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프리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에 쓰일 크로캉부슈(Croquembouche). 작은 슈를 원뿔 형태로 쌓아 올려 만드는 케이크로 결혼 피로연이나 종교 행사에 쓰인다. 2 신랑 제프리의 아파트에서 열린 결혼 피로연은 한 테이블에 10명씩 자리를 배치했다. 3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파티 세팅.
지난 호에 이어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는 디너파티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에 합류해 처음에는 주방 식구들과 가볍게 농담을 나누거나 준비된 음식들을 맛보며 여유를 부렸다. 모든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분위기도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4시 30분이 되도록 홀 서빙 스태프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랑 제프리의 개인 비서가 설치고 다니며 참견을 해서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PM 4:00 홀 서빙 스태프가 아무도 안 왔다고?
우리는 보통 이벤트 한 시간 전에 홀 서빙 스태프들이 도착하도록 일정을 짠다. 이번에도 서빙 담당 8명 중 4명은 4시, 나머지 4명은 4시 30분에 도착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가. 이를 확인하려 하자 스테판이 “내가 모두 5시에 오라고 했어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언제 그렇게 바꿨죠?”라며 언성이 높아지고 표정이 확 변하는 나를 보더니 로랭이 옆방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달랬다. “괜찮아. 스태프들은 5시에 도착해도 충분해. 결혼식이 5시 15분이고 칵테일은 5시 45분쯤 시작이야. 저녁 식사는 7시이고.”
“아냐. 결혼식 시작 전에 칵테일 룸과 연회 룸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아야 하는데 겨우 15분 전에 도착해서 어떻게 다 하려고? 당신도 바꾸는 데 동의했어?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내가 따지자 잠시 망설이던 로랭은 스테판이 완강하게 주장해 할 수 없이 동의했다고 고백했다. 부엌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서빙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에 나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스테판은 뉴욕 프랑스 영사관 헤드 셰프로 로랭의 보스다. 2007년 노동허가증도 없는 로랭을 고용하고 싶다고 영사관에 추천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요리 실력도 대단하다. 로랭과 나이는 비슷하지만 스테판은 이미 16세 때부터 요리를 했다. 스테판은 프라이빗 이벤트를 맡을 때 종종 로랭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는데 로랭은 이번에 처음으로 스테판에게 부탁을 했다. 사실 나는 그런 로랭의 생각을 반대했다. 부엌에서 진두지휘하는 헤드 셰프가 두 사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배에 선장이 둘인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스테판은 팀워크로 일하기보다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에게나 지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스테판과 결혼 피로연을 함께 준비하겠다는 로랭이 걱정됐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내가 그랬지. 당신 이벤트인데 스테판이 마치 자기가 헤드 셰프인 것처럼 행동할 거라고. 헤드 셰프가 두 사람이면 골치 아파. 스테판은 팀 플레이라곤 모르는 독불장군이야. 두고 봐. 홀 서빙 스태프들의 브리핑 단계부터 삐걱댈 테니. 그리고 저 비서는 왜 자꾸 메르세데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지?”
제프리의 비서가 부엌을 드나들며 주방 보조로 부른 메르세데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짜증을 내자 로랭은 자기가 처리하겠다며 나를 달랬다.
PM 5:15 폭발 일보 직전, 결혼식이 지연되다
5시가 되자 7명의 홀 스태프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미국인 웨이터 리처드만 10분가량 늦었다. 이미 스태프들이 옷을 갈아입고 와인 잔을 닦거나 얼음, 음료수를 준비하는 등 작업에 들어간 상태라 리처드는 재빨리 양해를 구하고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대로 5시에 도착한 스태프들이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하기엔 벅찼다. 호흡이 맞지 않아 삐걱거렸다. 그들을 지켜보는 나도 숨이 찼다.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5시 15분 시작 예정인 결혼식이 조금 미뤄진 것이었다. 하객이 모두 도착하지 않은 데다 집에서 하는 파티라 여유있는 분위기였다. 칵테일 룸 준비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일단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스태프 중 한 사람인 파비앵이 부엌으로 들어와 스테판과 로랭에게 뭔가 항의를 했다. 부엌으로 쫓아 들어갔다.
“이 상태로는 완벽한 코디네이션이 불가능해요. 제가 원하는 룰에 다 맞춰주지 않으면.” 이번 홀 서빙에서 8명의 스태프 중 파비앵이 캡틴으로 지명됐는데, 늦게 도착해 그 사실을 모르는 리처드가 파비앵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리처드는 서빙에 관한 한 프로여서 누구의 지시가 없어도 다 알아서 한다. 게다가 자신보다 나이 어린 파비앵의 지시를 따를 리 없다. “그런데 누가 파비앵을 캡틴으로 지명한 거야?” 이번에도 내가 로랭에게 따지듯 물었다. 로랭이 머뭇거리자 스테판이 “내가 지명했어요. 캡틴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폭발 일보 직전인 나는 스테판의 말을 끊고 이렇게 퍼부었다.
“스테판! 미안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 어떻게 해요? 로랭이나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실 나는 홀 스태프들에게 4시에 오라고 했는데 이벤트 당일 당신 혼자 지시를 변경한 것도 불쾌해요. 벌써 파비앵과 리처드가 호흡을 못 맞추고 갈등을 빚잖아요.”
스테판과 파비앵의 얼굴이 벌게졌다. 백인들은 화가 나거나 부끄러우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화가 난 내 얼굴은 평소의 누런색 그대로일 것이다.
“벌써 5시 25분인데 결혼식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어쩔 뻔했어요?” 로랭이 내 팔을 툭 건드렸다. 그만하라는 얘기였다. 로랭이 파비앵을 바라보며 “파비앵! 리처드를 불러줘요. 내가 얘기할게요”라고 밝게 말했다.
로랭은 긴장을 푸는 데 도사다. 늘 그렇다. 나는 무슨 일이든 애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금세 고슴도치가 된다. 지금 로랭은 이벤트 시작 직전에 스테판에게 뭔가를 따져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내게 설명해주고 싶었으리라. 나도 화를 풀고 연회 룸으로 가서 스태프들의 준비 상황을 빈틈없이 체크했다.
PM 5:35 드디어 결혼식 시작, 디너 파티 준비 완료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됐다. 주례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맡았다. 5시 45분 칵테일 룸과 음식이 완벽하게 준비됐다. 파비앵을 캡틴으로 한 홀 서빙 관련 브리핑도 끝났다. 리처드는 버름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캡틴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 프랑스인인 파비앵은 2명의 미국인 스태프를 위해 영어로 지시했다. 사실 일을 지시한다기보다 절차 확인 정도이나 스태프들의 태도는 진지했다. 이들은 수백 명이 모이는 파티 서빙도 거뜬히 해내는 프로들이지만 40명이 모이는 작은 파티라 해서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단 2명을 위한 파티라도 이렇게 진지한 태도로 임했을 것이다. 이제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 유기농 오리 푸아그라와 브리오슈 토스트. 2 송로버섯과 브리 치즈. 3 블루 치즈와 피칸 살구 파이. 4 버섯소스를 곁들인 치킨 볼로방(vol-au-vent). 5 큰 농어를 페이스트리 퍼프로 감싸 오븐에 익힌 생선 요리. 6 각종 향신료와 채소로 가지 속을 채운 바얄디. 7 크로캉부슈를 먹기 좋게 덜어놓은 모습. 8 바닷가재와 아메리칸 캐비어로 만든 애피타이저.
PM 6:00 칵테일 핑거푸드부터 순서대로 서빙
결혼식이 끝나고 정확히 6시부터 칵테일 핑거푸드가 순서대로 나갔다. 나도 홀과 부엌을 번갈아 드나들며 하객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스태프들의 서빙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틈틈이 사진도 찍었다. 핑거푸드로 연어 타르타르, 블루 치즈·호두·살구를 얹은 미니 토스트, 버섯소스를 곁들인 닭고기를 이용한 미니 퍼프 세 가지를 준비했다. 하객들이 칵테일을 즐기는 동안 6시 30분이 되자 로랭과 스테판은 디너 메뉴 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셰프들의 작업 과정을 열심히 찍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진찍느라 허리를 숙여 음식이 담긴 그릇에 집중하다 고개를 들자 줄리아니 전 시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귀빈이 부엌에는 왜? “오늘의 중요한 일이 여기에서도 벌어지고 있었군요! ” 그가 유쾌한 미소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옆에는 부인까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거만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신랑 제프리의 부모도 따라 들어왔다. 네 사람은 칵테일 룸이 아니라 작은 살롱에서 따로 아페리티프를 들겠다고 했다. 눈치 빠른 리처드가 그들에게 “어떤 음료수를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대단한 센스! 나라면 파비앵이 아니라 리처드를 캡틴으로 지명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네 사람이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주문하는 것을 지켜봤다. 스테판과 로랭은 아페리티프를 리처드에게 맡기고 디너 준비에 몰두했다. 이들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다이어트 콜라, 몰트 위스키를 주문했고 결국 7시로 예정됐던 디너가 7시 30분으로 늦춰졌다.
PM 7:30 디너가 30분 늦춰지자 주방에선 한숨
주방에서 일하는 스테판(왼쪽)과 로랭. 두 사람은 환상의 콤비다.
이렇게 되면 7시에 맞춘 음식들을 전부 한 템포씩 늦춰 준비해야 했다. 고역이다. 특히 섬세한 해산물 요리는 시간에 따라 메뉴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 생선은 웨이터가 식탁으로 그릇을 옮기는 동안에도 계속 익기 때문에 요리사는 조리 시간은 물론 조리를 마치고 테이블로 옮겨지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한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충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행히 아뮤즈 부슈로 준비한 푸아그라와 애피타이저로 준비한 가재 수프는 디너 시간이 조금 늦어져도 문제가 없어 예정된 시간대로 플레이팅을 했다. 신경 쓰이는 것은 메인 메뉴인 자연산 농어 요리였다. 셰프들은 조리 시간을 다시 조절했다. 자연산 농어 요리는 보통 생선 요리와 달리 큰 농어를 페이스트리 퍼프로 감싸 오븐에 익히는 것. 4마리 농어를 식사 시간에 맞춰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결혼 피로연 음식이 환상적이었다고 격찬을 한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오른쪽)과 로랭.
정확히 7시 30분에 식사가 시작됐다. 식사 중 하객들의 반응과 홀 스태프들의 서빙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하객들은 즐겁게 식사를 했고, 스태프들의 우아한 서빙에도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각 테이블에는 10명의 하객들이 앉아 있는데 5명의 스태프가 양손에 접시를 들고 오른쪽 방향으로 스르르 움직이며 하객 앞에 동시에 접시를 내려놓는다. 마치 발레하는 것처럼 호흡이 딱딱 맞아 음식을 먹기도 전에 하객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내 눈에도 완벽한 서비스였다. 만족하는 하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처음에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잔소리를 하던 제프리의 비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기는지 농담도 하며 우리와 어울렸다.
PM 10:30 결혼 피로연 끝나고 별장 디너파티 의뢰 받아
식사를 끝낸 하객들은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대화를 나눴다. 부엌에서는 모든 과정이 끝났다. 어느새 스태프들이 주방도구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1시쯤 제프리의 비서가 들어오더니 “줄리아니 전 시장과 사진 찍겠어요? 그가 지금 막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려고 하는데”라고 했다. 사진보다는 음식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다. 사람들과 작별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음식이 어땠나요? 음식에 만족하셨다면 셰프와 한 컷 어떠신가요?”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렇게 훌륭한 음식을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과장되게 칭찬했다. 그러고는 셰프에게 개인적으로 인사하고 싶다고 했다. 로랭을 불렀다. 음식이 ‘환상적’이었다는 과찬이 이어지자 로랭의 얼굴이 상기됐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성공이었다.
초반 코디네이션에 약간 잡음이 있었지만 곧 모든 과정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다. 엘리자베스와 제프리도 부엌으로 들어와 완벽한 디너파티였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7월에 이스트 햄튼에 있는 별장에서 2백50~3백 명 정도를 초대해 디너파티를 열려고 하는데 그때도 이벤트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 뷔페식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하객이 3백여 명이라면 셰프를 여러 명 고용해야 할 것이다. ‘독불장군’ 스테판에게 다시 한 팀으로 일하자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랭과 그는 환상의 콤비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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