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람빅 맥주 양조장 ‘칸티용’.
문제는 가격이 일반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사실이다. 내추럴 와인은 자연 효모를 이용해 숙성 발효하기에 대량생산이 어렵다. 와인 바에서 ‘맛있다’고 권하는 상품은 가볍게 10만 원을 넘어서기 일쑤다. 내추럴 와인의 가격이 오르자 이산화황을 첨가한 저가 제품이 내추럴 와인이란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상술이다.
칸티용 양조장 내 맥주를 보관하는 오크통
벨기에 맥주 장인들이 이토록 ‘람빅’이라는 이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람빅의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람빅은 보리와 밀, 맥아를 혼합해 끓인 맥아즙을 대기 중의 각종 미생물이 잘 번식할 수 있도록 욕조처럼 생긴 ‘쿨쉽’이라는 공간에서 1차 숙성시킨 후 그 원액을 오크통에 담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장기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람빅 맥주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장소다. 자연 발효가 이뤄지는 그곳에만 서식하는 고유한 미생물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차별화된 맛과 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벨기에 람빅 맥주 양조장 ‘칸티용’의 관계자는 “칸티용 맥주는 오직 이 장소에서만 만들 수 있다. 바로 옆 건물에서 만들어도 이곳과 다른 미생물이 맥아즙에서 발효돼 완전히 다른 맥주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와인처럼 디캔팅해 마시기도 하는 ‘드리 폰타이넌’의 람빅 맥주.
아이러니하게도 람빅은 벨기에 본토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 10여 년 전 ‘힙’해지기 이전 막걸리의 위상과 유사하달까. 기자가 벨기에 브뤼셀의 유명 펍을 방문했을 때 람빅 맥주를 주문하며 “왜 벨기에 젊은 친구들은 람빅을 마시지 않냐”고 묻자 바텐더는 “벨기에 젊은이들은 너처럼 람빅을 사 마실 돈이 없어”라고 답했다. 기자를 중국 부호쯤으로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벨기에 람빅 맥주 업계는 이처럼 “너무 비싸다”는 비판 속에서도 오히려 다양한 실험을 통해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스타우트 맥주에 쓰는 볶은 맥아를 람빅 맥주에도 사용한다든지, 셰리 캐스크와 와인 캐스크를 활용해 제조 방식을 다변화함으로써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체리를 첨가했는데 최근에는 포도와 산딸기를 넣기도 한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는 람빅 맥주는 이미 전 세계 ‘맥주 덕후’들을 홀린 지 오래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애주가라면 벨기에 장인과 자연이 빚어낸 람빅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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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석의 Drinkology
마시는 낙으로 사는 기자. 시큼한 커피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 안 가리고 찾는다. 술은 구분 없이 좋아하지만 맥주와 위스키를 집중 탐닉해왔다. 탄산수, 차, 심지어 과일즙까지 골고루 곁에 두는 편. 미래에는 부업으로 브루어리를 차려 덕업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사진 오홍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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