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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춘추 로컬 시대, 소도시가 살아남는 법

오한별 객원기자

2026. 03. 11

로컬 여행이 일상이 된 지금, 인구 소멸 위기의 소도시는
독특한 콘텐츠를 갖춘 ‘한번 가볼 만한 곳’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흥행 이후 서울은 ‘케데헌 8경’으로 불리며 외국인 관광객의 성지 순례 코스가 됐다. 전남 여수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테마 여행이 생겼고,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경주는 다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독특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가진 도시는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지만, 그렇지 못한 소도시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분위기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의 많은 지역이 관광에서 해법을 찾지만, 단순한 방문객 유치만으로는 지역 경제로 이어지기 어렵다. 즐길 이유가 없는 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찾게 될까.

장원영 @for_everyoung10

장원영 @for_everyoung10

소도시가 관광 전략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법은 축제다. 김천은 ‘김밥’이라는 예상 밖의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김천의 대표 특산물은 아니지만, ‘김밥천국’을 줄인 ‘김천’이라는 밈을 지역 정체성으로 역이용해 ‘김천김밥축제’를 기획했다. 2024년 첫해에는 준비 물량이 조기 소진되며 ‘김밥 없는 축제’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시행착오를 거친 뒤 이듬해 성과는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25~26일 열린 제2회 김천김밥축제에는 8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렸다. 내빈 소개, 축사, 환영사를 없애고 바가지요금 논란을 차단한 ‘3無 축제’를 표방하며 MZ세대를 겨냥한 이색 김밥과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한 덕이다. 튀김소보로, 족발, 톳김밥 등 개성 있는 메뉴가 인기를 끌었고, 행사 규모는 전년 대비 5배로 확대됐다. 셔틀버스 증편 등 운영 전반에서도 지자체의 보완 노력이 이어졌으며, 이를 보상하듯 인구 13만 명 규모의 소도시에 약 10만 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아들었다. 

매년 김천김밥축제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가수 자두.

매년 김천김밥축제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가수 자두.

군산을 책과 문화가 결합된 감성 여행지로 만든 군산북페어.

군산을 책과 문화가 결합된 감성 여행지로 만든 군산북페어.

축제는 소도시의 힘

2025구미라면축제 포스터.

2025구미라면축제 포스터.

구미의 선택은 결이 다르다. ‘구미라면축제’는 구미가 오랫동안 지녀온 산업도시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생활문화 콘텐츠로 번역한다. 구미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농심 라면 공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전국 하루 라면 소비량의 약 36%에 해당하는 380만 개가 생산된다. 이런 산업적 배경을 기반으로 구미시는 2022년부터 구미라면축제를 개최해왔다. 지난해 4회째를 맞은 구미라면축제는 11월 7일부터 3일간 약 35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에는 ‘오리지널’을 주제로 중앙로와 문화로 일대를 아우르는 도심형 축제로 확장했고, 475m 길이의 ‘라면 스트리트 475’는 메인 공간으로 꾸려졌다. 축제 기간 구미역 광장과 인근 상권은 연일 인파로 붐볐다.

판매 성과도 뚜렷했다. 갓 튀긴 라면을 선보인 갓랜드에서는 ‘신라면 케데헌 에디션’ 12만 개를 포함해 약 48만 개(약 36억 원 규모)가 판매됐고, 라면 레스토랑에서는 25종의 이색 라면이 3일간 5만4000여 그릇 팔리며 약 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케데헌 면치기 대회’ ‘랜덤 플레이 댄스’ 등 참여형 프로그램과 포토존 역시 젊은 층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했다.

전북 군산은 근대 건축과 항구 도시라는 기존 서사 위에 ‘책’이라는 감각적 키워드를 덧입혔다. 2024년 시작된 ‘군산북페어’는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월명동 일대의 독립서점과 도서관, 골목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엮는 역할을 했다. 북페어를 전후해 외지인 방문객과 소셜미디어 언급량이 뚜렷하게 늘었고, 이런 영향으로 군산은 근대 역사 관광지를 넘어 책과 문화가 결합된 감성 여행지로 이미지가 확장됐다.



전남 신안은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1섬 1뮤지엄’으로 불리는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로 1000여 개의 섬 가운데 30곳을 선정해 각 섬에 하나의 미술관 혹은 예술 공간을 조성하는 장기 계획이다.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설치 작품 ‘숨결의 지구’가 들어섰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뤄온 그의 작업은 섬의 풍경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작품 감상은 곧 섬을 걷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비금도 원평해변에는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대형 설치 작품이 바다와 결합한 형태로 조성될 예정이고, 자은도에는 한국 조각가 박은선과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협업한 인피니또 뮤지엄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안좌도 신촌저수지에는 수면 위에 떠 있는 수상 미술관을 조성 중으로, 이 미술관은 세계 최초 플로팅 뮤지엄이라는 상징성도 갖는다. 작품 한 점을 보기 위해 섬을 찾게 만들고, 이동과 체류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한 부분에서 신안은 공간을 콘텐츠로 활용한 관광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남 보성은 녹차 산지라는 기존 이미지를 ‘말차코어’ 트렌드와 연결했다. 말차의 색감과 웰니스 이미지는 MZ세대의 소비 감성과 맞물렸고, 지난해 APEC 한중 정상회담 만찬 후식으로 보성 녹차가 제공되며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수매한 찻잎 246t(톤)이 재고까지 전량 판매되면서 녹차 산업은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 이는 특산물이 트렌드를 넘어 산업과 관광 구조 안에 고정될 때 지속성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집밥과 농사 체험을 통해 지역에서 ‘잠시 살아보기’를 제안하는 함양 청년마을 프로젝트 ‘고마워 할매’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집밥과 농사 체험을 통해 지역에서 ‘잠시 살아보기’를 제안하는 함양 청년마을 프로젝트 ‘고마워 할매’

‘사람’이 남는 여행

콘텐츠와 커뮤니티가 여행자를 부르는 힘이라면, 그것을 붙잡아두는 건 시스템이다. 전남 강진군의 ‘반값 여행’은 관광객이 쓴 비용의 절반을 지역화폐로 돌려주며 소비를 지역 안으로 순환시키고 있다. 이 구조의 핵심은 관광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지역 주민의 일상과 생계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관광두레’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남 함양군의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집밥과 농사 체험을 통해 지역에 머무는 경험을 제안한다.

화제를 모으는 콘텐츠, 관계를 만드는 커뮤니티, 이를 지탱하는 정책 구조. 이 3가지가 맞물릴 때 소도시는 다시 찾게 되는 여행지로 변모한다. 중요한 건, 더 많은 관광객이 아니라 이 도시에 가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다.

#여행트렌드 #로컬힙 #성지순례 #여성동아

사진제공 고마워 할매 구미라면축제 그린다향 김천김밥축제 신안 예술섬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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