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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우리가 버추얼 아이돌에 빠지는 이유

슈퍼챗 상위 5명 모두 버추얼 유튜버

신예리

2025. 06. 11

‘버추얼 아이돌’을 왜 좋아하냐는 물음엔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진짜’보다 더 내밀한 진심을 선보이는 버추얼 아이돌 덕질의 세계를 소개한다.

플레이브는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번째 팬 콘서트를 개최했다.

플레이브는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번째 팬 콘서트를 개최했다.

팬데믹 시기 메타버스 열풍을 타고 급부상했던 ‘버추얼(virtual·가상)’ 콘텐츠 시장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비친 것도 잠시. 최근 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하나의 산업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이머전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버추얼 휴먼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100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약 5275억8000만 달러(약 756조 원)로 5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흐름은 콘텐츠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튜브 통계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의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슈퍼챗(현금 후원) 수익 상위 5명을 모두 버추얼 유튜버(버튜버)가 차지했다. 상위 20명 중에서도 6명이 버튜버였다. 오프라인에서도 인기는 선명하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해 2~3월 ‘이세계아이돌(이세돌)’ ‘스텔라이브’ ‘플레이브’ 등 대표 버추얼 그룹의 팝업스토어를 연달아 열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해당 행사에 방문한 고객은 총 10만 명, 누적 매출은 약 7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일반 패션 팝업스토어의 평균 월 매출(약 10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7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국내 IT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버추얼 콘텐츠에 특화된 제작 스튜디오 ‘모션스테이지’를 정식 공개하고, 버추얼 지식재산권(IP) 및 콘텐츠 스타트업 ‘스콘(SCON)’에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사이버 가수에서 슈퍼스타로

국내에서 ‘버추얼’이라는 개념은 1998년 데뷔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엔 인간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 또한 부족했다. 여기에 ‘사이버 가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미비했기에 아담은 오래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오늘날의 버추얼 캐릭터는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표정은 물론, 세밀한 몸짓까지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했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발달은 대중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여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등장은 버추얼 휴먼에 대한 수용성과 친밀도를 크게 높였다.

2021년 국내 최초 버추얼 아이돌 그룹 ‘리레볼루션’이 데뷔한 이후 ‘이세계아이돌’ ‘메이브’ 등 탄탄한 팬덤을 지닌 팀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례는 2023년 데뷔한 5인조 버추얼 보이 그룹 ‘플레이브’다. 플레이브는 올해 2월 발매한 세 번째 미니앨범 ‘Caligo Pt. 1’으로 초동(앨범 발매 첫 일주일간 판매량) 103만8308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국내 보이 그룹 중 초동 100만 장을 넘긴 12번째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버추얼 아이돌로서는 최초이기도 하다.



활동 영역도 여타 아이돌 못지않다. 자체 콘텐츠, 라이브 방송, 영상통화 팬 사인회 등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있으며 ‘버블’이나 ‘위버스’ 등 팬 플랫폼에도 입점해 실시간으로 팬들과 교류 중이다. ‘메디힐’ ‘롯데빼빼로’ 등 다수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콘서트 무대에서도 버추얼 특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CG 효과를 통해 1초 만에 의상을 바꾸거나 하늘을 나는 듯한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플레이브 멤버 ‘은호’는 콘서트 무대 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여러 K-팝 콘서트를 경험한 필자 입장에서도, 플레이브의 공연은 그 어떤 실물 아이돌 콘서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연출 면에서는 오히려 더 다채롭고 풍성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2~3월 유통업체 최초로 버추얼 아이돌 팝업스토어를 열었다(왼쪽). 롯데마트슈퍼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플레이브 컬래버 빼빼로는 품절 대란을 빚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2~3월 유통업체 최초로 버추얼 아이돌 팝업스토어를 열었다(왼쪽). 롯데마트슈퍼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플레이브 컬래버 빼빼로는 품절 대란을 빚었다.

하루건너 한 팀씩 데뷔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는 K-팝 시장. 그 속에서 ‘굳이’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이들이 있다. 2023년 여름, 플레이브에 입덕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J-팝 버추얼 아이돌 ‘스코시즘’을 덕질 중인 필자 역시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버추얼 아이돌 덕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여느 입덕 과정과 마찬가지다. 우연히 들은 커버곡이 너무 좋아서 다른 영상을 찾아봤고, 마침 유튜브 라이브 방송도 하고 있었으며, 이후 알고리즘이 관련 콘텐츠를 줄줄이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새 빠져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버추얼을 좋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고 보니 버추얼이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원한다고 해서 ‘입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테다. 특히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에게 이런 덕질은 그 자체로 간절한 활력이다. 운명 같은 계시를 단지 ‘버추얼’이라는 이유로 내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다만 입덕 부정기는 다른 경우보다는 길었던 것 같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사람이 직접 표현하는 감정과 움직임을 100% 구현하기는 아직 어렵기에 분명한 한계도 보였다. 그러나 평소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등 2D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어색할지언정 큰 거부감은 없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경우다. 주변에는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다 자연스럽게 버추얼로 관심이 옮겨진 사람도 있고,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즐겨 듣다 보니 가수까지 좋아하게 된 사람도 있다. 결국 버추얼이라는 특이점이 하나 추가된 것일 뿐 입덕의 본질은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버추얼 아이돌을 진짜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돌이라면 직접 무대에 서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도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고 싶다.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가수도 가수라 부른다. 버추얼 아이돌 역시 가상의 형체를 빌리고 있지만, 자신만의 캐릭터로 노래하고 춤추며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아이돌을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정의한다면, 버추얼 아이돌 역시 그 정의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버추얼 아이돌의 차이점에 대해 헷갈려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 핵심은 ‘캐릭터 뒤에 사람이 있느냐’다. 버추얼 아이돌과 스트리머는 캐릭터 뒤에 실제 사람이 존재하며, 그들이 직접 활동한다.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가상 인물과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AI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혹자는 캐릭터 뒤에 있는 ‘진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위 ‘빨간약을 먹고 싶지 않냐’는 물음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은 파란약(현실을 모른 채 안락하게 살기)을 선택할 것인지, 빨간약(불편하더라도 진실 마주하기)을 선택할 것인지를 강요받는다. 버추얼 팬덤 내에서도 빨간약은 캐릭터 뒤 실존 인물의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을 은유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많은 팬은 굳이 빨간약을 삼키지 않기로 한다.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알고 싶다는 강한 욕구는 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버추얼로 무대에 선 인물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궁금하지만 그 이상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들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버추얼이어서 더 내보일 수 있는 ‘진심’

가수로서의 실력, 매력적인 곡 그리고 개성 있는 캐릭터 디자인. 필자가 버추얼 아이돌에 빠지게 된 계기는 이런 일반적인 입덕 포인트들로 시작됐다. 하지만 덕질을 이어가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느낀 것은, 오히려 ‘버추얼이기 때문에’ 더 진솔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김상균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세계아이돌에 대해 “아바타로 활동하고, 컴퓨터 모니터상에서만 존재하지만 자기 자아와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기성세대는 디지털 속 세상은 가짜이거나 왜곡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메타버스 속에서 아티스트와 팬은 더 진실한 가치로 만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버추얼은 그런 사회적 틀에서 한 걸음 떨어진 ‘해방의 공간’을 제공한다. 필자는 이 점이야말로 버추얼이 대중문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이 버추얼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존재 자체가 낯설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추얼을 ‘마라탕’에 비교해보면 어떨까. 마라탕은 2019년 대거 유행하기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었다. 처음 유행이 시작됐을 때는 특유의 향과 자극적인 맛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수많은 이가 마라탕을 즐기는 것은 물론 기존 음식과 융합된 ‘마라 짜파게티’ ‘마라 불닭’ 같은 제품까지 사랑받고 있다.

버추얼도 마찬가지다. 이미 시장 규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네이버의 버추얼 방송 플랫폼 ‘치지직’은 지난 3월 버추얼 아티스트를 위한 노래 경연 대회 ‘V:MIX(브이믹스)’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수많은 버추얼 아이돌 그룹과 스트리머들이 대거 지원해 그 숫자와 다양성에서 시장의 확장을 실감케 했다.

특히 Z세대, 그중에서도 제페토·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 환경에 익숙한 10대들은 버추얼 캐릭터에 큰 거부감 없이 친근감을 느낀다. 이미 그들의 온라인 정체성은 아바타 기반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오히려 실재보다 더 자유롭고 진정한 표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버추얼은 잘못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방식일 뿐이다. 지금은 대중적 과도기일지 몰라도, 앞으로는 더 많은 삶의 영역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문화를 향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버추얼아이돌 #플레이브 #여성동아
‌사진제공 신예리 사진출처 현대백화점 블래스트

신예리는 4년 차 직장인이자 19년 차 K-팝 덕후로 빅뱅부터 시작해 엑소, 더보이즈 등을 거쳐 지금은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를 덕질 중이다. 버추얼 아이돌은 AI, 2D와 달리 ‘평범한’ 아이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꺼이 ‘덕밍아웃’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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