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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urmet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의 ‘요리는 요리다_시골보쌈 & 감자옹심이’

청와대 김장하던 날, 보쌈의 추억

청와대에서도 김장을 한다. 이런 날 대통령의 밥상은 무조건 보쌈이다

여성동아

2017. 04. 06


“청와대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사람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이 질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김장하는 날요”라고 대답을 하곤 하죠. 아마 김치를 담가본 분이라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청와대에서도 해마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사다 김장을 합니다.

1년 중 가장 힘든 때죠. 청와대에선 12월 초 꼬박 이틀 일정으로 주방 인원 전부 본관에 모여 ‘거사’를 치르곤 했습니다. 첫날은 배추를 씻어서 소금에 절이는 일을, 이튿날은 김칫속을 만들어 배추에 펴 바르는 일을 하곤 했죠.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하셨던 MB 정부 땐 한 번에 배추 4백 포기를 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청와대의 김치는 어떤 스타일이었냐고요? 보통 대통령의 입맛이나 취향에 따라 김장 김치 스타일도 달라집니다만, 제가 모신 두 분은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 젓갈을 많이 쓰기보다는 담백한 스타일의 김치를 담그곤 했습니다. 일반 가정집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와대에서 김장하는 날은 꼭 잔칫날 같았습니다. 배추김치와 앙상블을 이루는 보쌈 고기가 그날 메뉴의 백미였죠. 보쌈용 돼지고기로 여러 부위가 있지만, 청와대에선 꼭 삼겹살을 삶았습니다. 살코기만 있는 것보다는 적당히 비계와 섞인 것이 맛있잖아요. 잡내를 잡기 위해 끓는 물에 녹차 티백을 넣어 삶는 것도 특징입니다.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진 않죠.

건강식을 즐겼던 VIP는 구운 고기보다는 이렇게 삶아낸 보쌈 고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꼭 김장하는 날 뿐만 아니라 수시로 25~30포기씩 김치를 담그고, 그와 함께 보쌈을 곁들여 냈죠. 그렇다고 VIP가 우리처럼 사람들을 모아놓고 푸짐하게 보쌈과 김치를 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혼밥’용 접시 위에 올라가는 것은 고작 보쌈 고기 대여섯 조각이었으니까요(웃음).

푸짐하고 정갈한 맛에 반하다



청와대에선 일반 가정집에 비해 김치를 자주 담그다 보니 그만큼 보쌈을 먹을 일도 많았죠. 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지금은 김치를 직접 담글 일이 거의 없어서 보쌈이 당기는 날이면 단골 식당을 찾곤 합니다.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시골보쌈 & 감자옹심이’는 소문난 지역  맛집입니다.



예약 없이 찾으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가게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죠. 사실 처음엔 강원도 음식인 ‘감자옹심이’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가 보쌈까지 먹게 됐습니다. 푸짐하고 정갈한 음식에 반해 이 맛집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한두 달 전쯤 상암동에도 같은 가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요즘은 사당동 대신 상암동을 찾곤 합니다.

시골보쌈 & 감자옹심이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 추천할 만한 곳이에요. 멤버 중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굴보쌈이나 오리보쌈 등을 시켜서 먹을 수도 있고, 고기 굽는 냄새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모둠보쌈을 시키면 돼지고기, 오리고기, 주꾸미 등과 함께 밑반찬이 푸짐하게 딸려 나오는데, 모두 국산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게 이 가게의 자부심이라고 하네요.




김금란 대표에게 물으니 이곳에선 보통 하루에 세 번, 두 시간에 걸쳐 고기를 삶아낸다고 합니다. 보쌈 고기는 대량으로 삶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데, 집에서 먹을 때보다 더 야들야들한 맛이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나 봅니다. 보통은 보쌈용 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섞어 내는데, 주문할 때 선호하는 부위를 고를 수도 있다네요.

보쌈 얘기를 한참 했지만 제가 이곳을 처음 찾게 된 이유, 감자옹심이에 대해서도 덧붙여볼까 합니다. 감자옹심이는 쌀과 밀이 귀하던 시절에 감자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토속 음식 중 하나죠. 전 정말 감자옹심이 마니아입니다. 제 레스토랑 대표 메뉴 중 하나인 감자뇨키도 감자옹심이에서 착안해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감자옹심이는 반죽의 90% 이상이 감자로 이루어져 영양도 듬뿍 담겨 있습니다. 예전부터 천연 조미료로 쓰였던 표고버섯을 사용해 감자옹심이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작 VIP 식탁엔 감자옹심이를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보쌈과 감자옹심이,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바로 저칼로리 건강식이라는 거죠. 아휴, 원고를 쓰는 이 순간 입에 침이 고이네요. 이번 주말엔 봄동 겉절이에 보쌈 고기 한 판 삶아야겠습니다.

ADD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서울산업진흥원 건물 지하 1층
TEL 02-303-1592


기획 여성동아 진행 정희순 사진 홍태식 디자인 최정미




한상훈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우연히 멧돼지 발골 장면을 보고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웨스턴 조선 호텔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거친 뒤 7년간 청와대 서양 요리 담당 조리장을 지냈다. 깐깐한 VIP의 입맛을 맞춰낸 ‘절대 미각’으로 레스토랑을 엄선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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