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8월 12일 경기 과천시의 한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 전기차 충전 구역에서 차량에 전기차 충전기 커넥터를 연결하던 주민 A 씨는 “전기차 주차 가능 구역을 제한하는 건 불쾌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이 아파트에는 “지하 2층 전기차 충전 구역에서 충전을 마친 전기차는 지하 1층 주차장 출입구로 옮겨 주차하도록 해달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이 아파트는 지상 주차장 없이 지하 1~3층에만 주차장이 있고 지하 2층에 전기차 충전기 11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전기차 화재에 대비해 전기차는 지하 1층에 있는 주차장 출입구에만 주차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8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해당 민원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8월 1일 인천시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주차를 제한하는 건물이 늘고 있다. 8월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도 “지하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를 지상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전기차 소유자는 가능하면 지상에 주차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전기차 관련 민원이 여러 건 들어와 전기차 소유자들에게 지상에 주차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지, 지하 주차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기차에서 언제 불이 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는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면서 전기차 주차구역을 제한하는 건물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기차 주차 가능 구역 지정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경기 과천시 ‘P’ 아파트 주민들은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50대 남성 하 모 씨는 “전기차가 출입구에 있어야 화재 진압이 쉬우니 관련 안건이 주민 투표에 부쳐지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여성 모 모 씨는 “지상 주차장이 없는 신축 아파트의 장점이 사라지더라도 전기차는 지상에 대야 한다”고 했다.
전기차 포비아 확산에 전기차 소유주들은 불쾌감을 호소한다. 8월 13일 네이버 전기차 동호회 카페 ‘테슬라코리아클럽(TKC)’에는 “직장 동료들이 ‘네 전기차 터지는 것 아니냐’며 한마디씩 하는데, 전기차가 웃음거리가 돼 속상하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카페의 또 다른 회원은 “추석 때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와 부모님을 모시고 갈 식당에 전기차 주차가 가능한지 미리 확인해야겠다”며 “가족,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이 벌써 느껴진다”고 했다.
‘배터리 90%만 충전’ 정책에 전기차 소유주 반발
8월 12일 경기 과천시와 성남시 아파트에 붙은 ‘전기차 협조 요청’ 안내문
서울시는 8월 9일 전기차 배터리 충전율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차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해당 대책에는 ▲배터리 충전율이 90% 이하인 차량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출입하도록 권고 ▲배터리 용량의 최대 90%까지만 충전되도록 출고된 차량에 대해 인증서 발급 추진 ▲시가 운영하는 급속 충전기는 최대 충전율을 80%로 설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대책에 전기차 소유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배터리 충전율은 전기차의 주행 거리와 직결되는 만큼 “배터리 충전율을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경기 의정부에 사는 전기차 소유주 원 모(54) 씨는 “배터리 충전율을 90%로 제한하면 전기차 가격을 그만큼 깎아줄 것이냐”며 “내 차는 100% 충전하면 400㎞를 갈 수 있는데 80%까지만 충전이 가능하면 80㎞나 줄어든다”고 말했다. 원 씨는 격양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집 마당이 도로를 침범해 위험하니 마당의 10%는 쓰지 못하도록 요구할 때는 보상을 주잖아요. 전기차 충전율도 제한할 거라면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죠.”
90% 충전 제한 효과 있나
8월 14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반면 충전율을 80~90%로 제한해서는 화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충전율을 50% 아래로 떨어뜨려야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화재 진압 시스템을 연구하는 이재환 리 모빌리티 대표는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 실험 시 80% 이상 충전하면 열폭주가 쉽게 발생한다”며 “충전량이 50% 이하가 아니라면 열폭주 진행에 있어 충전율 80%나 100%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안전 대책을 만든 서울시 친환경차량과 관계자도 “전기차의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 기준인 ‘충전율 90%’라는 숫자가 특정한 연구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 전기차 화재로 시민 불안이 커져 현재 3~5%로 설정된 안전마진을 10%로 높여보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마진은 전기차 제조사가 배터리 내구성 향상을 위해 자체적으로 설정한다. 안전마진이 5%로 설정된 차량은 차량 계기판에 100% 충전됐다고 표시되더라도 실제로는 배터리 충전 가능 용량의 95%까지만 충전된다.
서울시 대책이 현장에 잘 적용될지도 미지수다. 서울시는 안전마진이 10%로 설정된 차량에 인증서를 발급하기 위해 국내 전기차 제조사와 협의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조사가 얼마만큼 협조하느냐에 따라 사업 진행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충전율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지하 주차장에 출입하도록 하는 것도 ‘권고’ 수준이라 실제 출입 가능 여부는 각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하기 나름이다. 서울시 권고에 따라 자체 관리 규약을 정한 아파트에서도 전기차의 충전율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전기차 소유주들은 지자체에 더욱 세심한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전기차 소유주 30대 B 씨는 “배터리 충전율을 제한하거나 전기차 충전소를 지상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소유주들에게 불이 났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교육하고, 전국 아파트 스프링클러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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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임경진 기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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