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AN PAUL GAULTIER , THOM BROWNE
엄숙주의와 굿바이한 디자이너들
이러한 정서적 변화는 가장 과장된 언어를 사용하는 패션계에서 먼저 포착됐다. 2026 S/S 컬렉션은 ‘잘 만든 옷’보다 ‘어긋난 태도’에 집중했고, 멋있으려는 시도 자체를 비트는 유머와 자기 패러디가 전면에 등장했다. 우선 미우미우는 고급 소재 위에 앞치마와 작업복 디테일을 겹치며 노동의 흔적을 낭만적으로 재해석했다. 정제된 럭셔리 대신 헝클어진 ‘삶의 흔적’을 드러내며 의도적인 유머를 강조한 선택이다.톰브라운은 아메리칸 클래식을 우주적 농담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계인 콘셉트와 비틀린 테일러링은 엄숙함을 조롱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의 정교한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며 진지함과 황당함의 공존을 보여줬다. ‘파격의 아이콘’ 듀란 랜팅크를 영입한 장폴고티에는 쿠션처럼 부풀린 콘 브라와 누드 트롱프뢰유 프린트를 통해 무례할 정도로 솔직한 유머를 던졌다. 브랜드 헤리티지 자체가 유머인 모스키노 역시 감자 자루, 로프, LED 메시지 백 같은 B급 소품을 런웨이에 올리며 패션이 어디까지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보는 체험형 홍보를 택한 빌리의 캠페인.

‘듀오의 사망’을 선언하며 세계관을 밈으로 확장한 듀오링고의 마케팅.
농담이 곧 무기가 된 캠페인
다이슨은 만우절을 맞아 눈썹을 스타일링해준다는 가상의 신제품 ‘에어브로우(Airbrow)’를 SNS에 공개했다. ‘정밀한 공기 흐름으로 완벽한 아치를 완성한다’는 그럴듯한 제품 설명, 에어랩을 축소한 듯한 디자인, 실제 신제품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영상까지. 농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구성이다. 기술력을 설명하지 않아도,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는 지난해 2월 마스코트 초록 부엉이 ‘듀오(Duo)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며 일종의 ‘장례식 마케팅’을 펼쳤다. 사망 원인은 유저들이 학습을 미뤄 듀오가 기다리다 죽었다는 설정. 듀오링고는 SNS 프로필 사진을 사망 이미지로 바꾸고, 관을 운구하는 영상과 CEO의 애도 메시지까지 공개하며 이 황당한 세계관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유저들은 듀오를 살리기 위해 “듀오야 미안해”라며 학습 인증 사진을 올렸고, 이 ‘드립 릴레이’는 듀오링고를 하나의 콘텐츠이자 밈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과자로 만든 가상의 연인 ‘프링글레오’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유쾌하게 풀어낸 프링글스.

만우절 농담으로 탄생한 가상 제품으로 웃음을 유도한 다이슨.
이런 파격적인 캠페인의 이면에는 마케팅 문법의 근본적인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제된 미학과 완벽하게 기획된 캠페인은 이제 소비자, 특히 Z세대와 젊은 밀레니얼에게 지루함으로 읽히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 만들어낸 세련된 이미지보다 인터넷 문화와 호흡을 같이하는 날것의 태도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진지함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 냄새 나는 온기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은 첨단 AI가 아니라, 비극을 희극으로 비틀어버릴 줄 아는 가벼운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2026트렌드 #언시리어스 #브랜딩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듀오링고 프링글스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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