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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COOKING STORY

‘하얀 국물’ 전쟁 진짜 육수 논쟁

음식 맛의 기본

글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진행 | 조윤희 프리랜서 사진 | 현일수 기자

2012. 03. 22

팔도 ‘꼬꼬면’, 삼양식품 ‘나가사끼 짬뽕’, 오뚜기 ‘기스면’, 농심 ‘후루룩 칼국수’… ‘꼬꼬면’은 닭육수, ‘나가사끼 짬뽕’은 돼지뼈 육수와 해물, ‘기스면’은 닭육수에 해물, ‘후루룩 칼국수’는 돼지뼈와 닭으로 만든 육수를 사용한다. 결국 이번 라면 전쟁의 승부처는 면발이 아닌 육수. 이번 기회에 육수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하얀 국물’ 전쟁 진짜 육수 논쟁


육수는 고기 삶은 물이다. 삶으면 고기의 단백질이 물에 용해돼 감칠맛이 난다. 한국 음식에서는 육수 재료를 닭, 꿩, 돼지, 소, 멸치, 디포리 등을 주로 쓴다. 한국의 밥상 차림에는 대부분 국물이 있다. 주식인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으려면 반찬이 필요한데 이것만으로는 퍽퍽하니 국이 오르는 것이다. 이 국 맛을 좌우하는 것이 육수다.
국물 음식에 육수가 쓰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에는 고기가 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맹물로 국을 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훌륭한 대체품이 있었다. 된장과 간장이다. 된장과 간장은 콩으로 만드니 단백질의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된장과 간장을 풀어 국을 끓이면 그냥저냥 먹을 만한 국이 된다.
바닷가 지역에는 젓국이 있었다. 여러 생선에 소금을 더해 2~3년 두면 맑은 국물이 생기는데, 이를 내려 국물 맛을 내는 데 썼다. 한국에서는 근대 이후 젓국이 김치 담그는 정도의 용도로 한정됐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지금도 젓국을 다양한 음식에 활용한다. 생선도 고기이니 젓국도 육수다. 고급스런 이름을 붙이자면 ‘발효 육수’ 정도 되겠다. 새우젓도 발효 육수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국에 새우젓을 넣어 국을 끓이는 것은 지금도 많이 쓰는 조리법이다.

꿩국물 VS 닭국물
육수와 관련해 흔히 하는 속담이 있다. ‘꿩 대신 닭.’ 떡국을 끓일 때 꿩으로 육수를 내야 하는데 꿩이 없어 닭을 쓰게 되면서 이 말이 생겼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겨울에 꿩 사냥하기가 쉬워 꿩을 썼을 수도 있다. 사냥으로 잡은 꿩은 눈에 박아두면 겨우내 쓸 수 있었고, 설날이면 아직 눈이 녹을락 말락 할 때니 저장된 꿩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꿩이 귀해 대신 닭을 쓰면서 생긴 말이라는 데는 의문이 있다. 양계가 산업으로 정착하기 전만 하더라도 설날 무렵 닭은 무척 귀했다. 닭은 봄이 돼야 알을 품고 병아리를 치니 겨우내 농가의 닭은 달걀을 생산하는 암탉 몇 마리에 수탉 한 마리 정도였을 것이다. 겨울에 쉬 잡아먹을 수 있는 가축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꿩은 냉면 육수에도 쓰는 등 겨울에 흔히 먹던 음식 재료이니 ‘꿩 대신 닭’은 떡국과 관련된 속담이라기보다 숲이 우거져 꿩을 잡기 어려웠을 때, 즉 겨울이 아닌 계절에 먹었던 음식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음식과 전혀 관련 없는 속담이었다가 양계 산업으로 닭이 흔해지면서 그 뜻이 변했을 수도 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꿩이 닭보다 더 맛있는 음식일 것이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실제 꿩국물은 그리 맛있지 않다. 차가운 국물에서도 누린내가 난다. 동물은 대체로 야생에 가까울수록 누린내가 심하다. ‘꿩 대신 닭’은 이제 쓸모없는 속담일 수 있다.

진짜 닭국물
육수 중 가볍고 감칠맛이 강한 것으로는 닭국물이 제일이다. 삼계탕, 백숙, 닭곰탕, 닭칼국수 등이 닭국물에 맛을 의존하는 음식이다. 서양 요리에서도 닭국물을 흔히 쓴다. 그런데 한국인이 먹는 닭국물이 과연 맛있는 닭국물인지 의심이 든다. 닭 한 마리 푹 고아봤자 국물은 맹탕에 가깝다. 그래서 삼계탕집에서는 이 국물에 곡물을 갈아넣고 닭발을 따로 삶아 더하는 등 별별 짓을 다한다. 한국인이 먹는 닭국물이 맹탕인 까닭은 닭 때문이다. 시중에서 파는 닭을 육계라 하는데, 이 육계가 외래종이다. 외래종 육계는 구이나 튀김용으로 개량된 것이다. 국물용이 아니라는 말이다. 닭국물이 맛있으려면 토종닭을 써야 한다. 토종닭은 닭살이 단단해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게 하려면 3시간 이상 끓여야 한다. 맛있는 삼계탕을 끓이려면 토종닭으로 국물을 내고, 이 국물에다 육계를 삶으면 된다.

‘하얀 국물’ 전쟁 진짜 육수 논쟁




쇠고기국물

‘하얀 국물’ 전쟁 진짜 육수 논쟁


한국인이 먹는 국물 중 쇠고기로 끓인 것이 제일 많을 것이다. 설렁탕, 곰탕 등의 국밥은 다 쇠고기 육수이고, 대부분의 국이 쇠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냉면의 육수도 쇠고기다.
한반도의 소는 일소였다. 이를 잡아먹으려면 늙어 일을 못 하게 됐을 때나 가능했고, 이들은 평생 풀 사료만 먹었다. 이렇게 풀만 먹고 자란 소의 고기로 낸 국물 맛은 그리 좋지 않다. 특히 누린내가 심했을 것이다. 이 일소가 고깃소로 바뀐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소 사육을 적극 권장했고 이때부터 쇠고기는 일상 음식이 됐다. 당시 가장 맛있는 소로 ‘평양우’를 쳤다. 평양냉면, 평양온반 등 평양의 쇠고기국물 음식이 유명해진 것은 평양우 덕이라 할 수 있다. 쇠고기국물은 한우로 내야 맛있다는 것은 한우라는 품종에서 유래하는 것도 있지만, 사료의 영향도 있다. 한우는 곡물 사료를 많이 먹고 자라 누린내가 적다. 반면 수입 쇠고기는 대체로 풀 사료를 먹이며 방목한 소라 누린내가 스며 있다.

가짜 쇠고기국물
일제강점기에 MSG라는 화학조미료가 발명됐다. 다시마의 감칠맛 성분을 연구해 그와 비슷한 맛을 내는 화학구조물을 만들어낸 것인데, 한반도에서는 이 화학조미료를 쇠고기국물 음식에 적극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에 냉면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 화학조미료가 듬뿍 들어갔다. 요즘도 이 화학조미료를 이용한 가짜 쇠고기국물이 번창하고 있다. 특히 냉면집 육수는 믿을 만한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 쇠고기국물은 맛이 금방 변해서 그 대용품으로 화학조미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적당히 쇠고기국물을 내고 여기에 화학조미료를 듬뿍 넣고 졸이면 진득한 진액이 된다. 외식업계에서는 이를 ‘짬’이라 한다. 이 짬은 한 달을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찬물에 이 짬을 타서 냉면의 육수로 쓰는 것이다. 바른 일이 아니다.

멸치국물
멸치가 한반도의 주요 어족자원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는 동해에서 대량으로 잡히는 멸치로 기름을 뽑고 사료를 만들었다. 이때 멸치를 삶아서 말리는 마른멸치 제조법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삶아서 말리니 자건(煮乾) 멸치라 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삶거나 훈제한 후 말린 생선으로 국물을 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까지 육식을 금지했기 때문에 생선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런 국물용 생선 제조법이 발달했다.
한국 음식에서 마른멸치가 국물 내는 용도로 번진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일제시대 일본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마른멸치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남부 지방에서는 일찌감치 멸치국물을 썼으나 중부 지방에서는 마른멸치 국물 맛을 어색해했다. 마른멸치의 비린내에 익숙해지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른멸치용 멸치를 잡는 방법은 기선권현망과 정치망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기선권현망은 배 두 척이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멸치 어군이 보이면 그물을 던져 양쪽에서 끌어당겨 잡는 방식이고, 정치망은 바다에 붙박이 그물을 놓아 조류를 따라 들어온 멸치를 거두는 것이다. 정치망은 멸치를 잡아 삶고 말리는 과정이 짧아 정치망 멸치가 맛있다.
고운 멸치국물을 얻으려면 중간 크기의 중멸을 써야 한다. 보통은 싸고 큰 멸치인 대멸을 육수용으로 쓰지만, 대멸은 기름이 많아서 쩐내가 나기 쉽다. 국물용 멸치는 마른 것은 좋지 않고 만졌을 때 촉촉해야 한다. 냄새를 맡아보고 사야 하는데, 대형 매장에서 비닐에 담아 파는 멸치는 그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멸치 대용 디포리

‘하얀 국물’ 전쟁 진짜 육수 논쟁


2000년대 들어 마른멸치 대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생선이다. 멸치는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는데 디포리는 오래 끓여도 국물이 가볍다. 멸치보다 비린내가 있지만, 다시마 등을 더하면 비린내는 많이 잡힌다.
디포리의 표준말은 밴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은 밴댕이를 다른 생선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 오해의 생선이 반지다. 반지는 강화도와 군산 등 서해안 지역에서 생선회, 젓갈로 많이 먹는 생선이다. 이런 혼란은 극에 달해 언론에서도 디포리를 반지라 하고 반지를 밴댕이라 해 소비자들은 서너 종류의 생선이 제각각 존재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정확히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다.
반지 청어목 멸치과 생선. 서해안의 많은 지역에서 밴댕이라는 사투리로 부른다. 봄에서 여름 사이에 서해안에서 잡힌다. 회와 젓갈로 먹으며 말리지 않는다. 몸 전체가 은색이다.
밴댕이 청어목 청어과 생선. 디포리라는 사투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남해안에서 가을에 잡힌다. 회와 젓갈로 쓰지 않으며 말려서 국물 내는 데 사용한다. 전체적으로는 은색이고 등 쪽이 푸른데, 그래서 ‘디포리(뒤가 파랗다)’라는 사투리가 만들어졌다.
남해에서 디포리는 멸치보다 흔한 생선이었다. 많이 잡힐 때는 멸치 가공 공장에서 이를 식용으로 처리하지 못해 사료용으로 돌릴 정도였다. 멸치가 비쌀 때 이를 대신하는 서민들의 음식 재료였다. 그런데 디포리가 인기를 끌면서 멸치와 같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같은 가격으로 보자면 멸치보다 깊은 맛을 내지 못하므로 다소 부족한 음식 재료인데, 음식도 유행이다 싶으면 그 가치와 관계없이 가격이 뛰기도 한다. 디포리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멸치와 반반 섞어 사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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