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에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회사 선배일까, 친구일까.
다수의 애플 기기를 갖고 있지만 고작 시계 주제에 50만원에 달하는 애플워치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2년 새해 누구나 그러하듯 규칙적인 운동을 목표로 세웠고, 이를 충실하게 이행하려면 나를 위한 선물이 필요했다. 거금을 주고 셀프 새해 선물을 산 김에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뭐 이렇게 종류가 많아”
온라인에는 애플워치에 꽂히면 걸린다는 ‘애플워치병’이라는 말이 있다. 그 병은 구매해야만 낫는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구매를 마음먹고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혼란에 빠진다. 선택지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현재 판매되는 애플워치는 세 종류(나이키나 에르메스 버전은 시리즈 7 또는 SE의 업그레이드쯤에 속하니 논외로 하자)다. 최저가 24만9000원의 시리즈 3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2017년 출시된 구형 모델이고 누가 봐도 화면을 둘러싼 검은색 베젤이 “저 여기 있어요”라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기 때문에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그럼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최저가 기준 35만9000원의 SE냐, 49만9000원의 시리즈 7이냐.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SE’는 저가 라인이다. 시리즈 7에 있는 심전도와 혈중 산소 포화도 측정 기능이 빠졌다. 디스플레이 면적도 시리즈 7 쪽이 약 20% 넓다. 베젤이 3㎜에서 1.7㎜로 줄어든 덕이다. 나머지 기능은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다. 계산에 밝은 독자라면 여기서 느낌이 온다. 신체 건강하고 1.3㎜ 베젤 차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면 SE로도 충분하다.
시리즈 7을 선택했다면 소재를 골라야 한다. 다시 케이스(본체) 소재에 따라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티타늄 세 가지로 나뉜다. 스테인리스와 티타늄 모델이 강도가 높은 대신 가격도 두 배가량 비싸다. 직접 눈으로 보면 스테인리스나 티타늄 모델은 알루미늄에 비해 광택이 뚜렷해 일반 메탈 소재 시계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급스럽다. 하지만 알루미늄 케이스가 더 가볍기 때문에 운동용으로 구입하는 이라면 알류미늄도 충분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플워치 SE와 시리즈 7 모두 GPS나 셀룰러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셀룰러 모델은 스마트폰과 별개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기기다. 스마트폰이 근처에 없어도 전화를 걸거나 문자에 간단히 답할 수 있다. 셀룰러 모델이 최소 6만원(SE 기준) 비싼데 매달 별도의 데이터 요금도 지불해야 한다. 셀룰러 모델을 사기 전 하루 동안 내가 스마트폰과 멀리 떨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고민해보는 게 좋다.
끝난 줄 알았다고? 사이즈가 남았다. 시리즈 7의 경우 41㎜와 45㎜(시리즈 7 이전 모델의 40㎜와 44㎜) 두 종류다. 남자는 45㎜, 여자는 41㎜가 ‘국룰’로 알려져 있지만 취향이나 손목 사이즈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가까운 애플 매장으로 가서 자기 손목 위에 워치를 얹어보는 것이다.
한 트위터리안이 게시한 “애플워치를 생각하고 검색해보는 시간을 시급으로 따져 보면 애플워치를 구입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우스갯소리는 하루 만에 6000번 리트윗됐다. 참고로 기자는 애플워치 시리즈 7(신제품이라서) 알루미늄(저렴한 가격) GPS(스마트폰과 신체가 항상 가까이 있는 편) 41㎜(손목이 얇은 편) 모델을 선택했다.
애플을 위한 애플의 제품
서론이 길었다. 본격적인 애플워치 시리즈 7을 4주간 사용해본 후기다. 우선 50만원짜리 액세서리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애플워치와 연동되지 않는 갤럭시 등 다른 제조사 스마트폰 사용자가 애플워치를 구입할 이유는 없다. 스마트워치의 대표적 기능은 스마트폰에 도착하는 알림을 손목 위 진동으로 바꿔주는 것이기 때문이다.덕분에 스마트폰을 보지 않아도 항상 알림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의 카톡, 상사로부터 온 텔레그램 메시지, 통신사 속보까지 팔만 살짝 들면 된다. 족쇄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업무 중에는 애플워치로 간단히 내용을 확인하고 꼭 답장이 필요한 경우에만 스마트폰을 집어들면 되니 괜히 스마트폰 알림 때문에 폰을 쥐었다가 갑자기 유튜브를 클릭하는 자신을 마주볼 일은 줄어든다. 중요한 미팅 자리에서도 손목만 살짝 돌려 꼭 확인해야 하는 알림을 확인할 수 있다.
워치 페이스(바탕화면)를 어떻게 설정해놓느냐에 따라 날씨·주가·소음 정도·심박수·다음 일정 등을 잠깐의 곁눈질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리(siri)야, 2월 14일 오후 2시 최유리 선수 인터뷰 일정 등록해줘.” 기자는 재택근무를 할 때 음성인식 기능으로 인터뷰 일정을 등록해보기도 했다(고요한 회사에서 이런 혼잣말을 하면 주목받기 딱 좋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편한 건 아이폰 얼굴인식 잠금을 애플워치로 풀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워치를 착용하고 있으면 자동으로 휴대폰이 잠금해제 된다. 지문인식만으로도 휴대폰 잠금을 풀 수 있는 갤럭시 유저에게는 애당초 불필요한 기능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스마트폰 잠금을 풀려고 마스크를 살짝 내리거나 번거롭게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던 아이폰 유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자동 잠금해제 기능은 맥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외에도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사이로 들어가 버린 스마트폰을 찾을 수 있는 귀엽지만 자주 쓰는 기능도 있다.
애플 설명에 따르면 최대 18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배터리는 아쉽다. 그러니까 매일 시계를 충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노트북, 스마트폰, 멘털 등 가뜩이나 충전해야 할 것이 많은 현대인에게 조금 귀찮은 일이다. 다만 시리즈 7의 경우 고속충전이 적용되면서 45분 만에 85% 충전이 가능하다. 만일 충전을 깜빡하고 잠들었더라도 출근 준비를 하며 충전하면 하루 정도는 충분히 견딘다.
매일매일 기록되는 운동 일기장
애플워치 출시 당시 비교적 무게가 가벼운 애플워치 알루미늄 모델의 이름은 ‘애플워치 스포츠’였다. 애플워치가 운동을 즐기는 이를 위한 제품이라는 의미다. 기자는 새해를 맞아 난생처음으로 PT 티켓을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워치를 구입하며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스스로에게 소비의 정당성을 부여했다.기본적으로 애플워치는 손목에 차고 있기만 해도 이용자의 활동량을 기록한다. 피트니스 앱을 처음 열고 키와 몸무게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하루 목표가 설정된다. 목표 달성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는 “아직 달성할 기회가 있어요”라며 꼬시기도(?) 한다.
하루 목표는 세 가지로 나뉜다. 레드(움직임으로 소모된 칼로리), 그린(걷기를 포함한 운동 시간), 블루(한 시간마다 일어나서 움직인 횟수) 컬러 링이 시계 방향으로 채워져 한눈에 하루 동안 얼마나 열심히 몸을 움직였는지 체크할 수 있다.
개별 운동을 하기 전 피트니스 앱에서 해당 운동을 선택해 칼로리 소모량과 시간, 평균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운동 종류는 조깅, 사이클링, 근력 강화 운동, 하이킹부터 수영, 로잉, 요가, 필라테스, 심지어 태극권도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애플워치가 어떻게 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애플워치는 동기 부여의 의미가 크다. 매일매일 채워지는 세 개의 링과 개별 운동 실적이 모두 피트니스 앱에 기록돼 내가 언제 운동을 했는지, 계절이 바뀌면서 신년 운동 목표와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꿀꿀한 날, 목표를 달성해 꽉 찬 링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출근 전 피트니스 클럽을 다녀와 이미 하루 목표인 운동 시간 30분을 채우고 난 뒤 일과를 시작하는 쾌감도 쏠쏠하다.
‘겨루기’와 ‘배지 획득’ 기능도 작은 재미를 준다. 애플워치를 갖고 있는 친구들과 하루 활동량을 공유하며 일주일간 누가 더 많이 운동했는지를 겨룰 수 있다. 활동량을 포인트로 바꿔 일주일간 포인트 경쟁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기면 ‘000님과의 겨루기에서 승리’ 배지를 얻게 된다. 그 외에도 피트니스 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배지는 각양각색이다. 일주일간 매일 활동량 목표를 달성했다는 의미의 ‘완벽한 주’,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면 받는 ‘첫 사이클’ ‘첫 수영’ 등 수백여 개에 달하는 배지가 수집가들 욕구를 자극한다.
신기한 심전도 측정, 남는 건 마음의 평화뿐
애플워치로 심전도를 측정해본 결과 이상 증상이 없다고 한다.
“Bob B.는 숲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넘어져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를 감지한 애플워치가 자동으로 911에 전화를 걸어 그의 위치 정보를 전송했죠.”
1월 14일 공개된 애플워치 시리즈 7의 광고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애플워치의 ‘넘어짐 감지’ 기능을 켜면 예상치 않은 사고를 당했을 때 애플워치가 낙상을 감지해 긴급 구조 요청이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일정 시간 동안 응답이 없으면 자동으로 119에 긴급 구조 요청을 하게 된다. 실제로 수건에 싼 애플워치를 침대에 내동댕이쳤더니 넘어짐을 감지하고 괜찮으냐고 물어왔다.
이처럼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들이 착용자의 신체 상태를 보여주는 기능을 앞다퉈 넣는 것은 미래 의료산업과 관련돼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웨어러블 기기가 원격 의료 진단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 처지에서는 판매 수익을 얻음과 동시에 생체 데이터 역시 축적할 수 있다. 기존 스마트워치 시장의 3대장인 애플·삼성·화웨이 외 구글과 메타가 올해 스마트워치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래서 사, 말아?
활동 목표를 달성한 날은 괜스레 뿌듯하다.
하지만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항상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날로그 시계는 여전히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스마트워치도 본질은 ‘워치’, 기본적으로 패션 아이템 혹은 장난감의 영역인 셈이다. 그런데 그 장난감이 가끔 운동을 하는 데 동기를 부여해주고, 놓칠 뻔한 중요한 전화를 받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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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 기자가 글(文)로 푸는 알기 쉬운 테크 제품 리뷰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취하는 서른 살 기자. 대학 때 사회학을 전공했으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의 신세계를 접하고 전자 기기가 주는 소소한 삶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사진 문영훈
사진출처 애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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