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권유로 다니게 된 모델 아카데미를 통해 인생 2막을 맞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오애순은 극 중 1951년생으로 설정돼 있다. 이향란 씨는 오애순보다 한 살 어린 1952년생이다. 아래로 남동생 3명을 둔 장녀였던 이 씨는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1남 1녀를 뒀는데, 스물두 살에 낳은 첫딸이 바로 문소리다. “애가 애를 낳다 보니 잘 먹질 못해서인지 약하게 태어난 게 늘 미안한” 존재다. 남편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온가족이 서울에 올라와 포장마차를 할 때도 부산에서 1등했던 딸이 기죽을 까봐 바이올린에 영어·수학 과외를 시켰다.
배우로 우뚝 선 지금의 문소리 뒤에는 오애순 같은 이향란 씨가 있다. 입이 짧은 딸을 위해 촬영장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고, 문소리와 사위 장준환 감독 사이에서 태어난 외손녀 연두 양의 육아도 도맡아 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도 모자라 서로 연세가 비슷한 친정어머니와 딸의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손에서 물기 마를 날 없는 삶을 살아온 이향란 씨. 그가 드디어 한평생 차려온 밥상에서 해방된 건 60대 후반이 되어서다.
2019년 모델 아카데미를 다닌 것을 계기로 연기 수업을 받은 이 씨는 ‘나와 할머니와 시골집’ ‘아감뼈이야기’ ‘오미자, 날다’ ‘뿌리이야기’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주연을 맡은 ‘아감뼈이야기’로 2023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딸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목숨 걸고 키운 딸 소리, 그런 딸의 딸 연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 일상에 변화가 생겼나요.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왔어요. 남편이 평생소원이라 말했던 롯데 자이언츠 야구 시구도 하게 됐고, 작품 섭외 연락도 왔어요. 얼마 전 독립 장편영화 대본 리딩을 다녀왔는데, 다른 단편영화 미팅이 또 잡혀 있어요. 감독님이 TV에서 저를 보고 자신이 원하던 이미지라 생각했대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문소리 씨가 ‘폭싹 속았수다’ 애순 역을 연기하며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요.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을 위해 자기 목숨도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소리는 특히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포장마차 장사를 하면서도 소리 과외를 시켜주고 그랬죠. 나중에 알고 보니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이 당시 과외 선생님이었는데, 소리를 되게 부잣집 딸이라고 생각했대요(웃음).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고, 또 그런 생각 자체가 사치일 정도로 살기 바빴어요. 친정 엄마가 생전에 저한테 “너는 목숨 걸고 자식 키웠잖아”라고 할 정도였죠. 제 삶을 누군가는 알아줘서 많은 위로가 됐어요.
애지중지 키운 문소리 씨는 어떤 딸인가요.
아들 같은 딸이에요. 예민하면서도 속이 깊어서 내색을 잘 안 해요. 뭐든지 딱 결정이 난 상황에서만 얘기해요. 아주 살갑진 않은데 자기 나름대로 저를 잘 챙겨요. 제가 가족들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외국의 유명한 수행자가 하는 명상 프로그램을 알아봐서 보내주고,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겠다고 했을 때도 반기며 등록비를 내줬어요. 물론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학교, 집밖에 모르던 범생이가 대학을 가더니 날개를 단 듯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고요. 당시 딸, 아들 다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다녔는데 같은 운동권이어도 서로 파가 달랐어요. 지금도 우리 집에서는 정치 얘기는 금물이에요. 하하.

소리는 바빠서 늘 아이 옆에 있어주질 못하니까, 연두에게 미안해하고 엄청 애틋해요. 연두가 제주도 국제학교에 다니기 전 열 살 때까지 제가 한 침대에서 데리고 잤어요. 그런데 어쨌거나 소리가 엄마로서 모든 결정을 하고 책임도 지는 거고, 저는 보조자일 뿐이었죠. 사실 제 자식은 책임감 때문에 어떻게든 잘 키우려 애썼지만 손주는 그런 부담에서 자유롭더라고요. 할머니는 그냥 “예쁘다, 예쁘다” 하며 사랑만 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은 교육 정보가 너무 많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도움이 안 되니까 소리가 이렇게 해야 한다, 하면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맞춰주는 거예요. 연두가 태어나고부터는 제가 집에서 드라마를 못 봤다니까요(웃음). 소리가, TV를 내내 틀어놓으면 아이한테 좋지 않다고 해서요.
영어 공부해서 연두 영어책도 읽어주셨다고요.
연두랑 문화센터에 수업 들으러 가면 제가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영어 수업을 들었는데, 배운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게 온 집 안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공부하고 그랬어요. 할머니가 공부하는 모습이 연두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칠 테니 소리도 좋아했어요(웃음). 또 그땐 연두가 어리니까 제가 틀려도 모르잖아요. 잘하는 척하며 영어책 열심히 읽어줬죠.
아무리 내 딸의 딸이어도 다시 육아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요.
제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어요. 아이가 너무 예쁘기도 하고요. 연두가 지금 중학생인데 아직 사춘기가 안 왔어요. 야무지고 참 착해요. 다만 키울 때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죠. 하루는 다 같이 와인을 마시는데 장 감독이 소리에게 한 명을 더 낳자는 거예요. 듣고 있다가 제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자라긴 하겠지만 나는 더는 못 한다”고 정색했어요. 그때는 진짜 힘들었거든요. 한번은 마루에서 연두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누워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른 적도 있어요. ‘아이는 예쁘고 좋은데, 내 인생은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딸의 인생이 같은 여자로서 부러운 적은 없으세요.
저는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아요. 대학을 안 가고 바로 생업에 뛰어든 것도, 결혼을 일찍 한 것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다만 부모가 자식한테 섭섭할 때는 있죠.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금명이(아이유)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저 혼자 잘났다고 엄마한테 막말할 때가 있잖아요. 저도 소리와 같이 살면서 밍크코트 때문에 싸운 적이 있어요. 나이 드니 추위를 많이 타게 되더라고요. 주변에서 밍크코트가 따뜻하다기에 갖고 싶다고 했다가 소리랑 엄청 싸웠어요. 소리가 동물 애호가거든요. 저한테 밍크코트가 만들어지는 영상을 보여주겠다며 “밍크코트 입고 과시하고 싶은 거냐?” “엄마의 자존감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 이러는데 어찌나 서러운지 한동안 말을 안 했어요. 저랑 소리는 좀 달라요. 저는 닥치면 일단 덤비는 대문자 ‘E’ 타입이고, 소리는 이것저것 다 따져보는 스타일이에요.

“촬영장에서 칭찬을 처음 들어봤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하데예”
인터뷰가 있던 날 이향란 씨는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동탄 집에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스튜디오까지 혼자 왔다. 그리고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직접 주문했다는 녹색 셋업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컷마다 다른 눈빛과 포즈를 선보였다. 멋지다는 칭찬에 이향란 씨는 “원래 옷을 좋아한다. 다만 내 벌이로는 백화점 옷은 무리고 딸한테 손 벌리기도 싫어서 인터넷 쇼핑, 빈티지 가게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구제 옷을 입어도 ‘간지’만 나면 되지 않겠느냐”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이향란 씨에겐 전투적으로 아이들을 키운 젊은 시절보다, 손주들에 연로한 부모님 세 분을 모시고 살던 중년 시기가 더 버거웠다. 명상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던 인생의 허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메라 앞에서 싹 사라졌다.
모델 아카데미 수업은 어떻게 듣게 됐나요.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연두도 학교에 가니까 그제야 시간이 좀 나더라고요. 지인이 모델 아카데미를 권유해서 시작했죠. 제가 늘 싱크대 앞에서 일만 하니까 자세도 좋지 않고 목 디스크가 있었어요. 워킹 연습을 하니까 허리가 펴지고 아픈 데가 없어지는 거예요. 재미있게 다니다 보니 모델도 연기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연기를 통해 ‘나’를 처음으로 돌아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삶도 경험해보니까 힐링이 되더군요. 사실 그때 코로나19 시기라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는데, 연기 선생님이 아깝다며 계속해보랬어요. 이메일 만드는 과정부터 오디션에 지원하는 방법까지 다 알려줬어요. 저를 배우로 만들어준 고마운 분이에요. 오히려 소리는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현장에서 고생한다고요.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게 만든 연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식구들 밥 먹는 시간이 다 다르니까 제가 하루에 4끼, 5끼씩 밥상을 차렸어요. 하지만 그게 일상이니까 식구들로부터 맛있다는 말 정도는 들어도 특별히 칭찬 들을 일은 없잖아요. 대학생들이 찍는 단편영화 현장에서는 “향란 샘 찢었다”며 환호를 해주는 거예요. 어느 날은 쓸쓸한 뒷모습 한 컷을 찍는데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모습을 한 스태프가 봤나 봐요. “오늘 연기가 정말 좋았다”는 진심 어린 칭찬을 듣고 ‘이 기분은 뭐지?’ 싶었죠. 제가 살면서 칭찬을 못 들어봐서 애들한테도 칭찬을 해주질 못했더라고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지적만 했죠. 그게 미안해서 자식들을 모아놓고 사과했어요. “내가 미안하다. 너희들은 아이들 칭찬 많이 해주면서 키워라” 하면서요.
연기의 예상하지 못한 장점이네요.
또 있어요. 젊은 친구들하고 어울리니까 에너지를 얻어요. 무엇보다 예전에는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누가 나오라고 하면 청소하다가도 나갔거든요. 제가 먼저 음식 만들어 이 사람 저 사람 챙기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들하고 가는 여행이 제 삶의 버팀목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됐어요. 연기 연습을 하려면 아무래도 혼자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더라고요. 이제 혼자 있으면 정말 행복해요.
같은 배우 입장이 돼서 보는 딸의 연기는 어떤가요.
저는 소리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잘 보질 못했어요. ‘박하사탕’이나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는 마음 아파서 울기도 하고요. 소리는 어려서부터 소심해 학창 시절에는 자신 있게 몸에 붙는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아이가 현장에서 저런 노출 연기를 했다는 게 안쓰러워서 보는 내내 힘들더라고요. 한 10년 지나니 좀 편하게 볼 수 있게 됐고 연기를 하면서부터는 소리를 이해하게 됐어요. 원래도 소리에게 될 수 있으면 전화를 잘 안 하는 편인데요. 현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몰입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니까 더 조심스러워져요. 그것뿐인가요. 소리가 얼굴 알려진 배우로 살면서 얼마나 신경 쓸 거리가 많겠어요. 예민하게 구는 날이 있더라도 엄마니까 더 받아줘야죠.
현장에서 딸을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도 좀 조심스럽지 않나요.
안 그래도 누가 자기는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엄마가 배우를 한다고 하면 굉장히 신경 쓰일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런가?’ 생각했는데, 제가 조금씩 활동 범위가 커지니까 저와 소리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같은 소속사라면서 저를 먼저 알아보는 배우도 있고, 영화제 가면 홍보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소리한테 “내가 조심히 잘하겠다”고 말했더니 소리가 “그냥 편하게 하세요”라고 응원해주더라고요.


두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남해안 바닷가에서 단란한 한때(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첫 장편영화 ‘뿌리이야기’의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한 이향란 씨가 마이크를 들고 얘기하고 있다. 비니와 카고바지를 매치한 패션 감각이 돋보인다.
사실 딸이 배우니까 제가 수월하게 배우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몇 해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소리와 함께 레드카펫에 섰을 때도 어느 배우가 ‘소리가 이끌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어느 감독이 자기 작품에 연기력이 안 되는 배우를 쓰고 싶겠어요. 제가 어느 날은 연기가 성장하는 느낌이 안 드니까 답답해서 소리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든지, 잘 가르치는 연기 선생님을 소개해달라고 했어요. 그때 소리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그냥 현장에서 부딪히는 게 최고예요. 가서 부딪히며 자기 걸 찾아야지, 잘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배워봐야 자기 것이 아니에요”라고요. 알았다고 했죠. 하하.
참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나중에 제가 세상에 없어도 작품은 남잖아요. 장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이나 소리와 같은 작품에서 함께해보고 싶어요. 엔딩 크레디트에 같이 이름이 올라가면 우리 손주들이 보면서 저를 또 기억해주겠죠. 그런데 소리와 장 감독은 저한테 이런 목표가 생겼다는 걸 아직 몰라요. 그 수준까지는 제 힘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요즘도 오디션 열심히 보고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아직은 편하지 않지만, 희한하게 막상 현장에 가면 편해요. 재미있어요. 지금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살고 있는 게 행복해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뜨거운 여름을 살게 하는 그 이글거리는 열정은 어디에서 계속 나오는 건가요.
살면서 해본 게 별로 없으니까 이제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보통은 이렇게 해보고 싶은 게 생겨도 그냥 생각만 하고 말잖아요. 그런데 일단 해보면 별거 아니에요. 제가 탭댄스를 1년 넘게 했는데, 이번에 셔플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어요. 무작정 학원에 전화를 걸었죠. 내가 나이가 많은데 원데이 클래스가 있으면 한번 해보고, 할 수 있는지 판단해보고 싶다고요. 가서 해보니 관절에 크게 무리가 안 가면서도 운동량은 상당하더라고요. 결국 해봐야 아는 거예요.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문소리 #폭싹속았수다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이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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