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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육아휴직 480일 중 90일 아빠가 안 쓰면 자동 소멸”

조지윤 기자

2024. 06. 25

한국은 2002년 초저출산 국가로 진입한 이래로 합계출산율 1.3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77명으로 집계되며 OECD 회원국 최초로 출산율 0명대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유례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저출생 위기 속에서 출산율 반등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279조9000억 원. 정부가 최근 16년간 지출한 저출생 관련 예산 규모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매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데 이어, 지난해 0.72명으로 또 한 번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지난 5월 발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0명 중 9명(90.8%)이 “지금까지의 저출산 정책은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저출생 정책에 대한 수요와 실제 예산 비중을 비교해봐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실히 드러난다. 저고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실시한 ‘저출산 인식조사’에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육아 병행 제도 확대’가 전체 응답의 25.3%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 사업을 재구조화한 결과, 일·가정 양립 지원 예산은 2조 원으로 저출생 대응 총예산(47조 원)의 8.5%에 불과했다. 이에 기획재정부 자문위원회인 중장기전략위원회는 지난 4월 개최한 미래전략포럼에서 ‘현금성 저출생 정책의 구조조정’을 제언했다. 당시 박재완 중장기전략위원장은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아이 낳기를 어렵게 하는 경제·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시아 칼슨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교수도 “(한국은) 결혼·출산을 장려하는 홍보 캠페인이나 출산 장려금 등 인센티브는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며 “출산 이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2030년까지 출산율을 1명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의 골자는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정책 지원이다. 이 가운데 최전방에 배치한 일과 가정의 양립은 국내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된 지금 저출생의 핵심 해법으로 꼽히는 정책이다. 독일, 프랑스 등 일찍이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나라들은 일·가정 양립 문화가 자리매김했다. 보육·교육 기관의 운영 확대와 육아휴직 제도 및 자율적인 근무 환경을 정책적으로 안정화한 덕분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기관

아침, 저녁으로 다양한 방과 후 수업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초등학생들.

아침, 저녁으로 다양한 방과 후 수업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초등학생들.

KB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9 한국 워킹맘 보고서’에 따르면, 워킹맘이 퇴사나 이직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때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때’(50.5%)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돌봄 공백이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현재 국내 대다수 초등학교는 정규수업 이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과후’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돌봄 인력이 부족해 추첨 등으로 대상자를 선발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초등학생의 약 11.5%만 돌봄교실을 이용 중이다. 단, 희망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 모두에게 오후 8시까지 돌봄·교육을 제공하는 늘봄학교를 오는 2026년까지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도 ‘전일제 학교’ 확대를 통해 초등학생 돌봄 절벽을 개선했다. 전일제 학교는 희망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공간 안에서 주 5일, 하루 8시간에 걸친 전일제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2018년 독일 정부는 4년간 20억 유로 규모의 전일제 학교 투자를 시행했다. 그 결과, 전일제 학교 비중이 2002년 16.3%였지만 2020년 71.5%로 증가했다. 2021년 9월부터 시행한 ‘초등연령아동 전일제 촉진을 위한 법률’(초등전일제촉진법)은 2026년 입학 초등학생부터 전일제 학교 자리에 대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어 2029년에는 모든 초등학생에게 전일제 학교 자리 보장을 국가 의무화할 계획이다. 독일은 1995년 합계출산율 1.25명으로 최저점을 기록한 이후 점진적인 증가 추세를 이어가 2015년 1.5명, 2022년 1.53명으로 7년간 1.5명대를 유지했다.

‘라테파파’의 등장, 자유로운 육아휴직

2021년 기준 자녀를 출산한 국내 여성 근로자의 65.2%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1987년 제정된 육아휴직 제도가 이제는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체 규모별로 편차가 크다. 300명 이상 대기업은 제도 대상 여성 근로자의 76.6%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50인 미만 기업의 여성 근로자는 육아휴직 사용률이 50%에 미치지 못했다. 남성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같은 해 남성의 육아휴직 활용률은 대기업의 경우 6%, 50인 미만 기업체의 경우 3%에 그쳤다. 아직 남성의 육아휴직은 사회적으로 당연시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여성의 육아휴직 활성화가 출산율 증가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없다. 2007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육아휴직 제도를 개혁하면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유급 휴직이 길면 경력 단절 우려로 인한 출산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신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아빠가 2개월 육아휴직을 할 경우 2개월 휴가를 더 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당시 독일의 남성 육아휴직 활용률은 3.5% 수준이었지만 제도 시행 7년 만에 34%까지 늘었다.

출산율이 높은 국가들이 대체로 남성의 육아휴직을 독려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스웨덴은 1974년 유럽 최초로 남성과 여성이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여성이 출산 때문에 일을 못 한다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함이다. 스웨덴은 남성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육아휴직 소멸시효를 규정했다. 부모는 자녀 1명당 12세가 될 때까지 최대 48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데, 남성이 할당(90일)된 만큼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하게 한 것. 이 외에 남녀 불문하고 자녀 돌봄 및 병간호 등에 따른 결근, 조퇴, 지각 등을 사회적·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바바’(Vabba: varda(돌보다)와 barn(아이)의 합성어) 문화도 사회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프랑스도 EU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남성의 육아휴직을 적극 지원 중이다. 월급에 따른 육아휴직수당을 최대한 받기 위해서는 부모 모두 6개월씩 공동으로 육아해야 한다. 첫째 아이는 1년 중 6개월, 둘째부터는 3년 중 1년을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하도록 법률로 제정했다.

유연한 근무 환경 도입

미국은 최근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미국의 신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2020년(361만 명)보다 약 1% 증가했고, 합계출산율도 1.66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이를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육아에 할당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출산율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30대 후반~40대 여성의 출산율이 큰 폭 상승했는데, 재택근무 활성화로 오랜 시간 밖에서 일하던 30대 이상 여성들이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 여유를 찾으면서 출산율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택근무를 포함해 단축근무, 유연근무제 등의 근무 환경이 출산율 증대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유럽 주요국의 출산율 안정화 정책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고출산국은 공통적으로 시간제 근로 활성화 등으로 근로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OECD 주요국 통계에서 보이듯 유연근무제 사용률이 높은 국가의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은 모두 높다”고 분석했다.

저출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도 최근 재택근무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를 키우는 경우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의무화한다. 재택근무 외에 유연근무제나 단시간근무제 등 2가지 이상의 방안을 마련해 직원이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야근 등 ‘잔업 면제권’도 지금은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장인에게만 적용되지만, 취학 전 자녀가 있는 직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저출생 #일가정양립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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