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이식 문을 달아 정원과 집안이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준다. 콘크리트 기둥 대신 고재를 집 안 곳곳에 세워 입체적이고 고풍스런 공간을 만들었다.
헤이리에 있는 황인용의 음악실 ‘카메라타’, 아늑한 동굴 같은 이외수의 집필실, 삼청동의 사간 갤러리, 배제대학교 예술관 등 군더더기 없이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조병수(50). 미국 몬태나주립대학교 교수이자 연세대학교의 초빙 교수로 출강하고 있는 그는 굵직굵직한 건축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신없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연 속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마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수곡리 집을 찾는다.
푸른 들판과 꼬불꼬불한 논길을 걷다보면 그가 학창 시절부터 스케치해 완성한 그만의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거리가 멀다보니 자주 오지는 못 하지만 머리를 식히거나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게 된다고. 언뜻 보면 창고처럼 보이는 사각의 콘크리트 건물의 미닫이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싱그러운 초록 이끼를 담은 돌 어항과 물이 채워진 수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사한 연꽃이 떠 있는 수정원은 지하수를 끌어와 흘려보낸 뒤 다시 그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돌아오도록 설계한 연못으로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항상 샘솟도록 꾸몄다.
여백의 미를 살려 편안한 공간 만들기로 잘 알려진 건축가 조병수.(좌) 복도와 거실, 작업실 등 저마다의 공간은 벽이나 파티션 없이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것이 특징이다.(우)
미닫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대나무 정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대나무 잎이 푸르름을 더한다. 집 안 가운데 있는 수정원 주변은 나무 기둥을 군데군데 놓아 멋을 더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둔 고재가 오래된 장식품 역할을 한다.(왼쪽부터 차례로)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앞마당의 정사각형 연못. 연꽃과 물고기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밖에서 보면 사과 상자같은 모습을 한 건축가 조병수의 집은 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콘크리트 집 한 쪽 벽에 미닫이 철문을 만들었다. 문을 열면 앞뜰의 소나무와 수곡리의 논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왼쪽부터 차례로)
비어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그의 철학대로 가구는 거의 두지 않고 심플하게 꾸민 집안 내부. 벽 한 쪽 선반에는 그가 수집해 온 반질반질한 조약돌을 올려 장식 했다. 작업실 뒤의 한쪽 코너에는 오래된 전축이 보인다. 그가 젊은 시절 즐겨 들었다는 LP판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왼쪽부터 차례로)
“3년 전쯤 공기 좋고 한적한 이곳에 작업도 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이 집을 지었어요.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을 만든 거지요. 멀리서 찾아오는 반가운 친구들과 마주 앉아 벼가 익어가는 풍경, 단풍 드는 산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여유를 찾는답니다.”
이곳에서는 TV는 물론이고, 어느 집에나 있는 소파나 침대도 찾을 수 없다. 꽉 채워진 것보다는 비어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그의 철학을 이곳 수곡리 집에도 담아낸 것. 작업 테이블 옆에 있는 나무로 만든 투박한 장롱 정도가 이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가구다. 언뜻 보기에는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의 이음새가 정교한 장롱으로, 안에는 건축 관련 서적과 시집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그 옆으로 보이는 커다란 페치카는 겨우내 집 안에 온기를 주고, 한쪽으로 놓인 큼직한 테이블은 침대 대신 사용한다.
그레이 톤으로 꾸민 주방은 냉장고와 식탁 겸 개수대만 들여 놓아 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으로 꾸몄다.
연못을 빙 둘러싼 유리문은 접이식 슬라이딩으로 설계돼 있어 문을 열면 거실, 복도, 작업 공간, 주방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벽이나 파티션 없이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거실, 주방 등의 생활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것이 특징.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기둥 대신 그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재로 기둥을 세우고 천장과 바닥을 꾸며 내추럴한 분위기를 낸 것도 눈에 띈다. 문과 창문, 수납 가구 역시 모두 소나무로 만들어 편안한 고재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반영했다. 복도를 따라가면 구석구석 제주도 옛집의 문짝으로 사용됐던 고재, 다듬잇돌로 사용하던 고재 등을 볼 수 있는데, 비스듬히 기대두어 장식품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복도를 제외한 공간은 살림살이를 거의 두지 않아 깔끔하고 실용적으로 꾸몄다. 3.3㎡ 남짓한 황토방에는 장롱만 들여놓았고 거실에는 책상 하나, 주방에는 냉장고와 식탁 겸 개수대만 놓아 넓고 시원해 보이도록 했다. 이 집의 숨은 매력은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을 갖춘 것. 집 안 곳곳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조화를 이뤄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분위기를 전한다.
얼마 전 그는 한 건축지에 사과상자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다. 투박한 사각 송판의 사과상자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조병수는 “비어 있는 상자는 텅 빈 채로 아름답고, 잘 익은 사과들이 채워지면 채워진 대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수곡리 언덕에 세워진 텅 빈 사과상자 같은 그의 집이 나날이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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