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깨 라인의 작은 라벨로 지적인 미학을 드러낸 프라다(오른쪽).
하지만 미니멀리즘, 장인정신, 개성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흐름은 패션이 ‘품격’을 정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조용한 럭셔리’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과시보다는 절제가 더 세련된 미학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 그래서인지 명품 브랜드들은 눈에 띄는 로고가 아니라 섬세한 디테일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손으로 짠 캐시미어 니트의 부드러운 결, 정교한 테일러링, 깊이 있게 길든 가죽의 윤기처럼 말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로고의 위치 또한 디자인만큼 전략적인 요소가 됐다. 소매 안쪽에 숨겨진 자수나 옷자락 끝의 작은 각인처럼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디테일은, 패션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서로를 인식하는 비밀스럽고 조용한 신호가 되고 있다.
로고를 재정의하는 시대
명품 위조품과 듀프 문화(고가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기능을 모방한 저렴한 대체품을 구매하는 소비 트렌드)의 확산은 한때 희소성을 상징하던 로고를 지나치게 흔한 기호로 만들었다. 이에 럭셔리 브랜드들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더 은밀한 자리, 더 정교한 방식으로 로고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흐름 역시 절제의 미학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는 과잉의 미학이 오히려 구식으로 보이고, 조용한 디자인이 더 세련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명품의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과 Z세대는 대놓고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과 서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지속가능성과 진정성을 소비 기준으로 삼는 이들에게 큰 로고보다는 스티치나 실루엣 같은 제품의 디테일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가방 하단에 음각된 로고를 넣은 미우미우(왼쪽)와 가방 내부로 로고를 숨긴 로에베.
샤넬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마티유 블라지의 첫 여성복 컬렉션에서는 상징적인 ‘더블 C’ 대신, 파리 방돔광장의 유서 깊은 셔츠 메이커 ‘샤르베(Charvet)’의 레터링이 조용히 등장했다. 샤르베는 가브리엘 샤넬이 단골로 찾던 브랜드로, 블라지는 이 역사적 연결고리에 주목해 협업을 직접 성사시켰다. 전통적인 남성복의 비례를 반영한 턱시도 셔츠 허리 라인에는 1920년대 샤넬이 사용했던 서체의 ‘Chanel’ 자수가 작게 더해져 헤리티지를 환기했다.
프라다는 어깨 라인의 작은 라벨로 지적인 미학을 펼쳤고, 미우미우는 가방 하단에 음각된 로고를 넣어 존재를 속삭이듯 드러냈다. 로에베는 로고를 가방 내부로 숨겨 조용한 악센트로 활용했다. 한때 로고 플레이의 대표 브랜드였던 루이비통 역시 모노그램을 절제하고 소재, 공예, 아카이브 디테일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고가 작아질수록 역설적으로 브랜드의 힘은 더 선명해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럭셔리는 큰 상징이 아니라 작은 증거, 보이지 않는 차이에서 느껴진다.

절제된 자신감의 표현
이처럼 대형 럭셔리 하우스들이 과시적인 브랜딩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로고보다 유산과 기술력에 주목하는 새로운 소비 감각이 확산하고 있다. 이 변화는 특히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소규모 헤리티지 브랜드들에는 ‘혁명’에 가깝다. 스코틀랜드의 전통 방식으로 짠 니트, 이탈리아 장인이 손으로 마감한 로퍼처럼 형태와 기술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제품이 오늘날 소비자들이 원하는 진정성, 즉 일시적 과시가 아닌 가치의 상징이 된 것이다.그렇기에 럭셔리는 점점 더 비밀스러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로고가 크지 않아도, 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브랜드는 충분히 자신의 세계를 말할 수 있다. 셔츠의 밑단, 가방의 안감, 단추 표면처럼 미묘한 위치로 옮겨간 로고는 숨김이 아니라 절제된 자신감의 표현이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지금의 패션에서 브랜드의 힘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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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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