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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정부 고소" 네이처도 주목한 기후 소송

이승원 국제 칼럼니스트

2024. 07. 16

6월 14일 서울 낮 최고 기온은 33℃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6월 13일 중국 허베이성의 최고 기온은 42℃를 넘기도 했다.
역대급 폭염이 예상되는 2024년 여름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진 기후 소송에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아기 기후 소송’을 제기한 한제아 양(맨 왼쪽). 5월 21일 열린 ‘기후 위기 소송’ 2차 변론을 앞다고 소송 청구인들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아기 기후 소송’을 제기한 한제아 양(맨 왼쪽). 5월 21일 열린 ‘기후 위기 소송’ 2차 변론을 앞다고 소송 청구인들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저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미래, 우리가 사는 지구,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5월 21일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발언대에 섰다. 한 양은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이다. 2020년 3월 청소년들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5월 21일 2차 공개변론재판이 진행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비롯해 ‘아기 기후 소송’ ‘시민 기후 소송’ 등 4개 사건을 병합 심리 중이다.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기후 위기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인류가 과거 “공룡처럼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발언)을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다.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다.

국내 첫 기후 소송

국제사회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약속이 ‘파리기후협정’이라면 국내에서 이에 동참하기 위해 만든 기준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소송 청구인과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정부의 공방은 구체적으로 이 법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4월 23일 1차 공개변론재판에서 양측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 측은 “파리 협정에서 정한 온도 제한 목표가 달성되려면 각 나라가 ‘자기 몫’을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배출 책임과 감축 역량을 고려하면 (정부의 목표는) 부합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이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목표를 세운 2010년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 배출량은 27%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들은 40~60% 범위에서 설정했다”며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기본 약속도 지키지 않고 사실상 손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가 몇 %인지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파리 협정의 기본 정신은 공통되지만 차별화된 원칙”이라며 “하나의 수치를 기준으로 (시행령의) NDC가 위헌이라고 보는 것은 파리 협정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경제 구조가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즉각적 감축은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항변했다.

현재 ‘탄소중립기본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감축 목표 자체가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데다 2031~2050년에 대해선 아예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병주 변호사는 독일을 예로 들었다. 앞서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의 감축 목표가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고, 독일 정부와 의회는 이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확대한 바 있다. 이병주 변호사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아시아 최초로 기후 소송을 맡고 있는 헌재의 판단이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독일은 위헌 판결 이후 2050년으로 정한 탄소 순배출량이 제로가 되는 시기를 2045년으로 5년을 당겼어요.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한국의 감축 목표가 부족하다는 위헌 판결을 내려서 한국의 국회가 그걸 따라 법을 개정하게 되면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원고 측 소송을 진행 중인 윤세종 변호사도 “한국에서 원고 측에 유리한 판례가 나온다면 기후 소송을 제기하는 추세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모든 국가가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 세계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예외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책임져야 하는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자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청소년, 영유아가 급기야 사법부까지 가서 호소하게 된 상황은 슬프다 못해 암울하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기후 소송에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한국의 아기들이 정부를 고소하는 이유”라는 제하의 기사를 최근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내걸면서 관심을 보였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후 소송

2023년 초 주요 외신의 기후 섹션을 장식한 기사 중 하나는 ‘다농(Danone)’이었다. 다농은 프랑스에 기반을 둔 글로벌 회사로 에비앙 생수와 액티비아 요구르트 등을 판매하는 대기업이다. 환경단체들은 이 회사가 플라스틱 오염으로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석연료로 제조되는 플라스틱이 인간과 해양생물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OECD에 따르면, 지난 70년 동안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만t에서 4억t 이상으로 급증했으며 2060년까지 거의 3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기준 플라스틱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4.5%를 차지했고 이는 전 세계 항공기 탄소 배출보다 많은 양이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다농 사건을 주목했던 이유는 본격적인 기후 소송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법률회사 베이커 맥킨지(Baker McKenzie)는 기업을 상대로 한 플라스틱 관련 소송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런 흐름은 “심지어 석면, 담배 또는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소송 비율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과거 석면, 담배 등과 관련된 기업들이 대규모 소송에서 심판을 받았듯 이제는 플라스틱 과대 사용 등 기후 관련 소송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오피오이드 오남용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자 소송이 진행됐고 결국 2021년 미국 주 정부들과 제약사 등은 총 26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30조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제는 화석연료, 플라스틱 차례다.

실제로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 소송은 이어지고 있다.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에 따르면 2300건이 넘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낸 기후 소송에서 승소하며 이목을 끌었다. 원고들은 1972년 주 헌법 개정으로 주 정부의 환경 보호 및 개선 의무가 발생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자신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고, 담당 판사는 103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할머니들의 기후 소송도 화제가 됐다. 지난 4월 스위스 여성 노인들이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자 영국 ‘가디언’은 “유럽인권재판소의 획기적인 판결로 봇물 터지듯 세계 수많은 법원에서 기후 소송 사건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장 뜨거운 지구’ 매해 경신

5월 23일 파키스탄 남부 지역의 기온은 49℃를 기록했다.

5월 23일 파키스탄 남부 지역의 기온은 49℃를 기록했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남미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5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기록적인 홍수 혹은 폭염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케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 내린 폭우의 원인 중 하나가 기후 변화라며 “기후 변화로 홍수의 발생 가능성은 2배, 강도는 5% 더 커졌다. 해당 지역에서 폭우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동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폭우와 홍수로 피해가 심각하다. 유럽연합 기후 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는 2023년이 기록상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한 해 전 세계 인구의 약 80%인 63억 명이 적어도 31일 동안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다. 기후 변화는 사람,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우리는 지구를 가지고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 지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갈 출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운전대를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1.5℃ 제한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잇단 경고는 이제 절규가 됐다. 국제사회는 매해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화석 연료 사용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경제 번영과 지속 가능한 미래도 기후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한제아 양은 진술서를 통해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이르면 올해 9월에 나온다. 법정에 섰던 그들의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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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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