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제는 긴장감보다 설렘 안고 무대에 올라요”

연극 ‘위험한 사람들’로 돌아온 배우 박준석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06. 02

슈트가 잘 어울리던 태사자의 막내에서 무대 위 진심을 전하는 배우로, 관객의 박수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온 박준석의 시간.



1997년 보이 그룹 ‘태사자’ 데뷔 당시, 박준석은 선 굵은 이목구비와 차가운 분위기로 소위 ‘비주얼 쇼크’라 불리며 대중의 시선을 붙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화려한 외모보다 묵묵한 성실함에 가깝다.

최근 그는 6개월간 이어온 연극 ‘보잉보잉’의 마침표를 찍었다. 당초 2월 종연 예정이었으나 관객 반응이 좋아 두 달간 연장했다. ‘노인과 바다’ 시즌 2와 ‘서울의 별’을 거쳐 6월 개막을 앞둔 ‘위험한 사람들’까지, 그는 지난 3년간 쉼 없이 무대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에게 무대는 언제나 설레는 공간이다.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고 공연 후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일상. 과거의 아이콘을 넘어 대학로 현장에서 사람의 온기를 배워가고 있는 배우 박준석을 만났다. 요즘의 하루부터 신작 준비 과정,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연기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3년간 성실하게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있는 배우 박준석.

3년간 성실하게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있는 배우 박준석.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배우 박준석의 하루는 어떤가요. 



6월 개막하는 연극 ‘위험한 사람들’ 연습에 한창이에요. 4월 말 ‘보잉보잉’ 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죠. 원래는 2월에 끝나는 거였는데 연장돼서 4월까지 갔거든요. 지난 3년간 연극을 계속해오고 있어요. 드라마도 찍고 있었는데, 그냥 계속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필요한 시점인 것 같더라고요. 특히 작년부터는 ‘뭐든 해보자’는 에너지가 생겼고, 요즘은 제 에너지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냥 쉬지 않고 달리자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올해는 더 많이 할 생각이고요.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엔 연기가 타고났거나 특별한 끼가 있는 사람들만 하는 영역인 줄 알았어요. 제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스스로 선을 그었죠. 그러다 가수 활동이 정리되는 시점에 사기도 당하고 배신도 겪으면서 한꺼번에 인생의 풍파가 몰려왔어요. 20대 초반에 갑자기 ‘멘붕’이 온 거죠.

가수 활동이 자연스레 마무리되던 그때 마침 광고를 찍었는데, 반응이 좋아 여러 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그게 연기를 시작하는 발판이 됐어요. 드라마로 시작해 영화도 찍고, 군 복무 후에는 연극에도 도전했죠. 당시만 해도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또 다른 영역으로 분류되는 분위기였는데, ‘다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2013년 말부터 연극을 준비했어요. 

‘방부제 외모’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데, 자신만의 관리 루틴이 있나요.

연극을 시작하면서 자기 관리를 더 철저히 하게 됐어요. 제 컨디션 때문에 무대에 못 올라가면 안 되잖아요.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그 책임감이 제가 연극이라는 장르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관리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음양탕’을 마셔요. 뜨거운 물 7에 찬물 3 비율로 섞으면 장기 온도와 비슷해져서 몸에 아주 좋거든요. 이걸 몇 년째 무조건 지키고 있어요. 그다음엔 따뜻한 소금물을 한 잔 마시고, 올리브오일에 생레몬을 짜서 먹는 것으로 아침 루틴을 마무리하죠. 결혼 전에는 영양제를 안 먹었는데, 요즘은 아내가 챙겨주는 걸 매일 먹고 팩도 자주 해요. 특히 가장 크게 바뀐 건 선크림 바르는 일이에요. 예전엔 안 발랐지만 자외선이 피부 노화에 직격탄이라는 걸 알고부터는 무조건 챙깁니다. 선크림 안 바르는 남성분들, 정말 중요하니까 꼭 바르셔야 해요(웃음).

처음 무대에 오르던 순간, 기억나시나요. 

가수로 워낙 큰 무대를 많이 경험해 봐서 그런지, 처음 연극 무대에 설 때도 떨림보다는 긴장감이 더 컸어요. 그런데 당시 ‘노인과 바다’를 함께하던 선배 배우분이 “준석아, 공연하는 거 너무 설레지 않니?” 하고 물었어요.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 딱 박히면서 제 안의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내가 왜 설렘이라는 단어로 이 무대에 접근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오르자’는 다짐을 하게 됐죠. 그 뒤로는 무대에서 긴장이 안 돼요. 그냥 ‘오늘도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죠. 연극은 매일이 라이브니까, 그 설렘을 매번 새롭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값진 것 같아요.

무대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실수의 순간들이 가장 생생해요. 한번은 공연 중에 같은 눈높이에서 관객분과 정면으로 딱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 순간 머릿속에서 대사가 완전히 지워져버렸어요.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또 ‘노인과 바다’를 할 땐 기계 결함 사고가 있었어요. 당시 연극으로는 최초로 무대 배경에 바다 영상을 크게 띄워서 시각적인 효과를 줬는데,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영상과 조명이 아예 꺼져버린 거예요. 2인극이라 상대 배우와 눈빛으로 ‘어떻게든 내가 버텨볼게’라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즉흥 연기로 시간을 끌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온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는 소름 돋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평소라면 종종 졸던 관객분들까지 ‘저 사람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집중하시는 게 피부로 느껴졌죠. 연출이었다면 일부러 그런 암전 효과를 넣고 싶었을 정도로, 저에게는 위기를 만족스러운 전율로 바꾼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6월에 새로 시작하는 연극은 어떤 작품인가요. 

‘보잉보잉’을 집필한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 ‘위험한 사람들’로 인사드리게 됐어요. ‘보잉보잉’에 등장하는 조지섭이 결혼 후 10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보잉보잉’이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상황이 바뀌는 ‘도어 슬램 코미디’였다면, 이번 작품은 말로 웃기는 코미디예요.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유쾌해서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흐름을 놓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보셔야 해요(웃음).

얼핏 보면 바람피우는 남자들의 소동극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내면과 심리를 다룬 꽤 깊이 있는 작품이에요. 실제로 저를 포함해 출연 배우 대부분이 유부남이라 처음엔 바람피우는 연기에 접근하는 게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즐겁게 연습하고 있어요. 대학로로 마실 나오듯 가볍게 오셔서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작품을 두고 가장 많이 갈등했어요. 아무래도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보니까요. 드라마나 영화는 촬영 기간이 끝나면 그 역할을 바로 내려놓을 수 있는데, 연극은 매일매일 무대 위에서 그 캐릭터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못된 역할을 반복하다 보면 저 자신이 정말로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그 부분이 걱정됐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바람피우는 코미디가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작은 거짓말 하나가 어떻게 눈덩이처럼 쌓여가는지, 그리고 ‘과연 이런 상황에서 유혹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제목이 ‘위험한 사람들’인 거죠. 결혼 후 10년이 지난 ‘조지섭’을 연기하면서, 지금은 바람피우는 설렘보다는 아내를 속이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 죄책감 섞인 묘한 감정을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지가 지금 저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예요.

배우 활동을 이어오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텨냈나요.

특정 작품이 힘들었다기보다 결혼 초창기에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이 컸어요. 매달 고정 수입이 있는 직업도 아니고, 언제 잘될지 알 수도 없으니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분이었죠. 그때 아내가 “행복한 거 해”라고 말해줬는데, 그런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일단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어요.

연기하면서 인생을 배웠군요. 

제가 아이돌로 활동할 시기엔 자기표현을 마음껏 하기 힘든 분위기였어요. 불편해도 인내하는 게 익숙했죠. 그런데 아내가 “표현해야 상대가 알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줬어요. 조금씩 바꾸려 노력하다 보니 연기에서도 감정의 폭이 달라지더라고요.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결국 연기와도 연결된다는 걸 느꼈어요.

정제된 슈트와 세련된 무드로 기억되는 태사자 완전체,  박준석, 김영민, 이동윤, 김형준(왼쪽부터).

정제된 슈트와 세련된 무드로 기억되는 태사자 완전체,  박준석, 김영민, 이동윤, 김형준(왼쪽부터).

“태사자 네 명 모두, 서로가 건강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아요”

태사자 멤버들은 배우 활동에 대해 어떻게 응원해주나요.

다들 좋아하고 화이팅 해줘요. 막내 영민이도 지금 연극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원래 처음부터 배우를 하고 싶었는데 가수 캐스팅이 먼저 돼서 이제 배우의 길을 걷고 있어요.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그냥 서로 건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4명 다 똑같아요. 다만 지금은 4명 각자의 방향성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에요. 공연 같은 걸 통해서 팬들 앞에서 함께하는 건 늘 좋지만, 그 이상의 활동을 하기엔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어서요. 농담처럼 60대에 팬미팅 한번 하자고 얘기하기도 해요(웃음).

오랜 동안 함께 해 준 팬들을 향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져요. 

공연을 보러 오신 팬들 중에 “오빠 때문에 연극을 처음 보게 됐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공연만 보고 처음 왔다가 팬이 되신 경우도 있고요. 저는 사랑해 주는 분이 많을수록 에너지를 더 받으니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최대한 오래 함께하려고 해요. 혼자 오신 분도, 지나가다 구경하신 분도 다 사인해드리고 사진 찍어드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팬들에 대한 도리이고, 그동안 받은 과분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길이라 생각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람으로서는 삶의 내면이 꽉 찬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식이라기보다는 마음적인 부분이요. 예전엔 무조건 일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매일 하루가 행복한 게 더 커졌어요. 하루를 행복하게, 아내랑 같이 카페를 가든 어디를 가든 함께 보내는 행복이 이제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리고 배우로서는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감정을 상대 배우한테 충분히 주면, 상대는 그 에너지를 받아서 연기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보통은 자기 것만 돋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멋있는 배우는 묵묵히 주면서도 자기 몫을 다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객분들께도 그 기운이 전달되게 만드는, 그런 배우가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이에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당장은 ‘위험한 사람들’을 무사히 잘 마치는 게 목표예요. 더 넓게는 다양한 장르와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사이코패스 같은 특이한 악역, 딱 봐도 악당이 아니라 처음엔 좋은 사람 같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그런 역할이 너무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무협을 좋아해서 무협이나 판타지 사극 같은 장르도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고요. 지켜봐주세요.

 #박준석 #위험한사람들 #보잉보잉 #태사자인더하우스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박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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