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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내가 죽고 난 뒤 아이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정치부 기자 출신 발달장애인 엄마 류승연 작가

윤혜진 객원기자

2024. 10. 22

발달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을 그린 독립 영화 ‘그녀에게’가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의 원작자인 류승연 작가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살아갈 세계가
좀 더 나아지길 꿈꾼다.

정치부 기자 출신, 발달장애인 엄마 류승연 작가

정치부 기자 출신, 발달장애인 엄마 류승연 작가

올 9월 개봉한 독립 영화 ‘그녀에게’가 누적 관객 2만 명을 넘었다. 대대적인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올해 개봉한 독립 영화 중 4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진정성 덕분이다. ‘그녀에게’는 2018년에 나온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원작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정치부 기자 출신,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 쌍둥이 맘 설정은 모두 원작자인 류승연 작가에게서 가져왔다. ‘대치동 키드’였던 류승연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40대 정치부장, 50대 편집국장을 꿈꿨다. 그러나 2008년 이란성쌍둥이 남매 수인이와 동환이를 출산한 후 그 꿈은 사라졌다. 둘째 동환이가 출산 과정에서 입은 뇌손상으로 중증 발달장애인이 되면서다. 복직의 꿈을 접고 오로지 엄마로만 살았지만, 올해로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인 동환이는 여전히 말을 못 한다.

영화 ‘그녀에게’가 두 살 정도 지능에 머물러 있는 아들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는 10년의 세월을 담았다면, 최근 나온 에세이집 ‘아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청소년이 된 아들의 삶을 통해 특수교육 시스템과 성인기 자립 문제를 다룬다. 류승연 작가는 올해 동환이가 다니는 특수학교의 학부모회장을 맡았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류 작가는 아이 학교에서 회의를 하고 왔다. 그는 “지난해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서 올해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186cm 발달장애 아들에게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

딸 수인이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뭐라던가요.
영화가 전반적으로 우울하대요. 우리 가족은 영화 속 가족보다 훨씬 더 밝고 분위기도 한 톤 업되어 있는데 영화는 어둡게 그려졌다더라고요. 또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가 저렇게 고생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고마웠어요. 수인이가 ‘저 정도로 우울하지 않은데 왜 저렇게 그렸을까’ 의문을 가졌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평점이 9.88점이에요. 신파로 치우치지 않게 현실을 잘 그렸다는 평이 많습니다.
리뷰를 보면 순한 맛이라고 해준 분들이 많은데 아이는 그마저도 어둡다고 생각했나 봐요. 장애를 지닌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영화에 나온 유아동기 시기가 정말 힘들 때거든요. 감독님이 실제보다 100분의 1, 10분의 1 수준으로 강도 조절을 잘해주셨어요. 너무 현실을 반영하면 다큐멘터리가 되어 일반 관객이 보기에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때 저는 심연에 가라앉아 있었거든요. 모든 일상이 파괴되어 있었죠. 그 단계를 지나 일상을 회복하고 지금은 시야가 좀 넓어졌어요.

동환 군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아들이 사는 세계가 달라졌나요.
아들이 어릴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어요. 아들 키가 186cm예요. 이제 아들에게는 기존의 ‘발달장애인’이란 딱지 외에도 ‘덩치 큰’ ‘남성’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어요. 혐오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죠. 저는 이런 혐오가 생기는 것이 평소 우리가 다루는 발달장애인의 이미지가 어린이나 예쁘고 귀여운 여성으로만 국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의 자폐스펙트럼장애 캐릭터인 별이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그렇잖아요. 하지만 현실 속 발달장애인은 우리 아들처럼 키가 크거나 뚱뚱하고 굵은 목소리를 낼 수도 있어요. 이런 현실적인 모습을 좀 더 노출해서 그 모습 자체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우영우’를 통해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진 건 있지 않나요.
8~9년 전에는 아들이 마트에서 ‘터지면’(흥분해 진정이 되지 않을 때), ‘귀신이 지나간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순식간에 싹 조용해지면서 다 우리만 쳐다봤어요. 이제는 시선을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두진 않아요. 특히 ‘우영우’ 신드롬 때는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죄송합니다. 아들이 자폐가 있어서요”라고 하면 혐오 가득했던 표정이 풀렸어요. ‘드디어 이런 세상을 보는구나’ 싶었는데, 지난해 고기초등학교 사태가 대두되면서 또 싹 바뀌었죠. 그 일이 발생한 뒤 식당에 갔다가 10년 전 마트에서 겪었던 일을 다시 겪었어요.

지난해 고기초등학교에서 발달장애 아이 부모가 발달장애 아들을 담당한 초등학교 특수교사 A 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이 알려지자, 한동안 일반 학교에서의 발달장애인 통합교육(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을 오가며 생활하는 방식)이 뜨거운 감자였다.

2세와 16세 지능의 아이들이 한 반인 특수학교

초등학교는 장애의 정도가 중한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진입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일반 학교에 입학했던 동환이는 2학년을 마치고 특수학교로 옮겼다. 현재 동환이가 재학 중인 학교는 서울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를 관할하는 서부교육지원청 유일의 지적장애 특수학교다. 한번 입학하면 고등학교 과정까지 쭉 다닐 수 있다 보니 37개 학급 중 17개 학급이 과밀이다. 가뜩이나 현행 특수교육법상 특수학급당 학생 수는 유치원 4명, 초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으로 교사 1인당 담당해야 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기준을 초과하다 보니 맞춤교육은 당연히 힘들다.

게다가 특수학교에서도 중학교 과정부터는 진도 중심 학습에 초점을 둔다. 숫자를 5까지밖에 세지 못하고 한글을 쓸 줄 모르는 동환이는 중학생이 된 후로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잔다. 류승연 작가는 요즘 최대 고민이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아들이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이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로는 학교 밖 프로그램을 이용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동환이가 학교에서 자는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있나요.
동환이 같은 아이들에게는 한번 패턴으로 입력이 되면 깨기가 쉽지 않아요. 담임 선생님과 고3 때까지 해마다 조금씩 자는 시간을 줄이고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리는 걸 목표로 잡았어요. 다행히 선생님들이 함께 노력해주셔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비슷한 발달장애아들이 현장에 많을 겁니다. 사실 아이가 자면 적어도 돌발 상황은 안 일어나니까요.

특수학교에서 왜 애초에 장애 정도를 기준으로 학급을 나누지 않을까요.
저도 궁금해서 교육부에 문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 관계자가 답하길 과거에는 장애 정도에 따라 학급을 꾸린 적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았다고 해요. 예를 들어 한글을 다 읽을 줄 알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반과 말을 하지 않는 ‘무발화’ 상태에 대소변 처리도 잘 못 하는 아이들만 모인 반이 있다면 당연히 중증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가 더 힘들겠죠. 그렇다고 특수교사 수가 부족한데 그 학급만 2명의 교사를 배치할 수도 없고요. 또 장애 정도별로 나눠 반을 늘리면 교실도 더 필요해져요. 이래저래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결국 특수교육을 위한 학교 시설과 교사가 부족한 게 문제네요.
이런 상황인데도 한 달 전 서울 중랑구에서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동진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졌잖아요. 서울서진학교를 짓기 위해 부모들이 무릎 꿇었던 때가 7년 전인데 여전히 장애에 대한 인식이 비슷한 수준이라 갑갑해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비장애 자녀들도 힘들어져요. 일반 학교의 통합교육은 통합교육대로, 특수학교는 특수학교대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거예요.

심지어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발달장애 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어요.
저처럼 늦은 결혼과 난임, 인공수정, 쌍둥이 임신, 조산 등의 과정을 거치다 우리 아이처럼 장애가 오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문제를 나, 친구, 주변 누군가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감해준다면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년 특수교육 예산이 올해보다 더 줄어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애 쪽에서의 모든 문제는 다 예산이에요. 그래서 아들 생후 13개월부터 각종 치료와 교육비가 들어간 우리 집은 가난해졌어요. 지금 사는 집이 시댁 앞집이에요. 신혼 때는 아이를 낳으면 시엄마에게 봐달라고 한 후 복직할 생각도 있고, 집을 마련하는 데 보태주신다 하니 이 집을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대출을 받아 은행 집이 됐어요(웃음). 아들이 발달장애인 걸 알게 된 후로는 제가 일을 할 수 없어서 남편 혼자 벌어 넷이 쓰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죠.

의젓한 딸,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성장하는 아들

여행을 좋아하는 동환이네 가족. 경험을 통해 동환이의 세계는 확장된다.

여행을 좋아하는 동환이네 가족. 경험을 통해 동환이의 세계는 확장된다.

보통 장애를 지닌 아이가 있으면 그 가정은 어둡고 불행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부부는 동환이에게만 ‘올인’하지 않고 각자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남겨뒀다. 특히 딸의 행복을 위해 애썼다. 어린 시절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던 딸아이는 이제 “내가 동생이랑 있을 테니까 엄마는 나가서 2∼3시간 글 쓰고 와”라고 말하는 의젓한 중학생이 됐다.



수인이도 중학교 3학년이잖아요. 고등학교는 어디로 진학하나요.
지역 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해요. 내신을 어떻게든 잘 받아서 수시에 도전하려고요. 그래도 제가 글 쓰는 사람이니까 아이가 보고서를 쓰거나 서류 준비할 때 심사위원만큼 냉철하게 비판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수인이의 꿈은 무엇인가요.
수인이는 진로를 일찌감치 정했어요.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대요. 제가 정치부를 담당했고, 남편이 영화 전문 문화부 기자인데요. 수인이 눈에는 정치부가 더 좋아 보였나 봐요. 그런데 말만 그렇고 친구들과 열심히 놀러 다니고 있어요. 요 또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수인이는 사회적 친밀감에 목마름이 큰 아이예요. 어려서부터 동환이를 봐와서 그런지 고립되는 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러다 보니 친구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는 듯해요.

수인이가 엄마를 닮아 활발한 성격인가 봐요. 국회 출입 기자로 활동할 때 힘들진 않았나요.
오히려 저는 국회에 출입한 6년이 정말 즐거웠어요. 어려서부터 권위에 대한 반항 의식이 있어선지 적성에 딱 맞더라고요. 권력에 공모하고 비리를 저지른 아저씨들한테 소리 지르며 열심히 일했어요(웃음). 그러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도 느꼈고요.

그럼 요즘 류승연 작가의 재미와 행복은 무엇인가요.
요즘 보니 저는 지적 허영심이 높은 인간이더라고요. 지적인 유희를 충족시키는 각종 독서 모임과 스터디 모임들을 찾아서 활동했어요. 기 센 언니들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고 깊은 사유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또 정신분석 프로이트 논문을 읽는 스터디를 매주 나가기도 하며 개인적인 행복을 통해 에너지를 채웠어요. 그래야 가족과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올해는 책, 영화 등 작업이 많아 모든 개인 활동을 스톱했어요.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놓고 다시 좋아하는 스터디도 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요.


류승연 작가가 영화로, 글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동환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위해서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발달장애인 수는 약 26만 명이고, 그중 성인기 발달장애인은 약 18만 명 정도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은 장애인 거주 시설 및 소규모 그룹홈에 입소하거나 계속 부모와 산다. 자립 지원 모델인 지원주택에 살며 인근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이 중 류승연 작가가 꿈꾸는 미래는 서른 살이 된 동환이가 지원주택에서 자립하며 간단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지원주택 수가 적고, 주간 활동 서비스를 받는다 하더라도 동환이가 부모 없이 생활하는 게 가능할지 미지수다. 다만 목적지가 명확하면 가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수월하다.


동환이의 성인기 생활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동환이는 아직도 양치질을 혼자서는 못 해요. 하지만 이제 밥을 먹고 나면 칫솔을 가져와요. 여기까지 온 것도 엄청난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들이 아기 키울 때 혼자 양치질만 잘해도 기쁘잖아요. 이런 기쁨을 우리는 평생 맛보고 살 수 있어요. 대신 목표를 길게 잡고 가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자기 손으로 엉성하게나마 양치질을 할 수 있으면 되고, 엄마라고 못 해도 좋으니 소변이 급할 때 ‘쉬’라고 얘기해줄 수 있으면 돼요. 30세에는 혼자 목욕할 수 있으면 좋고요. 요즘 머리에 샴푸 거품 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잘했다고 칭찬하면 아이가 좋아서 한 번 더 동작을 해요. 내가 죽기 전까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가르쳐줄 거예요.

이렇게 할 수 있는 걸 늘려 나중에 지원주택에서 혼자 살 수 있게 된다면 바랄 게 없겠네요.
그렇게만 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늙은 부모가 다 큰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게 힘에 부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니까요.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해요.

전국의 또 다른 동환이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지금 당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이의 성인기 때 한 지점을 설정해 미래의 하루를 그려보세요. 그러면 그날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일 거예요. 우리가 느리게 자라는 아이를 교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부모가 죽고 난 후 혼자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잖아요. 또 그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특별함이기도 하고요.

#그녀에게 #특수학교 #발달장애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 제공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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