해주시는 것 자체가 민망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존 윅’과 ‘광장’은 전혀 다른 액션물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근접전이 많거든요. 또 ‘존 윅’보다는 투박하지만 ‘광장’이 임팩트 있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했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몸무게가 95kg이었어요. 마지막에는 70kg을 유지했죠. 이번에 다이어트를 해보니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도 조금씩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먹는 걸 좋아하고, 조금만 먹어도 살이 잘 붙는 체질이에요. 다행히 평소 권투 등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터라, 닭가슴살과 밥으로 식단 조절을 하며 살을 뺐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을 통해 13년 만에 누아르로 돌아온 소지섭. 친동생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폭력 조직에 다시 합류한 기준 역할을 맡았다.
감독님, 동료들과 촬영하면서 조금씩 만들어나갔어요.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해지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핸디캡이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직진만 하기로 했죠. 다리를 쓰지 않아서 편한 점도 있었지만 4회에 나오는 개미굴 액션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말 쉽지 않았어요. 이 장면만 거의 일주일 정도 찍었거든요. 지금까지 촬영했던 모든 액션 신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액션 신을 찍으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혹시라도 누가 다칠까 봐 걱정됐거든요. 조금만 위치가 달라져도 진짜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출연진뿐만 아니라 엑스트라들까지 더욱 세심하게 챙긴 것 같아요. 동선을 체크하고 연습하라는 잔소리도 많이 했죠. 모두가 잘 협조해준 덕분에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일 대 다수의 액션 신이 여러 차례 등장해요. 공간 활용에도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아요.
맞아요. 다수가 등장하기 때문에 공간 자체도 웬만하면 좁은 데로 선택해 집중도를 높였어요. 또 많은 사람이 앞에 모이면 어쩔 수 없이 멈칫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장면을 더 자연스럽게 연출하려면 강하고 세 보이는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각에서는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기준을 두고 “좀비물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극 중에 치료받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배제했어요. 그러다 보니 더 불사신처럼 보인 것 같아요.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먼저 기석이 일하던 폭력 조직 수장을 연기한 허준호(이주운 역) 선배님과 작품을 함께한 건 처음이었는데 역시 포스가 남다르세요. 극 중 몸이 안 좋은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20kg 정도 체중을 감량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허준호 선배님은 제게 “내가 다 받아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느껴졌고요. 또 허준호 선배님과 경쟁 관계인 또 다른 조직의 수장을 연기한 안길강(구봉산 역) 선배님은 액션을 워낙 좋아하세요. 항상 ‘나, 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계셨죠.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요. 구봉산의 후계자 역할을 맡은 공명(구준모 역) 배우는 순둥순둥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인데, 그렇지 않은 연기를 하니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본인도 재미있어하는 것 같고요. 같이 붙는 신이 많지 않아 아쉽기도 했어요. 이주운의 아들이자 현직 검사 이금손 역을 맡은 추영우 씨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오는 배우예요. 감독님의 주문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죠. 요청 사항을 받아들이는 에너지도 좋고요. 마지막으로, 친동생으로 나오는 이준혁(남기석 역) 배우는 남자가 봐도 멋있고 섹시하더라고요. 맡은 역할도 잘해냈고요. 개인적으로 이준혁 배우의 분량이 적어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짧지만 차승원 배우와도 함께 연기했어요. 분위기는 어땠나요.
차승원 선배님은 조직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김선생을 연기하셨어요. 선배님은 배우 대 배우로 봤을 때 정말 멋있는 분이에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오라가 느껴지죠. 차승원 선배님은 늘 대사를 통으로 다 외워오세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거의 대본을 안 보시죠. 늘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고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광장’으로 그간 액션에 대한 여한은 다 풀었나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지금은 액션에 대한 갈증이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제가 오랜만에 누아르 장르를 한 건, 그동안 시나리오가 없었고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액션은 제가 너무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장르예요. 고전 범죄영화인 ‘대부’부터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까지 웬만한 누아르 작품은 다 챙겨 보거든요. 몸과 몸이 부딪치면서 받는 액션 특유의 에너지가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같아요. 체력이 허락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어요.

“소지섭 아직 괜찮네”라는 소리 듣고 싶어
작품을 마친 후에는 매번 2~3년 정도의 긴 공백을 갖는 것 같아요.맞아요. 작품에서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타입이거든요. 감정적으로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텀을 주는 편이고요. 그래서 작품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쉬는 동안에는 여행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불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일정한 루틴에 맞춰 지내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감을 되찾는 것 같아요.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수입도 하고 있어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한 대작이 아닌 예술영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에요. 좋은 작품을 고르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저는 똥손이에요(웃음). 대부분 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님이 개봉 영화를 가져오시죠. 저는 그냥 너무 하고 싶으니까 끼워달라고 해서 같이하는 정도예요. 이지혜 대표님이 영화를 선택하시면 100% 믿고 갑니다. 사실 저보다는 대표님처럼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영화계 상황이 안 좋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해요. 제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소지섭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극장에 관객이 한두 명이라도 더 온다면 그걸로 감사해요.
저예산 영화 제작이나 투자에도 관심이 있나요.
여러 가지 계획은 하고 있지만 아직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하지만 배우가 아닌 업자로서 영화제 마켓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현장에서 작품을 직접 선택하고 싶은 바람이 있죠.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배우로서 안타까움도 크겠어요.
맞아요. 하지만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가 힘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라도 극장을 많이 찾고 있어요. 주위에 개봉한 영화가 있으면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자고 이야기를 하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4월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팬미팅에 같은 소속사 배우 옥택연, 차학연이 게스트로 출연해 함께 공연을 했다.
아니요. 소옥차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 농담이고요. 지난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단독 팬 미팅에 옥택연, 차학연 배우가 깜짝 게스트로 참여해 함께 노래하면서 급하게 결성됐어요. 당시 진행하시는 분이 “그룹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차학연 배우가 “소옥차”라고 대답했죠. 이벤트성으로 뭉친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이 정식 음악 활동을 할 계획은 없어요.
배우이자 9집까지 발매한 래퍼이기도 해요. 음악 활동은 언제 다시 시작하나요.
래퍼 활동은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어요. 최근 대만 공연 등 활동을 간간이 하고 있는데 정식 앨범은 글쎄요(웃음). 저는 팬들을 만나는 공간이 아니면 노래를 잘 하지 않거든요. 이런 기회에 새로운 노래를 들려드리기 위해 곡 작업은 하고요. 언젠가 더 많은 사람이 원하고 팬들을 만날 기회가 다양해지면 그때 앨범을 준비할 것 같아요.
부인 조은정 씨는 ‘광장’을 보고 어떤 말을 해줬나요. 결혼 후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는 반응도 있어요.
“고생했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아내가 ‘광장’을 재미있게 시청했는데, 일단은 제가 고생한 부분이 먼저 보였나 봐요. 제가 이전과 좀 달라 보이는 것은 결혼의 영향도 있지만, 약 30년 동안 연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주연은 촬영장 분위기를 이끌고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모습으로 인해 제가 좀 더 여유롭고 안정감 있게 비치는 것 같아요.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뿅뿅 지구오락실3’ 등에서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자주 언급되며 OTT 역주행 인기를 얻고 있어요. 젊은 층 사이에서는 소지섭 배우를 ‘소간지’로 칭하기도 하죠. 어떤 느낌이 드나요.
기분 정말 좋죠. 개인적으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본 요즘 친구들이 그때의 감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거든요. 이런 좋은 반응이 참 신기하긴 하지만 “따라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웃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연기적으로 고민되거나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 직접 찾아보는 드라마예요. 당시의 젊은 에너지가 느껴져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거든요. 또 ‘소간지’라는 별명이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너무 감사해요. 저한테만 붙여주는 별명이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어요(웃음).
작품을 마무리할 때마다 호흡을 맞춘 이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선물을 했나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쑥스러워요. 작품을 마친 후 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기도 하거든요. 선물을 협찬받아 드리는 줄 아는 분도 계신데, 제가 직접 구매해요. ‘광장’ 팀 전원에게는 ‘금’을 한 돈씩 선물했어요. 인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아 깜짝 놀랐죠(웃음). 이번에는 선물이 금이라서 더욱 이슈가 된 것 같아요(하하).
앞으로의 목표와 ‘광장’으로 듣고 싶은 반응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욕심이 별로 없어요. 지금 주어진 것에만 최선을 다하고 싶고요. 차기작은 계속 보고 있어요. 액션을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요즘은 멜로에도 관심이 생겨요. ‘광장’을 통해서는 “소지섭 아직까지 괜찮은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광장 #소지섭 #넷플릭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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