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낙태 권리 지지자들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며 대법원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뒤 긴급 연설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보장해온 여성의 선택권을 빼앗아 갔다”며 “미국 여성들의 목숨과 건강이 위험에 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찬반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법원 판결에 의한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美 찬성 판결 대법관 3명 트럼프가 임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월 1일(현지 시간) 백악관 사우스 코트 강당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화상으로 만나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뉴시스]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은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소송 사건에서 비롯됐다. 2018년 미시시피주 의회는 “임신 15주가 지난 태아에 대해 긴급한 의료적 상황이나 심각한 신체적 이상이 있지 않은 이상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도 낙태를 금지해 파장이 일었다. 이에 미시시피주의 유일한 낙태 시술 의료기관인 ‘잭슨여성보건기구’가 미시시피주 보건부 공무원 ‘토마스 돕스’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법에 대해 6 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49년 전 7 대 2였던 판결이 6 대 3으로 뒤바뀐 배경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역할이 주요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판결이 내려진 뒤 “한 세대만의 큰 승리”라며 “이번 승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내가 헌법을 중시하는 대법관 3명을 임명한 것이 주요했다”는 성명을 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한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판례를 뒤집는 데 찬성한 닐 고서치 대법관의 사례를 보자. 그는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지만 임명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소동이 있었다.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은 전임자가 사망하거나 은퇴하면 후임자를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표결을 거쳐 임명된다. 2016년 고서치 대법관의 전임자였던 앤터닌 스캘리아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곧바로 후임자를 지명하려 했다.
하지만 야당인 공화당이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명을 막아섰다. 공화당 소속 미치 매코넬 당시 상원의원장은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승리한 차기 대통령이 대법관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은 메릭 갈랜드 후보자를 밀어붙였다. 공화당은 청문회와 표결을 293일 동안 거부하다 결국 갈랜드 후보자 임명을 부결시켰다. 대법관 자리가 공석임에도 임명이 부결된 것은 미국 역사상 남북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듬해 고서치 대법관을 임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뒤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20년 차기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신임 대법관 인준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4년 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신임 대법관 임명을 막아선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는 태도를 바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의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은 상원의 표결을 거쳐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2017년 대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은 4 대 4로 균형이 맞춰져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3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하며 현재 6 대3 보수 우위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보수 성향 대법관 2~3명을 임명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이를 실현시킨 것이다.
전문가들 “한국에 끼칠 영향 미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위부터). 이들은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미국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의 판결이 “한국에 끼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내다봤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낸 대리인단 단장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번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세계 추세와 지나치게 동떨어져 한국에 영향을 끼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정교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한국은 이러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말했다.
국내 낙태 이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또한 “한국에서 임신 중지를 위한 법적 근거는 사실상 이미 마련돼 있다”며 “시대를 역행하는 미국을 한국이 따라갈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이 제출한 낙태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법안은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 법안은 미국 텍사스주와 유사한,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2020년 12월 열린 공청회를 마지막으로 논의는 중단된 상태이지만 이번 미국 판결의 영향을 받아 국민의힘 안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 여론 대다수가 낙태에 찬성하고 있어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2019년 TBS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낙태죄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폐지’ 응답이 절반을 넘는 51.9%로 ‘유지’ 36.2%보다 15.7%p 더 높았다. 이 조사는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가장 최근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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