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생, 올해로 꼭 30세가 된 김혜윤은 2013년 KBS ‘TV소설 삼생이’로 데뷔했다. 그 후 수많은 작품의 단역으로 우직하게 경험을 쌓았고, 2018년 ‘SKY 캐슬’로 곧 펼쳐질 김혜윤의 시대를 예고했다. 그리고 6년 뒤인 2024년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 김혜윤의 시대를 열었다.

영화 ‘살목지’ 포스터.
‘살목지’는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혜윤은 극 중 지도 애플리케이션 로드뷰를 찍는 스태프 수인 역으로 분해 어둠이 짙게 밴, 정신적·육체적으로 소진된 인물을 소화했다. 비명과 액션보다는 눈빛과 호흡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 그는, 서사의 주체로서 극을 힘 있게 견인하며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김혜윤이 ‘살목지’에서 집중한 건 ‘드러나지 않은 공포’다. 그는 “작고 미세한 제스처나 표정으로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내가 지닌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덜어내고 절제된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공포물 보며 해방감 느껴요”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나요.호러, 스릴러물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이 장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궁금증으로 극을 끌고 가잖아요. 인물의 정체는 무엇일지, 범인은 누구일지··· 많은 것이 베일에 싸인 채 긴박하게 흐르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정말 흥미로워요. 결말을 알고 나서 느껴지는 해방감도 매력적이고요.

저는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공포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살목지’가 딱 그렇더라고요. 공포 분위기를 억지로 끌어내지 않거든요. 저는 ‘살목지’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홀린 듯이 읽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내가 믿는 게 모두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압도됐거든요. 물귀신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도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완성작을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짜릿하고 무섭더라고요. 특히 제가 안 나오는 신에서 많이 놀랐어요. 360° 파노라마 카메라나 모션 디텍터 등의 장비들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앵글에 심장을 조이는 음향 효과가 더해지니 몰입감도 엄청났어요. 사실 촬영을 할 때 무섭다는 생각은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보다 공포 영화의 촘촘한 설정과 현장 설치 방식, 귀신 분장 등 모두 제가 처음 접해보는 환경이라 신기하게만 여겨졌어요.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고 싶어 촬영할 때 산속을 계속 응시한다든가 일부러 무서운 것을 계속 찾아다니기도 했어요(웃음).


김혜윤, 이종원, 장다아 등이 열연한 ‘살목지’는 기이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저수지에 촬영팀이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화기애애했어요(웃음).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동료들과 수다를 많이 떨었거든요. 특히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주로 판을 깔고 귀신 이야기를 꺼냈죠. 수련회에 가면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요. 처음에는 배우분들 대부분이 참석했는데, 나중엔 한두 명씩 자리를 피하시더라고요(웃음).
영화판에서 ‘길조’로 여겨지는 귀신 목격담도 있었나요.
촬영 도중에 스태프 한 분이 민소매를 입고 있는 아기를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그날은 패딩을 입어야 할 만큼 추운 날씨였거든요. 스태프분이 좀 이상해서 다시 그 아기를 쳐다보자 어깨를 들썩이며 지나갔대요. 그러곤 숙소에 돌아왔는데, 센서 등이 계속 깜빡여서 “셋 셀 때까지 그만해라” 소리치니 그제야 멈췄다고 하시더라고요.
주인공 ‘수인’을 어떻게 연기하려 했나요.
수인은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이성의 끈을 쥐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외적인 것보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야 했죠.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차분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눈빛이나 호흡은 진정이 안 되는 상태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방향을 잘 잡아주셔서 어려움 없이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 머릿속에는 수인의 캐릭터가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수인을 삶에 찌들어 있고 물에 공포가 있는 인물로 그려나가길 바라셨죠. 저는 무언가에 찌들어 있다는 건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와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첫 장면부터 생기 없고 모든 일을 힘들어하는 느낌으로 연기하려 했죠. 고음을 낸다거나 액션을 크게 하기보다는 섬세한 눈빛으로 인물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려 노력했고요.
‘살목지’는 역대급 고사 스케일로 주목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소재가 귀신이라 별 탈 없이 안전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게 고사를 지냈어요. 가장 신기했던 건 무당 선생님이 오방기를 뽑아달라면서 배우 몇 분을 고르셨는데, 모두 극 중 귀신으로 출연하는 분들만 지목하셨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고 놀라워요.
공포 영화를 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요.
귀신을 발견하는 타이밍을 캐치하고 계산하는 부분이요. 연기를 하면서도 계속 계산을 해야 했거든요. 귀신을 언제 발견해야 공포감이 커지는지,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는 어떤 액션을 해야 할지 등 컷마다 대사는 물론 미세한 표정과 떨림까지 고민하며 공포 연기의 리듬을 체감한 것 같아요.
작품에서 미스터리한 인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김준한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평소 준한 선배님은 엄청 다정하게 잘 챙겨주시고 섬세하세요. 하지만 카메라가 돌면 순식간에 싸한 느낌으로 돌변하시죠. 선배님의 철저한 배우 마인드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님의 실제 피부가 하얗다 보니 ‘교식’이라는 인물과 동일하게 보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전 연인으로 분한 이종원 배우와의 케미도 궁금해요.
종원 오빠와는 평소에도 투닥거리고 장난을 많이 치는데, 이런 점이 연기할 때 잘 묻어나와 편했어요. 처음 봤을 때도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대해줘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요. 종원 오빠와 어떻게 하면 ‘X(전 남친) 케미’가 나올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는데, 감독님이 수인의 말투를 툭툭대는 방향으로 잡아주셔서 쉽게 캐릭터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밤에 저수지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에서는 종원 오빠가 제 이름을 많이 불러주는데, 순간 ‘아 X가 나를 걱정하는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다양하고 색다른 것에 끊임없이 도전할 거예요”
수중에서 연기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힘들진 않던가요.저는 물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수중 촬영을 준비하고 훈련할 때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죠. 전작에서도 수중 촬영을 해봤거든요. 하지만 공포 영화인 ‘살목지’ 촬영은 다르더라고요. 수중 세트가 어둡고, 무서운 소품도 많아서 공포심이 느껴졌거든요. 물속이 정말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환경이라 겁도 너무 많이 났어요. 다행히 종원 오빠가 능숙하게 잘 이끌어줘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던 것 같아요. 덕분에 힘내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살목지’를 본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감사하게도 ‘살목지’를 응원하기 위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팀과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 in 칼라페’팀이 극장을 찾아주셨어요. 지인분들이 “너 때문에 오긴 왔는데 영화가 너무 무섭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한 분은 “무서워서 눈을 감고 소리만 들었는데도 오싹했다”고 하셨죠(웃음). “처음 보는 카메라 앵글이 많았다”는 반응도 기억에 남고요.
혜윤 씨가 생각하는 ‘살목지’의 공포 점수는 몇 점인가요.
10점 만점에 9.5점이요. 만점을 주면 보기도 전에 너무 무서워하실 것 같아 0.5점을 뺐습니다(웃음).
혜윤 씨의 모교인 선일여자고등학교에서 연 영화 홍보 이벤트가 화제예요.
영화 개봉 전에 모교를 방문해서 오싹한 시사회와 스쿨 어택 행사를 열고 후배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어요. 오랜만에 학교에 갔는데, 10대 친구들의 에너지를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를 보며 환호해주고 반겨줘서 정말 행복했죠. 같이 참석한 배우들도 예상보다 열띤 학생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하셨고요. ‘아 역시 우리 선일여고, 내 후배들’이란 생각에 뿌듯했습니다(웃음).
그간 로맨스부터 공포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캐릭터를 소화해냈어요.
너무 감사한 부분이에요. 저는 매 작품에서 말투나 이미지가 달라 보이길 원해요. 이를 위해 캐릭터의 소소한 습관 등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또 작품을 고를 때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인물을 선택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비슷한 결로만 연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하나의 캐릭터에 국한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최대한 다양하고 색다른 역할과 장르에 도전하려 합니다.
30대가 된 지금,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건 몸의 변화예요. 감기에 걸려도 빨리 안 낫고, 베개 자국도 예전에는 몇 분 지나면 없어졌는데 지금은 몇 시간씩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신체적인 변화가 크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웃음). 연기적으로는 10년, 20년이 지나야 판단할 수 있을 듯해요. 그때가 돼야 비로소 스스로 성장했음을 알 것 같거든요. 당장 일어난 일들에 대해 “변화했다” “깊어졌다” 말하는 건 너무 섣부른 것 같아요. 다만, 한 작품씩 해나가면서 좀 더 깊고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나중에 10년 전을 돌아봤을 때, 현재에 충실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성장으로 느껴질 수 있게요.
배우 김혜윤이 두려워하는 건 무엇인가요.
배움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거요. 저는 그게 제일 무섭고 두려워요. 연기자는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매 작품을 거치면서 조금씩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흘러 지금을 떠올렸을 때 ‘참 부지런히 성장했구나’를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부딪히고 싶어요.
#김혜윤 #살목지 #공포영화 #여성동아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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