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김우진, 오진혁(왼쪽부터) 선수가 도쿄 올림픽 남자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산, 장민희, 강채영(왼쪽부터)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과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 같은 눈부신 성과는 단연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인기 종목이었던 양궁을 1985년부터 37년간 체계적으로 후원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이다.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정몽구 명예회장부터 올해 대한양궁협회장에 재선임된 정의선 회장까지 현대자동차그룹은 대한민국 양궁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우수 인재 발굴, 첨단 장비 개발, 양궁 인구의 저변 확대 등에 크게 기여했다. 최고를 향한 혁신과 도전을 거듭하며 동반 성장해온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민국 양궁의 성공 신화에 대해 키워드로 알아봤다.
KEYWORD 1. 현대家의 세심한 양궁 사랑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눈물을 흘리는 안산을 다독이고 있는 정의선 회장.
양궁 남자개인전 8강전에서 패한 김우진을 위로하는 정의선 회장.
정의선 회장은 도쿄 올림픽 준비 인프라부터 선수단 컨디션 조절까지 세심하게 지원하며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의선 회장의 통 큰 선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37년간 양궁을 세심하게 지원하며 그야말로 꾸준히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왔다. 도쿄 올림픽에서 이뤄낸 뛰어난 결과 역시 정몽구 명예회장이 양궁 발전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정의선 회장이 양궁의 스포츠 과학화와 도쿄 올림픽만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대표선수단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운 덕분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양궁의 인연은 정몽구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1984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 사장이었던 정몽구 명예회장은 LA 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에서 서향순 선수의 금빛 드라마를 지켜본 뒤 체계적인 양궁 육성을 결심하고,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해 현대정공에 여자 양궁단을, 이어 현대제철에 남자 양궁단을 창단했다. 양궁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바탕으로 스포츠 과학 기자재 도입 및 연구개발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는 등 세계화를 향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선수들의 연습량과 성적을 전산화해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시로 개발됐다. 또한 양궁의 필수 장비인 활의 국산화에도 앞장서 이제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외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국산 활을 사용할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 양궁 연습 시 필수 코스가 된, 관중이 가득한 야구장에서 실시하는 활쏘기도 정몽구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중국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현지 주재원 및 가족, 재중 한인회 등을 대상으로 9천여 명의 응원단을 결성해 선수들의 사기 진작에 큰 힘을 보탠 일화로도 유명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회장은 올해 1월 열린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13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재선출되는 등 양궁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속적인 지원으로 대한양궁협회 재정 안정화는 물론 양궁의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 체계화, 양궁 저변 확대 등을 펼치며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 최정상에 오르게 한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이다.
정의선 회장은 2008년, 양궁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양궁협회는 3기 13년에 걸친 중장기적 양궁 발전 플랜을 세워 시행하고 있다. 특히 대한양궁협회가 원칙을 지키는 투명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협회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는 철저한 경쟁을 통해 성적으로만 선발된다. 또 유소년부터 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특별 지원으로 일선 초등학교 양궁 장비와 중학교 장비 일부를 지급 중이며, 2013년에는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 대표 선수단을 신설해 장비와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소년대표(초등)→청소년대표(중등)→후보선수(고등)→대표상비군→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갖춰졌다. 이와 더불어 양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 대회인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를 개최 중이며,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개최가 불가능해지자 온라인 비대면으로 초등부 양궁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의선 회장은 주요 경기 때마다 현지에서 직접 응원을 펼치고 현장을 깐깐하게 체크하며 선수들의 힘을 북돋는 일에도 열심이다. 일례로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경기장에서 숙소가 1시간 이상 떨어져 이동이 불편하자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경기장 인근 호텔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고, 끼니때마다 선수들이 원하는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정의선 회장이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메달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우선 대한양궁협회장으로 도쿄 올림픽에 참석해 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하며 사기를 진작했고,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 방역 상황을 철저하게 점검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19년에 도쿄 올림픽 양궁 테스트 이벤트 대회 현장을 찾았는데, 대표선수단을 응원하려는 목적과 함께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과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들과 시설을 꼼꼼하게 살핀 정의선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진천선수촌에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건설하고, 올림픽에서 예상되는 음향과 방송 환경 등을 적용한 모의 대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지난해 1월에는 대표선수들이 도쿄 올림픽과 동일한 기후 조건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7월 말의 도쿄와 유사한 기후를 가진 미얀마 양곤에서 기후 적응을 위한 전지훈련도 실시했다. 미세한 오차로 승부가 갈리는 양궁은 실전 적응력 향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올해 5월과 6월에는 4차례에 걸쳐 스포츠 전문 방송사 중계를 활용해 실제 경기처럼 미디어 실전 훈련도 실시했는데, 이를 통해 선수들이 무대에서 겪을 수 있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심리적 안정을 얻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선수들이 인터뷰에 대한 부담을 극복하도록 전문 강사를 초빙해 미디어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도쿄 올림픽 경기 대기 시간에 편히 쉴 수 있도록 휴게 장소에 별도로 선수별 릴랙스 체어를 마련하는 등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선수들에게 전동 마사지건과 책 ‘두려움 속으로’(미국 유명 스쿼시 코치인 폴 아시안테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다양한 노력에 대한 경험을 풀어냈다)를 선물한 일화도 화제를 모았다. 정의선 회장은 선물과 함께 선수들에게 긴장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최선의 경기를 펼치라며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KEYWORD 2. 든든한 힘이 된 혁신 기술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
양궁에 적용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연구개발 기술은 우선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이 있다. 선수들은 품질이 우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화살을 선별하기 위해 직접 활시위를 당기며 테스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를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가 협의해 제작한 기계가 바로 슈팅머신이다. 선수들은 70m 거리에서 슈팅머신으로 화살을 쏘아 신규 화살의 불량 여부를 테스트한다. 과녁에 꽂힌 화살이 일정 범위 이내에 탄착군을 형성하면 합격. 힘, 방향, 속도 등 동일한 조건에서 테스트가 가능해 선수 컨디션이나 날씨, 온도에 제한 없이 화살 분류가 가능하다. 화살 분류는 1차로 슈팅머신을 통해 불량품을 골라낸 뒤 선수들이 직접 자신에게 맞는 화살을 테스트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의 기량 향상을 위해 지원한 또 다른 기술은 ‘점수 자동 기록 장치’다. 정밀 센서 기반의 전자 과녁을 적용해 점수를 자동으로 판독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전자 과녁은 무선 통신으로 점수를 모니터 화면에 실시간 표시해주므로,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직접 과녁에 가거나 망원경으로 보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화살 탄착 위치까지 모니터에 표시된다. 이러한 점수와 탄착 위치 정보는 훈련 데이터 센터에 자동으로 저장되는 시스템을 갖춰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데이터는 발사 영상, 심박수 정보 등과 연계해 선수 상태를 종합적으로 분석, 점검하고 지도하는 데 활용됐다.
심박수는 선수들의 긴장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인데, 현대자동차그룹은 ‘비전(Vision) 기반의 심박수 측정 장비’도 선수단에 지원했다. 선수 얼굴의 미세한 색상 변화를 감지해 맥파를 검출하며 심박수를 측정하는 장비다. 보다 정교한 심박수 측정을 위해 활시위를 당기는 선수 얼굴 영역을 판별하고 주변 노이즈를 걸러내는 별도의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했으며, 훈련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용 원거리 고배율 카메라도 사용했다. 이렇듯 훈련 과정에서 축적된 심박수 정보와 점수 데이터를 연계해 선수의 심리적 불안 요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딥러닝 비전 인공지능 코치’도 획기적인 기술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인공지능 전문 조직 에어스(AIRS) 컴퍼니가 보유한 AI 딥러닝 비전 기술을 활용, 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실전을 위한 분석에 용이하도록 자동 편집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선수와 코치는 최적화된 편집 영상을 통해 평소 습관이나 취약점을 집중 분석할 수 있었고, 이는 곧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기술 개발을 위해 에어스 컴퍼니는 수천 개의 양궁 동작 이미지를 통해 영상에 등장하는 선수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딥러닝 비전 컴퓨팅을 활용했으며, 같은 방식으로 과녁 영상에서 마지막에 꽂힌 화살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모델을 적용했다.
선수의 손에 최적화된 그립을 3D로 스캔해 3D 컴퓨터로 제작한 ‘맞춤형 그립’도 선수들에게 제공됐다. 보통 선수들은 활의 중심에 덧대는 그립을 자신의 손에 맞도록 직접 손질한다. 하지만 경기 도중 그립에 손상이 가면 새 그립을 다시 손에 맞도록 다듬어야 해 컨디션에 차질을 빚게 마련. 맞춤형 그립은 선수들이 이미 손에 맞게 손질한 그립을 미세한 흠집까지 3D 스캐너로 스캔해 그 모습 그대로 3D 프린터로 재현해낸다.
선수의 손에 최적화된 ‘맞춤형 그립’(위). 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실전을 위한 분석에 용이하도록 자동 편집해주는 ‘딥러닝 비전 인공지능 코치’.
KEYWORD 3. 실력을 최우선시하는 공정한 경쟁
대한양궁협회는 지연이나 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 또는 갑작스러운 선수 발탁을 하지 않는다. 국가대표는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서만 선발하고, 명성이나 이전 성적보다는 현재의 실적을 본다. 실력만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대표선수로 발탁돼 활약할 수 있는 것. 코칭스태프 역시 공채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한다.현대자동차그룹은 37년간 아낌없는 지원을 하면서도 선수단 선발과 협회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은 주문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협회 운영은 투명하게 선수 선발은 공정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한국 양궁의 힘이 됐고,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대표선수로 선발되면 세계 무대에서 강자가 되는 시스템을 정착하는 데 큰 밑바탕이 됐다. 과거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했던 김수녕 선수도 1999년 선수로 복귀해 실력만으로 대표 자격을 다시 얻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양궁 남자 대표팀의 구성이 큰 화제가 됐다. 막내 김제덕(17), 둘째 김우진(29), 맏형 오진혁(40) 등 10대와 20대 후반, 40대가 한 팀을 이뤄 금빛 화살을 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에서는 ‘나이 따윈 상관없다.
잘 쏘면 그만’ ‘블라인드 채용의 정석’이라는 칭찬 가득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공정한 경쟁 덕분인지 양궁 팀의 팀워크도 끈끈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당시 첫 화살을 쏜 안산 선수가 두 번째로 경기를 준비하는 강채영 선수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중계에 노출됐다. 다음 선수가 활을 쏘는 순간의 환경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경험한 풍향과 조준점 등을 말해주는 것으로, 팀원들 간의 굳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실력 중심의 공정한 운영 시스템은 사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연공서열,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젊은 인재를 발탁해왔다. 특히 2019년에는 직급과 호칭 체계를 축소, 통합하고 승진연차제도를 폐지했다. 이로써 기존에는 한 직급당 4~5년 차가 돼야 승진할 수 있었지만 이젠 능력만 갖추면 바로 상위 직급으로 올라설 수 있으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팀장과 임원이 되는 게 가능해졌다.
금메달을 딴 6명의 양궁 선수에게는 올해 출시된 전기차인 현대 아이오닉 5(사진), 기아 EV6, 프리미엄 SUV 제네시스 GV70 중 1대가 증정된다.
사진제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현대자동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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