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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주목한 해외 스타들

문영훈 기자

2024. 08. 22

팀 코리아는 최소 규모로 출전한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총 3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메달의 색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새긴 여정이다. 전 세계 메달리스트 중 저마다의 이유로 주목받은 여섯 선수에 대한 이야기. 

갓우진과 맞붙은 사나이 브레이디 엘리슨

양궁 남자 개인 금메달리스트 브레이디 엘리슨.

양궁 남자 개인 금메달리스트 브레이디 엘리슨.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브레이디 엘리슨(36)은 올림픽 3관왕 김우진과 결승전다운 결승전을 치렀다. 4세트까지 동률인 상황에서 5세트가 시작됐고 김우진의 ‘텐텐텐’에 엘리슨 역시 ‘텐텐텐’으로 응수했다. 한 발로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슛오프에서 두 선수가 쏜 화살은 모두 10점 라인 안에 안착했다. 김우진의 화살은 정중앙에서 55.8㎜, 엘리슨은 60.7㎜ 떨어져 단 4.9㎜로 승부가 결정됐다.

엘리슨은 개인전 은메달 외에도 혼성 단체 동메달을 목에 걸며 양궁 노장다운 성과를 거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으로 시작된 여정에서 그는 ‘태국 궁사 킬러’로 불렸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을 꺾은 주역이었고, 이번 올림픽 남자 개인전 8강에서는 ‘파이팅’ 김제덕을 6:0으로 이겼다.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회에 나가면 오로지 한국 선수만 신경 쓴다”며 “한국 양궁은 미국의 농구, 미식축구 같은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엘리슨은 미국을 대표하는 양궁선수가 되기까지 다양한 고난을 겪어왔다. 5세 때 레그·칼베·페르테스병에 걸려 고관절, 허리, 무릎 등의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 이후에도 손가락 통증 등으로 은퇴까지 고려했다. 개인전 첫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고 진행한 미국 양궁협회와의 인터뷰에서 “3주 전에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면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양궁 아재’로 주목받은 그의 다음 올림픽 여정에 이목이 쏠린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체조 전설 시몬 바일스

기계체조 여자 3관왕 시몬 바일스.

기계체조 여자 3관왕 시몬 바일스.

“최고의 연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기계체조의 전설 시몬 바일스(27)는 체조 경기가 펼쳐진 뒤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일스는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선수 중 가장 주목받는 스타였다. 본인의 이름을 딴 기술만 4개를 보유하고 있다. 장기인 마루에서는 그야말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묘기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어릴 적부터 체조 신동으로 불렸던 바일스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개인종합을 비롯해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체조 전 종목 석권이 점쳐지던 상황. 하지만 그는 공중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증상과 심리적인 부담으로 기권을 선언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선수로 복귀해 2023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며 파리 올림픽 5관왕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바일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추가했다. 개인종합, 도마, 평균대, 마루, 단체전에서 5관왕을 기대했지만, 평균대와 마루에서 실수하며 각각 5위와 2위를 차지했다. 그는 마루 종목 시상식에서 ‘체조의 신’다운 품격을 보여줬다. 금메달을 획득한 헤베카 안드라지가 시상대에 올라서기 전, 바일스는 3위를 한 조던 차일스(미국)와 함께 무릎을 꿇고 손을 높이 들며 1위 선수를 예우했다. 이를 두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바일스에 ‘입덕’했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뛰어올라’를 참고하자. 2021년 여름부터 파리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기까지의 3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쿄 올림픽 기권 후 기본적인 동작도 하기 힘들었던 슬럼프를 벗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날아오르기까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적수는 없었다 아먼드 듀플랜티스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아먼드 듀플랜티스.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아먼드 듀플랜티스.

아먼드 듀플랜티스(25)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6m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이 열린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듀플랜티스는 1차 시기 만에 6m를 넘어 단숨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도쿄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이다. 68년 만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그는 자신만의 싸움을 시작한다. 다음 순서에서 6.1m에 도전해 올림픽 기록 6.02m를 경신한 뒤 세계 신기록 달성을 위해 6.25m에 도전한다. 두 차례의 실패 끝에 6.25m를 넘자 스타드 드 프랑스를 메운 8만 관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듀플랜티스는 ‘육상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였던 아버지와 육상 7종경기 선수로 뛰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7세 때 3.86m 장대높이뛰기에 성공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2018년 유럽육상선수권대회에 주니어 선수로 출전해 6m 벽을 돌파하며 ‘신성’으로 불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오르는 남자의 새로운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올림픽 2연패 달성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금메달 딴 기분을 즐기고 싶다”며 “미래는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25세로, ‘미녀 새’로 불렸던 장대높이뛰기의 전설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34세에 은퇴한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선수 생명이 길게 남아 있는 셈이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뒤 보여준 퍼포먼스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여자 친구와 뜨겁게 키스해 로맨스 영화 같은 순간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닮은 외모도 주목을 받아 파리 올림픽 폐막일 기준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116만 명에 달한다.

뜨개질하는 걔 톰 데일리

다이빙 남자 싱크로 플랫폼 10m 은메달리스트 톰 테일리.

다이빙 남자 싱크로 플랫폼 10m 은메달리스트 톰 테일리.

톰 데일리(30)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최연소 출전 선수로 화제를 모았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10m 플랫폼에서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싱크로 10m 동메달을 거머쥔 데 이어 2020년 도쿄 올림픽 싱크로 10m 플랫폼에서 첫 금메달과 10m 플랫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속 4회 올림픽 출전 이후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2년 전 자신의 첫째 아들이 올림픽 박물관에서 “아빠가 올림픽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데일리는 2017년 미국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더스틴 랜스 블랙과 결혼해 2018년과 2023년 대리모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다. 그는 2013년 커밍아웃해 자신이 게이임을 밝혔다. 그는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터뷰를 통해 “지금 아무리 외롭다고 느껴도 혼자가 아니며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성소수자가 알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과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그는 이번 올림픽 싱크로 10m 플랫폼 경기에서 노아 윌리엄스와 함께 은메달을 획득했다.

데일리의 뜨개질 사랑도 유명하다.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되자 뜨개질을 시작해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관중석에 앉아서나 경기 대기 시간에 뜨개질하는 모습이 전 세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한자로 ‘동경’이 적힌 흰색 스웨터와 유니언 잭이 수놓아진 메달 주머니를,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푸른색 스웨터를 완성해 자신의 뜨개질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새로운 테니스의 역사 중국 정친원

테니스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정친원.

테니스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정친원.

8월 1일(현지 시간) 테니스 여자 단식 결승전이 열린 프랑스 스타드 롤랑가로스, 정친원(22)은 바닥에 드러누워 환호성을 질렀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리나에 이어 새로운 중국 테니스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다.

테니스 종목에서 서구권의 벽은 공고하다. 이전까지 중국의 리팅, 쑨톈톈이 아테네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획득한 금메달이 아시아 선수가 획득한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정친원은 같은 날 열린 4강에서 세계 랭킹 1위인 폴란드 선수 이가 시비옹테크를 2:0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크로아티아의 첫 단식 챔피언을 꿈꿨던 도나 베키치는 ‘신성’ 정친원의 기세에 패했다. 정친원은 우승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역사를 만들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며 전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는 그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여자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후베이성 스옌에서 태어난 정친원은 7세 때 테니스를 시작해 현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며 여자프로테니스(WTA)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 랭킹 7위로 아직 어린 그에게 이번 올림픽 우승의 의미는 크다. 자국 테니스 신성의 탄생에 중국은 환호하고 있다. 미국의 올림픽 11연패를 저지한 남자 수영 혼계영 400m 대표팀과 함께 포털 사이트 바이두와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은 정친원에 대한 찬사로 가득 채워졌다.



조국에게 바친 메달 올하 하를란

펜싱 여자 사브레 개인 동메달리스트 올하 하를란.

펜싱 여자 사브레 개인 동메달리스트 올하 하를란.

올하 하를란(34)은 하마터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지난해 7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 선수 스미르노바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상대의 악수에 검을 내밀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제펜싱연맹 규정에 따르면 경기를 마친 두 선수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 당시 이 행동으로 실격당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구제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하를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최세빈과 싸워 극적으로 승리를 거뒀다. 동메달이 확정된 뒤 그는 바닥에 키스하고 “우크라이나 사랑합니다. (메달은) 당신을 위한 겁니다”라며 조국에 첫 올림픽 메달을 바쳤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현지 관중도 펜싱 경기가 열린 그랑 팔레가 떠나가듯 환호했다. 이어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하를란은 전체 45점 중 22점을 혼자 획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하를란은 2005년부터 우크라이나 펜싱 대표팀에 소속돼 국제 대회를 치러온 펜싱 신동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5차례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파리 올림픽에서 추가한 2개의 메달을 합해 총 6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하를란은 이번 올림픽에서 펜싱 마스크와 손톱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칠하고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2024파리올림픽 #메달리스트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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