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누구에게나 악한 면 있다’는 생각으로 욕망 검사 풀어냈어요”

‘클라이맥스’ 주지훈

이슬아 기자

2026. 04. 23

냉혈한처럼 권력을 좇다가도 인간적 감정에 흔들리는 검사 방태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클라이맥스’ 주지훈을 만났다.

주지훈의 검사 연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2019년 드라마 ‘아이템’에서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정의로운 검사 역을 맡았고, 2022년 영화 ‘젠틀맨’에서 정체불명의 사건에 휘말려 실종된 검사 행세를 하고 다니는 인물로 분했다. 그리고 최근 방영된 드라마 ‘클라이맥스’에서는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 방태섭을 연기했다. 이전 검사 배역들과 달리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였지만 시청자들은 방태섭에 열광했다. 권력을 탐하게 된 캐릭터의 결핍과 상처, 냉혈한처럼 굴다가도 인간적 감정에 흔들리는 모습을 주지훈이 입체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 종영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ENA 사옥에서 만난 주지훈은 방태섭에 흥미를 느낀 이유에 대해 “평소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고 답했다. 누군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할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분개하기보다 ‘왜’를 고민하는 사람이기에 방태섭이라는 모순적 인물을 개연성 있게 표현할 수 있던 것. 주지훈은 “배우이다 보니 사람의 양가적인 면, 2개의 서로 다른 진실을 잘 받아들이려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주지훈은 올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차기작으로 또 한 번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계 메가 히트작을 드라마화한 ‘재혼 황후’를 통해서다. 배우 데뷔 20주년을 맞은 해에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바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클라이맥스’ 종영 소감과 향후 계획을 물었다.

‘클라이맥스’는 파격에 파격을 더한 드라마 같아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속이 시원해서 좋았던 게 있어요. 이렇게 욕망이 큰 사람을 우리는 안 만나고 싶고, 피하고 싶지만 사실 주위에, 모든 조직에 존재하잖아요. 그런 인물들만 모아놨으니 드라마가 아주 스트레이트하다는 느낌을 받았죠. 사실 처음 대본은 19세 관람가였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15세로 수정한 건데, 그렇다고 드라마 설정을 바꿀 순 없으니 덜어낸 장면들을 연기로 계속 표현해야 했어요. 그것들이 어떻게 하면 작위적이지 않을까를 고민하면서 찍었어요.



‘스트레이트’한 욕망 연기의 재미란 뭔가요.

예를 들면 방태섭이 검찰에 사직서를 내고 나가는 장면 같은 데서 느껴지는 쾌감이죠. 조직이라는 게 어떻게 다 합리적이겠어요. 불합리하잖아요. 그럴 때 가슴속에 품고 있던 사직서를 멋지게 던지고 손가락 욕을 날리면서 나가면 좋은데,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런 장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대리만족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대사나 연기가 직설적이라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연기보다는 상황이 직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검찰이라는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 정계에 진출하고 관련 인물과 관계를 맺고 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방태섭이 그 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것들을 설득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아주 다이렉트하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연기는 힘을 주고 욕망대로 하기보다 오히려 밸런스를 맞추려 했어요.

1회 휘파람 장면이 큰 화제를 모았어요. 연기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그 장면은 제가 기술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아이디어를 냈어요. 원래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휘파람을 부는 거였는데, 그러지 말고 들어가서 엔딩을 휘파람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드렸죠. ‘내가 이 카드를 하나 쥐었다’는 방태섭의 심리 상태가 더 잘 보이도록요. 사실 촬영에는 뚜렷한 정답이 없어서 매번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빗나가면 질타를 받기도 하고요.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셨고, 시청자들의 시청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극중 방태섭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는 톱스타 추상아(하지원)와 전략적으로 결혼한다.

극중 방태섭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는 톱스타 추상아(하지원)와 전략적으로 결혼한다.

공통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방태섭과 협력하는 권종욱(오정세).

공통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방태섭과 협력하는 권종욱(오정세).

“방태섭과 추상아 관계, 의심 없이 사랑”

아내 역인 추상아(하지원)와의 관계를 뭐라고 정의하고 연기했나요. 단순한 이익 공동체는 아닌 것 같아서요.

감독님도 제 해석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완전 사랑이라고 봤어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사랑이랄까요. 왜 피트니스센터에 가면 트레이너가 운동을 되게 고강도로 시키잖아요. 그게 너무 고통스럽지만, 결국은 건강하라고 그러는 것이듯 ‘어떻게 좋은 것만 하고 살아, 너한테 득이 되니까 힘내’ 이런 것도 저는 어른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추상아를 자신의 트로피 와이프로,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삼은 건 맞지만 극 중 ‘자해 쇼’에 찾아간 장면을 보면 그동안 살 맞대고 살던 사람이 잘못될까 걱정돼서 간 게 분명히 있어요. 한번은 감독님이 이 둘이 부부 관계를 할 것 같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그럴 것 같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서로 이용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증오하고 있지는 않아 보였거든요. 또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렸을 때 방태섭이 그 보상을 혼자 누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중간중간 질투 어린 사케즘(비꼬는 말) 같은 것도 오로지 비즈니스 관계이기만 하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하지원과 호흡은 어땠나요.

고작 몇 개월 본 걸로 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 지원 누나는 정말 선하고 순수한 사람 같아요. 그렇게 선한 사람이 표독스러운 연기를 하려면 자기를 최대한 비우고 섬세하게 몰입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아닌 눈치를 볼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저희가 막 시끄럽게 농담 따먹기하고 그러는데도 누나는 엄청나게 집중력을 유지하고, 저희는 지금 이 분위기가 이 사람한테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난 내 거 할게, 너희들은 즐겁게 너희의 집중 방식을 찾아’ 이런 선배로서의 배려가 정말 좋았어요.

“‘핑계고’ 반응? 이 정도일 줄 전혀 몰랐죠”

최근에 말 많은 남자 배우들끼리 웹 예능 ‘핑계고’에도 출연했어요. 김남길, 윤경호에 비하면 말수가 없는 편이라고 판명이 난 것 같던데요.

저는 결과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들이 메타인지가 안 되는 건지, MSG를 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보다 말이 많지는 않다는 건 너무나 자명하거든요(웃음). 물론 저도 일 얘기, 주제가 명확한 얘기를 할 때는 볼륨이 많아지긴 해요.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하지는 않죠. 예를 들어 이렇게 기자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오늘 점심에 햄버거를 먹었는데, 아 거기 죽이더라고요” 이런 말 안 하잖아요. 근데 그 둘은 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그런 게 말이 많은 거죠.

이렇게까지 조회수가 터질 줄 알았나요.

전혀 몰랐고 ‘이걸 왜 좋아하실까’ 고민도 해봤어요. 제가 평소에 경호 형 얘기를 자르는 역할을 하거든요(웃음).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같은 직업과 비슷한 상황에 있으니 형이 하는 말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너무 잘 알아요. ‘관상’ 영화 찍을 때 정재(이정재) 형 에피소드 같은 것도 그렇고, 쉽게 말하면 다 아는 얘기인 거죠. 근데 시청자분들은 저희와 같은 직업이 아니니 촬영장 비하인드가 너무 재밌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저한테도 공부가 됐어요.

1시간보다 더 길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던데, 할 생각 있나요.

듣기만 해도 피곤한데요(웃음). 저는 그날도 경호 형이 무슨 얘기를 할지 이미 다 아는데, 3시간 내내 듣고 있느라 정말 혼났어요. 영상을 보면 중간에 제가 되게 지쳐 보일 거예요. 뭐 저녁에 술을 한 잔씩 마시면서 한다고 하면 또 모르죠. 저는 취권 스타일이라.

요즘 주지훈이 가장 욕망하는 것은 뭔가요.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조차 욕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욕망하지 않으면 큰 기쁨도 없지만 큰 슬픔도 없잖아요. 누구를 시기, 질투하지 않으면 동기부여는 잘 안 될지언정 딱히 나쁠 것 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요. 어쨌든 좀 평온해지려고 해요.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고요.

주로 어떤 걸 통해서 평온을 찾나요.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서 바이크 타는 걸 좋아해요.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가 속도를 낼 수 없거든요. 목적지 없이 길 따라가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그러다 보면 머리가 텅 비워지더라고요.

어쩌다 평온을 화두로 삼게 됐나요.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헷갈리는 부분이 생겨요. 어떤 역할을 맡아서 그 역에 맞는 여러 행위를 하다 보면 그게 진짜는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그 행위를 했다는 감촉이 남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느 범위까지 그걸 제가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요. 완전히 가짜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진짜라고 봐야 하는 건지요. 살인자 역이라고 하면 실제로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을 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집중했고, 소품용 가짜 칼이긴 하지만 부상이 생길 수 있는 칼로 상대를 찌른 느낌이 남는단 말이죠. 이런 불쾌한 찌꺼기를 비워내는, ‘극은 극일 뿐이다’ 하고 깊이 생각 안 하려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데뷔 20년,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생각”

차기작 ‘재혼 황후’ 얘기도 듣고 싶어요. 판타지 도전은 처음인데, 부담감은 없나요.

부담감 정도가 아니라 사실 저는 이 작품을 안 한다고 했어요(웃음). 자신 없었거든요. 처음 대본을 보는데, 좋냐 싫냐라는 문제 이전에 내용 자체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감정선을 따라가질 못하니 고사를 하게 됐죠. 그런데 ‘재혼 황후’ 제작진이 저랑 작업을 많이 한, 제가 굉장히 신뢰하는 분들이란 말이에요. 그분들이 저를 앉혀놓고 “이게 이런 매력이 있는 작품이고, 당신을 원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믿어달라” 하는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걸 보면 뭐가 있긴 있는 것 같다’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동시에 제가 이해 못 하는 영역을 알고 싶다는 마음도 선택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했죠. 저는 대중적으로 선택받아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아직 몰라서 그렇지, 알면 또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훈련하듯이 선택한 측면이 있어요.

올해가 배우 데뷔 20주년이에요. 소회가 어떤가요.

어떻게 다행히 여기까지 왔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뜻대로 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잘 만들었다고 흥행이 되거나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못 만들었다고 흥행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가 너무 많은 작품이 연속해서 사랑을 못 받으면 기본적인 선택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죠. 운 좋게 여기까지 온 게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작은 자극에 휘둘리지 않게 된 것도 장점이라 생각해요.

#주지훈 #클라이맥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KT스튜디오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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