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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이 만든 21세기 뮬란, 멍완저우

한청훤 칼럼니스트(‘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저자)

2022. 12. 28

12월 초, 멍완저우 화웨이 회장이 3년간의 분쟁 끝에 미국 법무부와의 재판에서 승리했다. 중국 언론 환구시보는 “멍완저우 회장의 무죄선고는 중국 외교의 승리이자 패권주의에 맞선 국제 정의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전형적인 재벌 2세인 그가 중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뭘까.

멍완저우의 법정 출두 패션이 화제를 모았다.

멍완저우의 법정 출두 패션이 화제를 모았다.

2021년 9월 25일 오후 9시 무렵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선전의 바오안국제공항에 수많은 사람과 취재진이 운집했다. 얼마 후 오성홍기가 새겨진 ‘에어차이나’ 소속 항공기가 공항 활주로에 착륙한 뒤 문이 열렸다. 이윽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한 중년 여성이 모습을 나타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군중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극적인 등장은 중국 국영방송인 CC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온 중국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주인공은 당시 화웨이 그룹 부회장 멍완저우. 도대체 중국 거대 기업의 임원인 이 여성에게 어떤 우여곡절이 있기에 이토록 거국적인 환영회가 벌어졌을까.

미중 무역 갈등 중심에 선 화웨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인 캐나다 법원 앞에서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인 캐나다 법원 앞에서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그룹 창업주 런정페이의 장녀로 재벌 2세다. 두 사람의 성이 다른 건, 멍완저우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재벌 2세가 국가적 영웅으로 떠오른 배경을 이해하려면 소위 ‘신냉전’이라 불리는 최근 국제정세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멍완저우가 회장으로 재직 중인 화웨이는 범상치 않은 회사다. 통신 장비, 스마트폰, 각종 전자 장비, 가전기기를 생산·판매하는 화웨이는 이름부터 평범하지 않다. 화웨이(華爲)란 이름은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따왔다고 전해지는데, ‘중화민족을 위해 행동한다’ ‘중국을 위해 분투한다’라는 뜻이다.

창업자 런정페이가 중국 군대인 인민해방군 제대 이후 군부대에 통신기기를 납품하기 시작한 게 바로 화웨이의 출발점이다. 이후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밀착한 관계를 통해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중국 굴지의 전자기기, 통신설비 전문 기업으로 떠올랐다.

화웨이는 세계적인 거대 그룹으로 성장한 후에도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았다. 비상장기업으로 남은 표면적 이유는 “종업원 지주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다수의 분석가는 중국 정부 인사들과 중국군 고위 장성들의 지분 소유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본다. 화웨이가 군납품 및 정부 수주 독점을 통해 성장한 배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개연성 있는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화웨이는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장악한 후 이를 기반 삼아 글로벌 무대에 뛰어들어 성공적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화웨이가 뻗어나간 세계 곳곳에서 온갖 불미스러운 잡음과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법 해킹을 통한 경쟁사 기술 탈취, 무분별한 지적재산권 침해,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방조 등이 그렇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됐던 게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 첩보 기관의 업무를 비밀리에 대행해왔다는 의혹이다. 즉, 중국 정보기관이 스파이 활동을 위해 전 세계로 수출되는 화웨이 제품 속 장치와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의혹투성이 화웨이에 칼을 뽑아 든 건 미국 내 반중 여론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정권 시절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실질적으로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화웨이의 미국 내 모든 사업 진행을 금지했다. 심지어 화웨이 제품의 필수 부품인 반도체 등 첨단 소재 판매를 중단시켰다. 첨단 소재 대부분이 미국산 원천 기술에 의존하였기에 이는 화웨이의 급소를 찌르는 치명적 조치로 평가됐다.

이로써 화웨이는 2018년 터진 미중 간 무역 전쟁 한가운데 서게 된다. 미국의 창끝은 화웨이를 겨냥했고, 반대로 중국에서 화웨이는 사악한 미국에 저항하는 중화 민족주의의 상징 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많은 중국인은 미국의 화웨이 공격을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나려는 중국 그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캐나다에서의 호화로운 억류 생활

명품 가방과 전자발찌를 착용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명품 가방과 전자발찌를 착용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화웨이 이슈가 미중 무역전쟁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2018년 10월, 캐나다에서 뜻밖의 뉴스가 전해진다. 멍완저우 당시 부회장이 멕시코 방문을 위해 캐나다를 경유하던 중 캐나다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는 뉴스였다. 캐나다 경찰의 체포는 미국 정부의 신병인도 협조 요청 때문이었다. 미국 법무부는 멍완저우에게 위장 회사를 통해 당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던 이란에 장비 수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금융사기 및 통신망을 불법적으로 이용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멍완저우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화웨이는 반미 민족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여론의 동정과 지지를 크게 받고 있었다. 이 상황에 발생한 멍완저우의 체포는 그를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순교자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중국인 눈에는 미국과 동맹인 캐나다 경찰에 의해 하루아침에 구치소에 수감된 멍완저우가 난폭한 미국에 의해 핍박받는 피해자로 보인 것이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 정권도 멍완저우 체포 사태로 촉발된 애국주의 열풍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었는지 은근히 부추기는 모양새였다. 멍완저우 또한 자신에게 쓰인 영웅적 프레임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조국을 위해 일하다 부당하게 탄압받지만 용기를 잃지 않는 인물로 적극 포장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중국 선전의 바오안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멍완저우의 귀국 장면은 중국 국영방송 CCTV를 통해 생중계됐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중국 선전의 바오안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멍완저우의 귀국 장면은 중국 국영방송 CCTV를 통해 생중계됐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억류 생활은 ‘먼 이국땅에서 박해받는 공주’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1000만 캐나다달러(약 86억 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멍완저우는 캐나다 부촌 내 자기 소유의 저택(한화 120억 원 가치)에 머물렀다. 캐나다를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도록 전자발찌를 채운 것 외에 행동에 큰 제약은 없었다.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과 함께 매일같이 고급 레스토랑에 다니고 명품 쇼핑을 즐겼다. 개인 회화(繪畵) 수업과 마사지도 수시로 받았다. 물론 이러한 멍완저우의 유배 생활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는 중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박해받는 공주는 실제로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강제로 캐나다에 발이 묶였다는 점에서 멍완저우가 미중 간 경쟁 격화의 유탄을 맞은 희생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에게 큰 행운이기도 했다. 멍완저우는 캐나다에서 체포 및 연금 생활을 한 덕에 일약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회사 내부의 승계 경쟁 구도에서의 입지도 더욱 탄탄해졌다. 그는 미중 간 타협으로 근 3년 만에 조국으로 귀환하자 미국을 이겨낸 영웅으로 거국적 환영을 받게 된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2022년 4월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고 아버지에 이어 화웨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12월 브루클린 지역법원이 멍완저우를 상대로 미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며 모든 혐의를 벗었다.

공주로 태어난 출신 성분, 뜻밖의 고난과 시련, 역경을 이겨낸 승리와 영웅적 귀환 등 전형적인 영웅 서사는 그를 ‘21세기 뮬란’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미중갈등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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