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와인과 춤 | 춤은 삶이요, 리듬 벨레노시 루디 2014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6. 01. 20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1 춤을 사랑했던 화가 마티스의 ‘춤 1’(1909·뉴욕현대미술관). 2 마티스의 ‘두 댄서’(1937·뉴욕현대미술관). 

1 춤을 사랑했던 화가 마티스의 ‘춤 1’(1909·뉴욕현대미술관). 2 마티스의 ‘두 댄서’(1937·뉴욕현대미술관). 

둥근 달 아래에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강강술래처럼,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그리며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강술래를 떠올리다 보면,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때로는 흐트러지는 원 안에서 인간사의 아이러니와 생동이 함께 느껴진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시에나에 있는 몬테풀치아노를 방문했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몬테풀치아노는 도시 이름이자 포도 품종이기도 해서 와인 소믈리에 시험에 종종 출제된다. 예를 들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처럼 뒤에 나오면 ‘몬테풀치아노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는 뜻이고,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초(Montepulciano d’Abruzzo)처럼 앞에 나오면 품종을 의미한다.

1984년에 설립된 벨레노시(Velenosi) 와이너리는 주로 몬테풀치아노와 산지오베제 품종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루디(LUDI) 2014는 몬테풀치아노(75%), 카베르네 소비뇽(8%), 메를로(7%) 품종을 섞은 블렌딩 와인이다. 루디의 라벨에는 4명의 사람이 원을 그리며 역동적으로 춤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보는 순간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춤’을 떠올리게 된다. 마티스는 “나는 아주 춤을 좋아한다. 춤은 정말로 특별하다. 춤은 삶이요, 리듬이다. 춤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희들을 관찰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모스크바 세르게이 슈킨의 집으로 갈, ‘춤’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그려야 했을 때 나는 물랭 드 라 갈레트로 갔다. 거기서 무희들의 춤을 관찰했던 경험들을 회상하며, 서로 손을 잡고 홀을 누비던 무희들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기도 했다.”

마티스의 작품 가운데 ‘춤 1’(1909·뉴욕현대미술관)과 ‘한련화와 춤’(1912·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녹색 바탕에 손을 마주 잡고 춤추는 여인들을 묘사했다. 기울어진 몸과 단단히 맞잡은 손, 힘차게 내딛는 발동작은 생동감을 더한다. 단순한 색채 속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풍성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그림 속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춤, 끝나지 않을 원이 들어 있다.

러시아 발레단 발레뤼스의 수장 댜길레프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마티스의 집에 찾아와 ‘나이팅게일의 노래(안데르센의 동화를 소재로 한 교향시)’를 피아노로 연주했던 일화가 있다. 마티스는 이 작품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맡았고, 그의 실험정신은 회화에서 무대로 확장된다. 그는 의상을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직접 책상 위에 천을 펼쳐놓은 채 의료용 가위를 들고 재단사처럼 천을 잘라 거침없이 무대의상을 만들었다. 마티스에게 가위는 연필이나 펜, 목탄과 마찬가지였다. ‘나이팅게일의 노래’ 발레 의상을 준비하며 마티스는 “가위로 그린 소묘”라고 표현한 컷아웃(cutout) 작업을 시도했고, 이후로도 ‘재즈’ ‘두 댄서’ ‘작은 댄서’ ‘반스 재단 벽화의 춤’ ‘푸른 누드’를 선보였다. 그는 붓을 던져버리고 의상을 만들 때처럼 가위를 들고 다시 작품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형태와 색이 리듬을 만들고 잘린 조각들이 원을 이루듯 연결된다. 

발레노시 루디는 이런 마티스의 열정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품종이 섞여 근사한 맛을 내는 과정은 붓과 펜, 연필과 목탄 그리고 가위까지 모두 동원해 세기적인 걸작을 탄생시킨 마티스의 작업과 닮았다. 새해를 맞으며 강강술래의 원과 마티스의 춤, 몬테풀치아노의 와인은 그렇게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벨레노시루디2014 #와인과춤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