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아쉽지만 월드컵 앞두고 미리 매 맞은 것”
경기 후 이목은 전반 27분 첫 골을 터뜨린 최유리(28·현대제철) 선수에게 쏠렸다. 최유리의 공은 늘 중요한 순간마다 골문을 갈랐다. 2021년 11월 19일 여자실업축구 W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도 그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2월 8일 인도에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최유리를 화상으로 만났다.
“골 넣는 순간 위해 힘든 생활 견딘다”
준우승 축하드립니다.감사합니다(웃음). 목표로 삼았던 우승을 코앞에서 놓쳐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시안컵에 나간 이후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 가고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둬 기분이 좋습니다.
아시안컵 경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호주전이죠. 첫 토너먼트 경기였고 호주를 이겨야 4강, 준결승까지 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압박감이 심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호주전에서 승리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아직 큰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없어서 정말 좋았어요. 선수 생활은 매 순간 관리와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참 힘들거든요. 그런데 골이 한번 터지면 그 모든 어려움이 해소됩니다. 그 순간을 위해 참는 거죠. 골을 넣었을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귀국 후 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걸로 압니다.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아뇨, 푹 쉬고 있습니다. 주야장천 먹고 있어요(웃음).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먹킷리스트’를 만들어놨거든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먹고 싶었던 곱창부터 먹었어요. 떡볶이도 시켜 먹었고요. 훈련할 때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마음껏 시켜 먹고 있어 행복합니다.
경기력을 위해 점심과 저녁을 소금기 없는 구운 고기와 채소로만 해결한다는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선수의 식단이 화제가 됐어요. 축구선수들은 평소 어떻게 식단 관리를 하나요.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처럼 닭 가슴살만 먹진 않아요. 물론 체중 관리는 하죠. 그런데 뭘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에 나쁜 걸 덜 먹는 거예요. 항상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시즌이 끝나면 잠깐 주어지는 휴식 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훈련에 들어가신다고 들었습니다.
2월 19일부터 다시 시즌 준비를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이 짧아 아쉽긴 하지만 격리 기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힘들었던 마음도 잘 추슬러서 다시 훈련에 임할 수 있게 재충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건, 결승전에서 느낀 아쉬움 때문인가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네요(웃음).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매를 미리 맞았다고 생각해요. 후회되는 점도 있지만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치를 큰 경기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전드와 함께 뛰는 기분
최유리가 소속된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다음 목표는 2023년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서의 선전이다. 한국은 2003년, 2015년, 2019년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최고 성적은 2015년 기록한 16강 진출이다.월드컵에 앞서 7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과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도 준비해야 한다. 영국 출신 콜린 벨 감독이 계약을 연장해 내년 월드컵까지 여자축구팀을 이끌게 된 건 반가운 소식이다. 벨 감독은 유럽 리그에서 오래 감독으로 활동해 전술 수립에 능하며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유리는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와 비교하면 우리말이 정말 많이 늘어 이제는 말장난도 한국어로 하실 정도”라며 “감독님이 선수와 직접 소통하려고 애쓰신다”고 말했다.
최유리는 국가대표팀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리빙 레전드’ 지소연(31·첼시FC 위민) 선수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소연은 이번 아시안컵 결승전 전반 44분에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대표팀에 두 번째 골을 선사한 인물. 최유리는 인터뷰 때마다 지소연을 롤 모델로 꼽는다.
롤 모델과 함께 훈련하고 필드에서 뛰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엄청난 영광이죠. 오래전부터 소연 언니의 경기를 봐왔으니까요. 같이 훈련받거나 경기할 때는 정말 큰언니처럼 느껴져요. 항상 보면서 배우려고 합니다. 소연 언니는 볼 차는 스타일이 굉장히 영리해요. 몸 쓰는 방법, 제스처에도 감탄할 때가 많고요. 아직 따라 하기엔 부족하지만 눈으로 열심히 익히고 있습니다.
지난해 스포츠토토를 떠나 현대제철로 이적하자마자 WK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히셨어요.
2021년은 제가 WK리그에 있으면서 꿈꿔온 걸 다 이룬 해입니다. 우선 팀 우승을 정말 해보고 싶었거든요. 사실 이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국가대표가 많은) 이 팀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요. 그런데 우승도 하고 운 좋게 큰 상까지 받으면서 마무리하는, 선물 같은 해를 보냈습니다.
2016년 경북 구미 스포츠토토에 입단해 WK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U-20 월드컵 국가대표로 두 차례 출전하는 등 기량을 인정받았던 최유리의 강점은 단연 스피드다. 필드를 질주하는 적극적인 플레이로 그에겐 ‘나이지리아 용병’ ‘파이터’ 등의 별명이 붙었다.
경기 영상을 보니 정말 움직임이 빠르던데요.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빠른 달리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운동회 때마다 계주에 참여해 공책을 잔뜩 받아왔던 것 같아요(웃음).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다 축구부 감독님께 발탁됐죠. 생각해보면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 다닌 게 행운인 것 같아요.
WK리그에서 뛰는 다른 팀 선수들도 최유리 선수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두려워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스피드가 빠른 선수는 많은데, 동료 선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는 발소리가 유독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뒤에서 제가 따라오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진대요. 누가 들어도 최유리가 오고 있다는 거죠.
끼도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낯가림이 심해 아직 대방출은 안 됐어요(웃음). 팀 훈련이나 대표 팀 훈련을 오랜 시간 같이하면 제 장난스러운 성격이 많이 나오는 거 같아요.
“‘여축’ 많이 알릴 테니 따라와 달라”
과거에 비해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편견이 존재합니다.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주위 분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어요. 제가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졌나 봐요. 하지만 지금은 주위에서 다 응원해주십니다. 가족들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요. 이번 아시안컵 경기를 치르면서도 팬들한테 DM(다이렉트 메시지)이나 댓글로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매번 답장을 해드리진 못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성 연예인이 축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펼치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화제를 모으기도 합니다.
개그우먼 오나미 선수에게 축구를 알려준 적이 있어요.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더라고요. 정말 축구를 진심으로 대하고 경기에서 몸싸움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이 프로그램의 인기로 일반인들도 축구를 많이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최유리는 “이런 관심을 계기로 프로리그 선수 충원의 어려움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주니어 선수가 적어요. 제가 유소년 선수로 뛸 때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아요. 팀 수도 적고요. 어린 친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나 환경이 중요해요. 좋은 훈련을 받고 성인 무대로 올라와야 여자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열심히 해서 여자축구를 더욱 알릴 테니 많은 학생이 제 길을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여자축구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앞으로 더 잘 준비해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월드컵에서도 ‘최초’ 타이틀이 붙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최유리 #여자축구 #아시안컵 #월드컵 #여성동아
최유리 선수에 대한 TMI 3
1. 그는 은퇴 후 카페 사장이 되고 싶어 한다. 훈련이 없을 때는 트렌드를 캐치하고자 카페 유랑을 다닌다.2. MBTI는 ISTJ. 어릴 때부터 시키는 건 뭐든 최대한 빨리 해낸다고 한다.
3. ‘Yu Ri’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쉽다는 이유로 콜린 벨 감독에게 자주 호출당한다.
사진 뉴스1
사진제공 대한축구협회 현대제철레드엔젤스 사진출처 최유리 인스타그램(@y_uchmi)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