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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수제맥주 업계의 암울한 미래

오홍석 기자

2023. 06. 08

주류 시장이 원자재값 상승, 주류세 인상에도 호황을 맞고 있다. 수제 맥주 업계만 빼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맥주 업계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악재가 겹치면서 경영난에 빠질 양조장이 여럿 나올 것 같네요.”

최근 이야기를 나눈 한 맥주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가 말하는 악재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자재값과 주류세 인상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맥주 재료는 대부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맥주 주재료인 수입 맥아 가격은 지난 3분기 기준 kg당 983.97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6% 올랐다. 같은 기간 수입 홉 가격은 70.54% 급증한 3만3339.73원이다. 홉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홉의 주요 생산국인 미국과 유럽에서의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급감이 있다. 더불어 올해 맥주 주류세가 리터당 885.7원 올랐는데, 이는 역대 최대 인상폭이다. 맥주 주류세는 지난해 리터당 20.8원 오른 데 이어 또다시 3.57% 올랐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악재지만 맥주를 제외한 다른 주종은 비교적 호황을 맞고 있다. 가령 평균 가격이 10만 원이 넘는 위스키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위스키 연간 수입량은 전년 대비 72.6% 급증했다. 공급이 한정된 위스키는 매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고객들이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오픈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는 비단 수입산 위스키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노하우를 학습했다는 김창수 대표가 만든 ‘김창수위스키’ 역시 K-위스키를 표방하며 이 열풍에 올라탔다. 김창수위스키는 현재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소비자가격 20만 원대에 판매된 위스키의 리셀가는 200만 원을 호가한다.



전통주 시장도 호황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통주 산업 규모는 2020년 627억 원에서 50%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2021년 941억 원으로 팽창했다. 연예인 마케팅을 앞세운 ‘원소주’의 활약이 도드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원소주의 흥행 덕택에 전통주는 ‘올드’하다는 인식이 불식되며 막걸리와 여타 증류주 판매량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전통주 시장의 성장이 의미 있는 이유는 가격대가 비교적 낮게 형성된 기존 소주와 막걸리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점이다.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값이 비싸더라도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이른바 ‘가심비’ 소비가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성향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전통주 업계 관계자는 “와인은 3만 원이면 저렴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 전통주는 3만 원이 넘어가면 굉장히 비싸게 여겨졌다. 최근엔 소비자들이 가격에 느끼던 심리적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맛있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충성고객 만들었어야”

주류업계 호황이 수제맥주 업계만 비켜나가고 있다.

주류업계 호황이 수제맥주 업계만 비켜나가고 있다.

수제 맥주 업계의 상황은 다르다. 코로나19 기간 수제 맥주 업계를 이끌어온 컬래버 시리즈의 ‘약발’이 다해가면서다. 이에 대해 대기업 맥주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수제 맥주를 구매하도록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컬래버 맥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곰표 밀맥주’의 경우 상표를 제공한 대한제분과 맥주 생산을 맡은 세븐브로이가 지난달 협업을 종료했다. 3년 계약이 끝나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한 대한제분은 경쟁 입찰로 새로운 제조사를 찾을 방침이다.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의 원활한 생산을 위해 자사 맥주 생산을 중단하면서까지 설비 확장에 300억 원 이상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븐브로이는 곰표 밀맥주의 포장만 ‘대표 밀맥주’로 바꿔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의 터줏대감 ‘카브루’는 4월 경기 가평군에 있는 ‘상색 브루어리’를 매각했다. 카브루 또한 대다수의 양조장처럼 컬래버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경영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두 사례를 보며 국내 양조장들이 컬래버 흥행 기간 만들어진 유통 채널을 통해 자사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맥주를 개발, 유통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성 있는 맥주로 충성고객층을 만들어놨더라면 불가피한 가격 상승과 식어버린 컬래버의 영향이 지금보다 덜했으리라 예상해본다.

사실 수제 맥주 업계가 컬래버를 앞세워 지난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은 맞지만, 그 성장에 내실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곰표 밀맥주만큼의 히트는 아니었지만 컬래버 맥주로 매출이 ‘반짝’했다 다시 쪼그라든 양조장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맥주 업계 전문가는 “크래프트 비어는 대기업 맥주처럼 큰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마니아의 영역으로, 충성심 있는 소비자들에 의해 굴러간다”며 “인지도 높은 토종 양조장이나 히트 제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2023년 마케팅의 핵심 키워드에 ‘평균의 실종’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평균의 실종은, 모두에게 소구되는 브랜드는 점차 힘을 잃고 고유의 영역을 구축해 충성 소비자를 보유하는 브랜드는 살아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컬래버 거품이 꺼지며 이제 수제 맥주 업계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는 고객을 사로잡고 묶어두는 실력 있는 양조장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크래프트비어 #수제맥주 #주류세인상 #여성동아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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