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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ITH CHANNEL A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유통기한 연금술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채널A 제공

2015. 05. 13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고민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릴지 말지 하는 고민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 폭탄세일 뒤에 숨겨진 얼마 남지 않은 유통기한을 보면 물건을 집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줄 마법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유통기한 연금술’이다.

유통기한 연금술

유통기한을 살피고 있는 김진 기자.

유통기한 연금술
‘유통기한 연금술?’ 처음 듣는 낯선 단어에 고개를 갸웃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연금술이란 중세기 유럽에서 성행했던 전설 같은 것인데, 돌과 같은 비금속을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화학적 기술을 의미한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유통기한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다는 건가?’ 맞다. 이를테면 유통기한 5월 1일까지인 우유를 5월 21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꾸는 데 모두 실패했지만, 필자는 유통기한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말이다.

본격적인 유통기한 연금술에 앞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에 나섰다. 2년간의 풍부한 자취 경험이 있는 필자와 주부 9단과의 ‘마트 장보기’ 대결이다. 평소 구입하는 습관대로 같은 종류의 품목을 구매한 후 누가 더 저렴하게 장을 봤는지 비교해보는 것이다. 첫 번째 구입 품목은 생닭과 삼겹살. 필자는 평소 구입하던 습관대로 신선해 보이고 크기가 큰, 그리고 유통기한이 넉넉한 제품을 골랐다. 그런데 주부 9단은 유통기한이 임박해 20% 할인 가격표가 붙어 있는 생닭과 삼겹살을 골랐다. 두 번째 품목은 우유와 달걀. 필자의 경우 유통기한이 넉넉한 낱개 상품을, 주부 9단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묶음 상품을 선택했다. 이외에도 두부, 햄 등 8가지 품목을 구입한 결과 필자는 5만1천3백원을 지불했고, 주부 9단은 3만6천4백원만을 지불했다. 이럴 수가. 무려 1만5천여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 이런 식으로 한 달간 4번 장을 본다면 6만원, 1년이면 72만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식품을 구매하고도 남들보다 몇 만원의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게 세상에서 제일 찝찝한 일이건만. 무엇이 필자와 주부 9단의 지갑 출혈을 갈랐을까. 비결은 유통기한에 있다. 주부 9단은 유통기한이 임박해 세일에 들어간 상품 위주로, 그리고 낱개 상품보단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묶음 상품 위주로 구매를 한 것이다. 만약에 유통기한만 늘릴 수 있다면, 가계 경제에도 막대한 보탬이 될 것이다. 물론, 똑같은 물건을 남들보다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째지는 기분’은 덤이다.

냉장 보관 시 우유 50일, 달걀 25일, 두부 90일까지 이상 無

그렇다면, 마치 마법처럼 들리는 유통기한 연금술이 가능할까. 필자는 우유와 달걀, 요구르트와 식빵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유통기한 연금술 실험에 돌입했다. 먼저 우유 실험. 방법은 간단하고도 무식하다. 유통기한을 넘겨서 우유가 상할 때까지 마셔보는 것이다. 배탈 날 각오를 하고 말이다. 먼저 밀봉 그대로의 우유와 개봉해서 보관한 우유 2가지 실험군을 준비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루 평균 40회 냉장고 문을 여닫는다는 통계 자료를 고려해, 실험 기간 내내 매일 40번씩 냉장고 문을 여닫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먼저 유통기한까지 한 번도 뜯지 않은 우유. 유통기한으로부터 5일이 지나 마셨봤다. 막 구입한 새 우유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통기한으로부터 10일 뒤. 이미 한번 개봉했던 그 우유, 마셔도 괜찮을까. 평소 유통기한으로부터 10일이 지났다면 바로 버렸을 우유를 바라보며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마셔봤다. 맛은 그대로였다. 냄새도 고소한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또 10일이 지났다. 무려 유통기한으로부터 20일 지난 우유를 먹어야 할 차례다. 화장실로 달려갈 각오를 하고 20일 지난 우유를 마셨다. 놀랍게도 우유 특유의 고소한 맛과 향이 아직 살아 있었다. 유통기한으로부터 20일이나 지났건만 우유는 상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배탈도 나지 않았다.



유통기한 연금술
이번엔 개봉해서 보관한 우유를 대상으로 실험에 돌입했다. 유통기한 후 2일, 3일이 지났지만 우유의 고소한 맛은 살아 있었다. 그렇게 5일, 6일, 10일이 흘렀다. 유통기한으로부터 10일이 지난 개봉 우유. 맛을 봤는데, 우유의 끝맛이 마치 맹물같이 밍밍했다. 변질이 시작되면서 우유의 맛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또 5일이 지났다. 유통기한으로부터 15일이 지난 개봉 우유. 우유를 따르는 순간 우유가 묽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맛을 본 순간, 중간부터 누린내가 나며 상한 맛이 느껴졌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15일이 지난 후부턴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더 정확한 검증을 위해 먼저 마셨던, 유통기한 20일 지난 우유를 대상으로 녹색식품안전연구원에 세균 검사를 의뢰했다. 유통기한까지 개봉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개봉해서 20일간 마셨던 우유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유통기한으로부터 20일이 지난 우유의 세균 수치는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미미한 정도였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동일한 검사를 실시했을 때 50일까지도 세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유는 냉장 보관할 경우 포장지에 명시돼 있는 유통기한보다 훨씬 오랫동안 마실 수 있고, 특히 개봉을 하지 않았을 때는 유통기한이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냉장 온도 5℃에서는 세균이 증식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우유는 초고온 살균을 하기 때문에 ml당 매우 적은 세균만 존재합니다. 만약 25℃, 35℃에서 보관했다면 세균은 2일, 3일만 지나도 급격히 증가했을 겁니다. 냉장 보관이 세균 증식을 막은 겁니다.”(정윤희 한국소비자원 박사)

고기는 식용유 발라 랩으로 싸 냉동 보관해야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 결과 달걀은 유통기한으로부터 20일이 지날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했고, 세균 역시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떠 먹는 요구르트 역시 20일이 지나도록 맛있었고, 세균 역시 검출되지 않았다. 식빵도 마찬가지였다. 연금술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보관 온도에 있었다. 냉장 온도 5℃에서 우유는 유통기한을 무려 50일까지 연장할 수 있고, 식빵은 20일까지, 치즈는 70일까지, 달걀은 25일까지, 두부는 90일까지, 액상 커피는 30일까지, 요구르트는 20일까지, 냉동 만두는 1년 이상 연장이 가능하다. 단, 식빵과 냉동 만두는 냉동 보관이 원칙이다.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선 온도 말고도 식품별 보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쌀이나 잡곡의 경우 벌레 때문에 고민이라면 압축 비닐팩에 넣어 냉장 보관을 하면 벌레 생성을 방지할 수 있다. 고기의 경우 핏물을 잘 씻은 후 표면에 식용유를 살짝 발라주고, 공기가 닿지 않게 랩으로 잘 싸서 냉동 보관하면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 신선한 상태의 마블링과 육질을 유지할 수 있다. 햄 역시 식용유를 바르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식용유를 고기 표면에 바르면 보습 효과가 있고, 산소를 차단해 갈변을 방지해줍니다. 그래서 신선한 빨간 색깔이 오래갈 수 있습니다. 미생물은 산소를 좋아하는데 기름이 산소를 막아주기 때문에 미생물의 번식, 즉 부패나 변질을 지연시킬 수 있고, 영양소 파괴도 거의 없습니다.”(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

마지막으로 양파와 감자도 유통기한 연금술 실험을 해봤다. 올이 나가서 신지 못하는 여성의 스타킹에 양파를 하나씩 넣은 후 매듭을 지어 양파와 양파가 닿지 않게 보관하면 보름이 지나도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감자의 경우는 독특한 비법이 있는데, 감자들 사이에 사과를 한 알 넣어두면 사과에서 나오는 에틸렌 가스가 감자의 싹을 막아준다. 싹이 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유통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유통기한이 두려워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안타까운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마감 임박인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유통기한 연장술로 남들보다 더 오래 신선한 맛을 즐겨보자. 유통기한은 단지, 판매가 가능한 숫자에 불과하다.

유통기한 연금술
◎ 상한 달걀과 신선한 달걀 구별법

1 수조에 물을 가득 채운다.

2 달걀을 물에 띄워본다. 물에 뜬 것은 상한 달걀, 물에 가라앉은 것은 신선한 달걀이다.

3 상했을 경우 달걀 안에서 미생물 증식이 이뤄져 부패되는데, 이때 공기층이 생겨 달걀이 물 위로 뜨게 되는 것.

디자인 ·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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