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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IFE IN NEWYORK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 | 이미령 사진 | 로랭 달레, REX 제공

2012. 02. 17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1 부유한 유대인 뉴요커인 마담 나바토프를 위해 만든 런치 메뉴 중 염소치즈와 설탕에 졸인 양파, 토마토 타르트. 2 애플 타르트 타탱(프랑스식 거꾸로 뒤집은 사과 파이). 3 양갈비구이와 리조토. 1, 2, 3 모두 마담 나바토프의 런치 메뉴로 격식을 차리지 않은 가정식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스테판이 자기 대신 디너파티 하나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묻는데?”
2008년 어느 봄날 로랭이 말했다. 영사관 헤드 셰프인 스테판이 개인 고객의 디너파티를 자기 대신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는 프라이빗 셰프로만 일하던 로랭이 퍼스널 셰프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다. 뉴욕 컬리너리계에는 ‘프렌치 커넥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프렌치 셰프들이 서로 도와주고 자발적으로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로랭이 뉴욕에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인맥’ 덕분이다. 미국에서, 특히 요리사야말로 인맥이 매우 중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로랭의 개인 고객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녔다.

· 친(親)프랑스파다.
· 유럽 여행을 즐긴다.
· 프랑스 음식을 선호한다.
· 컬리너리적으로 ‘스놉(Snob: 아는 척하는 엘리트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 음식과 와인에 대해 상당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다.
·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산다.
· 뉴욕 상류층이나 상주하는 프라이빗 셰프를 둔 최상류층은 아니다.
· 미식가다.
·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다.
· 좋은 음식을 즐기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기며 많은 돈을 지불한다.
· 사교 생활을 즐긴다.

상기 프로필의 고객들은 주로 프렌치 셰프를 찾는다. 그들의 집에 가면 줄리아 차일드가 쓴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이나 라루스 가스트로노미크의 ‘컬리너리 사전’, 미레이유 길리아노의 ‘French Women Don’t Get Fat’ 같은 책들이 요리책 선반에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물론 프랑스 요리 전문의 미국인 셰프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인이면서 프렌치 요리를 하는 사람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음식을 원할 때 한국인 셰프를 먼저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진짜(Authenticity)’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

유대계 뉴요커가 프렌치 셰프를 선호하는 이유
마담 나바토프(Nabatoff)야말로 위 예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그는 여든이 넘은 노부인으로 해마다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Cote d’Azur) 지방에서 휴가를 보낸다. 남편을 여읜 후 아파트 전체를 프랑스 프로방스식으로 꾸며놓고 푸들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첫 미팅에서 그는 “수많은 이력서 중 프랑스인은 단 한 명이었어요. 이력서는 볼 필요도 없었지요. 나의 이벤트를 맡아주세요”라고 말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우리 고객의 상당수는 마담 나바토프처럼 유대계 프랑코필(친프랑스파)이다. 물론 우연이 아니다. 2010년 이스라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인구는 1천3백42만1천 명이다. 그중 5백70만 명 정도가 이스라엘에, 5백20만 명 정도가 미국에 거주한다. 미국 유대인 중에서도 2백만 명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뉴욕 시, 뉴저지·코네티컷 주)에 몰려 있다. 뉴욕 시만 보더라도 1백만 명이 넘는다. 뉴욕 시 인구가 8백여만 명이니 유대인 수가 얼마나 많은 수인지 알 수 있다. 1654년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을 피해 브라질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 레시페를 도망쳐 나온 23명의 유대인이 뉴욕에 정착한 것을 계기로 이곳이 그들에겐 제2의 고향이 됐다. 뉴욕의 유통 업체나 공공 시설이 유대인 신년절(Rosh Hashanah)이나 속죄일(Yom Kippur)에 문을 닫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를 구성하는 유대인들은 경제, 정치, 문화, 언론, 학계 등 미국 주요 분야 지도층에 골고루 진출해 있다. 파워풀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대계 전체 유권자의 표를 70% 이상 획득하지 못하면 민주당 출신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는 얘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에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부유하고 파워풀한 유대인들이 모여 산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1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유대인 명절 ‘하누카(봉헌절)’의 촛불 켜기 의식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



프랑스인 셰프를 고용해 파티를 즐기는 유대인들은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아니다. 그들이 즐기는 음식도 훨씬 리버럴하다. 가끔은 이런저런 음식은 안 된다고 요구하기도 한다. 통계를 보면 미국의 유대인 6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코셔(Kosher) 다이어트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돼지고기(소시지, 햄 포함)나 조개류(굴 등을 비롯한 모든 조개),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어패류(랍스터, 새우, 게 등)는 피해달라고 주문한다. 코셔 인증(Kosher Certificate)을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육류와 우유를 함께 마시거나 조리하는 것도 거부한다. 반면 알코올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해 알코올 음료를 마시거나 알코올로 조리하는 데는 큰 거부감이 없다. 이런 유대계 뉴요커 고객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유대인의 식습관과 식사계율(Kashrut)에 대해 기본 상식을 갖게 됐다.

디너파티에 오로지 닭고기 구이만 주문하다니!
마담 나바토프의 딸은 영화 프로듀서다.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와 맨해튼을 오가며 산다. 쉰 살이 넘어 금융자본가와 결혼했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미드타운에서 디너파티를 연다. 마담 나바토프의 소개로 우리는 그 딸의 디너파티를 맡게 됐다. 보통 8~10명 정도를 위한 간단한 3가지 코스 디너파티다.
프랑스인 셰프만 찾는 마담 나바토프와는 달리 딸은 닭고기만 찾는다. 미국인들이 치킨 요리를 즐기는 것이 사실이나 매번 닭고기, 그것도 구이만 해달라고 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그녀가 유일하다. 매번 닭구이만 해야 하는 로랭에겐 지루한 작업임은 물론이고, 과연 닭고기만 원하는 고객에게 일인당 1백 달러가 넘는 고급 ‘고메(Gourmet)’ 서비스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닭구이 요리는 품질 좋은 닭을 완벽하게 굽기만 하면 80% 성공이다. 특별한 장식도 필요 없다. 로랭은 대신 애피타이저와 디저트에 온 정성을 다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식단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녀는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도 늘 같은 것만 원했다. 그린 샐러드와 심플한 초콜릿 케이크!
결국 그녀의 디너파티는 몇 번 맡다가 그만두었다. 수입이 문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다. 우리에겐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미식가인 고객이 가장 반갑다. 셰프가 자기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최고의 기술을 마음껏 발휘해서 고객을 행복하게 해준 만큼 일에 대한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완벽한 요리에 이어진 찬사… 그러나 손님이 쓰러졌다!
퍼스널 셰프로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일은 롱아일랜드 낫소 카운티의 쇼셋(Syosset)에 사는 레슬리의 디너파티였다. 쇼셋은 주민이 2만 명도 안 되는 한적한 소도시로 소설 ‘비스틀리’의 작가 알렉스 플린과 영화배우 나탈리 포트만 등이 산다. 메뉴는 레슬리와 함께 정했지만 사실 그는 우리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카나페로 미니 퀴시로렌(quiche-lorraine)과 초리조 소시지, 훈제 파프리카, 만체고(manchego) 치즈를 넣은 버섯 스터핑 요리를 준비해 샴페인과 함께 내고, 애피타이저는 처트니 양념에 절인 양파와 리덕션된 발사믹 소스로 맛을 낸 무화과를 곁들인 거위 간 요리를 준비했다. 애피타이저를 서빙할 때 몇 가지 그린 채소와 토스트한 브리오슈를 함께 준비했고, 달콤한 소테른 와인을 페어링했다. 이어 해산물 코스에서는 아스파라거스 벨루테(veloute)에 민트 향을 가미한 새우를 곁들이고 살짝 훈제한 소금을 뿌린 샹티이 크림을 얹어 내고 샤블리 와인을 마련했다. 육류 코스는 라타투이 리조토 케이크를 곁들인 은은한 프로방스 허브 향의 고급 양고기 요리를 준비했다. 앙트레 테르 코스에는 방돌 레드와인(Bandol)을 페어링하고 그 다음 코스로 플라토 드 프로마주(Plateau de fromages: 여러 가지 치즈를 적당히 분배한 쟁반)를 준비했다. 플라토 드 프로마주에 상큼한 비네그레트를 끼얹은 신선한 샐러드와 무화과, 건포도, 견과류, 과일잼도 함께 곁들였다. 마지막 디저트 코스로는 레드베리를 우려낸 와인 젤리를 두른 초콜릿 볼케이노 케이크를 바뉠스 레드와인(Banyuls: 포르토 와인처럼 단맛이 강한 알코올 강화 와인)과 페어링했다. 이 정도면 일인당 1백50달러가 훌쩍 넘고, 치즈 플레이트와 와인 비용이 추가되는 고급 디너파티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2 레슬리의 디너파티에 등장한 메뉴. 아스파라거스 벨루테에 민트 향을 가미한 새우를 곁들이고 살짝 훈제한 소금을 뿌린 샹티이 크림을 얹은 해산물 요리. 3 애피타이저로 준비한 거위 간 요리. 옆에 곁들인 것은 무화과. 4 프로방스 허브를 뿌린 양고기 요리.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1 레슬리의 디너파티에 모인 사람들. 음식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으나 예상치 못한 일로 우리 부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2 여러 종류의 치즈를 담은 쟁반. 3 초콜릿 볼케이노 케이크.



파티 당일 로랭은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플레이팅을 도왔다. 레슬리가 부엌을 드나들며 손님들의 음식 칭찬이 자자하다면서 식탁의 반응을 들뜬 목소리로 전달할 때마다 우리는 신이 났다. 마지막 디저트 서비스를 마친 후 대성공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며 기분 좋게 조리 기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사색이 된 레슬리가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한 여자 손님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긴 했는데 글쎄 알코올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아요.”
손님은 화장실 문을 열다가 뒤로 넘어졌는데 주위에서 손쓸 틈이 없었단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기절한 채 누워 있는 중년 부인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꿇어앉아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뒤통수를 부딪혔을 텐데….’ 나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몹시 걱정이 됐다. 로랭은 그새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가지고 와 기절한 부인의 남편에게 건넸다. 레슬리는 즉시 911에 전화했다.

케이터링 서비스 회사 ‘르 셰프 블루’를 차리다
몇 분 뒤 911 요원들이 도착했다. 세 사람의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로랭에게 “당신이 셰프인가요?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아닌가요?” 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살짝 윙크까지 했다. 911 요원은 로랭을 위로하려고 농담을 던진 것인데 내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로랭이 만든 음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소송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사들이 엄청난 보험료를 내는 이유가 바로 사소한 진료 문제도 쉽게 소송을 거는 환자들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만일 고객이 로랭에게 소송을 건다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응급실로 실려간 고객의 혼절은 로랭의 음식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다.
그날 이후 프리랜서로 소규모 프라이빗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던 우리는 정식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보험료를 내며 비상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소송을 밥 먹듯 하기 때문에 그 방법밖에 없어. 그리고 정식으로 회사를 차려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전망도 있지.” 로랭도 나의 말에 동의했다. 다행히 로랭이 A2비자를 가지고 있어 배우자인 나도 일찌감치 노동허가증을 받아놓았다. 나는 기업변호사인 스티브, 13년간 약사로 근무하다 요리사로 전향한 미국 친구 파멜라 부부와 함께 ‘르 셰프 블루’를 차렸다.
회사를 차리게 된 우리 부부의 사연을 들은 트레이시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매년 지불하는 보험료만 10만 달러가 넘어요. 해마다 몇 개월은 보험료만 벌고 있다고 보면 되지요.”
트레이시는 북부 뉴저지에서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사이며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고객이다. 우리는 그들의 디너파티뿐 아니라 개인 쿠킹 레슨도 해준다. 쿠킹 레슨이 끝나면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트레이시와 데이비드 부부 얘기는 다음 호에 소개한다.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셰프의 잘못이죠?”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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