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는 이제 글로벌 대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음악,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이들 콘텐츠에 등장하는 한국 음식까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F&B 중 F(Food)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치, 김밥, 비빔밥, 갈비,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이 글로벌 무대에서 사랑받고 있으며,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반면 B(Beverage)는 어떨까? 한국을 대표하는 음료로 식혜와 수정과 같은 전통 음료가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한 아이콘은 부족하다. 특히 술은 음식처럼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주기 어렵다. 잔이나 병으로 차별화하지 않고서는 대부분 비슷한 액체로 보이는 만큼 해외에 알리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소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로 자리 잡으며, 글로벌 핫 플레이스에서 판매되는 등 새로운 K-컬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뉴욕 등지의 인기 있는 현지 바(bar)에서도 소주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몇 달 전 넷플릭스를 통해 송출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부터 한국 소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관련 인터뷰 요청까지 받았다. 흔하디흔한 소주는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한국에 거주하거나 장기간 여행 중인 디지털 노마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은 소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한국에서 소주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소매점에서 2000원 내외, 음식점에서는 5000~6000원 정도로 도수 10도 이상의 술치고는 부담 없는 가격이다. 자국에서도 소매점에서 10달러, 바에서는 15~20달러에 판매되기 때문에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가격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칼럼을 쓰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 미주, 유럽, 동남아시아권 거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왜 소주를 좋아하나요?”라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다수가 “맛있어서”라고 답했다. 이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소주가 주로 안주의 맛을 돋우는 술로 여겨져, 그 자체로는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소주를 새로운 ‘맛’을 지닌 술로 경험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수도 낮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로 평가했다. 국적을 막론하고 음주를 즐기는 이들에게 소주는 새로운 장르의 술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같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주를 그렇게나 많이 마시는 우리는 왜 소주를 좋은 술로 평가하지 않을까. 싸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걸까? 감미료가 들어가서 몸에 해롭다는 인식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 공업용 알코올을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 ‘화학주’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혹은 소주를 마시고 크게 실수한 경험이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받은 기억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과연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정말 나쁜 술일까?
많은 한국인은 소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주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래 소주의 진짜 의미는 불에 태운 술이라는 뜻의 ‘증류식 소주’를 말한다. ‘스피릿(spirit)’이라 불리는 이 술은 곡물을 쪄서 발효시켜 알코올을 추출하기 때문에 곡물 본연의 향과 맛, 즉 ‘영혼’이 담겨 있다. 고급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생산 비용이 높고 대량 생산이 어려워 희소성이 있으며 가격대도 높다.
단,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색 병 소주는 희석식으로, 값싼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 주조 과정도 차이가 있다. 주정을 200번 이상 증류해 순수한 알코올을 얻고,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섞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순물뿐만 아니라 곡물의 향과 맛도 모두 사라진다. 결국 희석식 소주는 ‘영혼’이 제거된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증류식 소주의 알코올은 좋고,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은 나쁜 것일까? 이 역시 단정할 수 없다. 술의 본질은 알코올 그 자체이며, 증류식이든 희석식이든 과도한 음주는 모두 해롭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도록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온 희석식 소주는 두말할 것 없는 한국의 대표적인 술이자 우리 문화의 일부로, 단순히 저렴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삼겹살이나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을 경험하듯 소주를 마시는 것도 한국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소주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손으로 술을 받는 예의라든지 고개를 돌려 마시는 방식 같은 독특한 음주 동작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마치 와인을 마실 때 스월링(swirling)을 하면 향과 맛이 더 좋아지는 것처럼 소주를 마시는 데도 나름의 방식과 문화가 있다고 느낀다.
특히 한국에서 소주와 함께하는 술자리 흐름은 10가지 단계로 정리된다. 이 과정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적 가치와 사회적 유대감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한국 술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수작(酬酌)’의 흐름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것은 ‘두 손으로 받기’와 ‘고개를 돌려 마시기’다. 이는 한국인의 배려와 존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은 행동이다. 예의를 지키며 술을 마시다가도 흥을 돋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놀이 문화를 펼치는 것도 신기해한다. 소주병을 돌려 따는 퍼포먼스나 술자리 게임은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며, 외국인들은 저마다 따라 해보려 한다.
나아가 외국인들이 특히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소맥(소주와 맥주의 조합)’이다. 소맥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체험이 된다. 예를 들어 30%의 소주와 70%의 맥주를 잔에 넣고 섞은 다음 숟가락을 꽂아, 잔 바닥을 톡 쳐서 회오리를 만드는 모습은 환호를 자아낸다. 모두가 돌아가며 마치 바텐더가 되어 소맥을 만드는 장면은 외국인들에게는 한국만의 독특한 술자리 문화로 느껴진다. 전 세계적으로 술을 마시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제조법을 선보이며 모두가 함께 소맥 제조에 열광하는 술 문화는 찾기 힘들다.
소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문화, 예절 그리고 놀이를 담은 작은 세계다. 한국 대학가나 모꼬지 촌에서 볼 수 있는 술 게임 ‘아파트’가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소주는 더 이상 ‘싸고 흔한 술’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K-컬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우리의 음주 문화를 글로벌 무대에 당당히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파트, 아파트!” 이 목소리가 서울뿐 아니라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방콕의 밤을 물들이고 있다면 그 중심에 우리의 술 문화가 있음을 기억하자. 소주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도 새로운 사람들의 손에, 입에 그리고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퍼니준(김완준)은 소주를 오브제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주 아티스트’다. 2021년 7월 소주와 관련한 한국의 음주 문화를 소개하는 책 ‘알랑말랑 소주 탐구생활’을 펴냈다. 국내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등 해외에서 소주를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소주 #한류열풍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퍼니준
사진출처 유튜브
반면 B(Beverage)는 어떨까? 한국을 대표하는 음료로 식혜와 수정과 같은 전통 음료가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한 아이콘은 부족하다. 특히 술은 음식처럼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주기 어렵다. 잔이나 병으로 차별화하지 않고서는 대부분 비슷한 액체로 보이는 만큼 해외에 알리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소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로 자리 잡으며, 글로벌 핫 플레이스에서 판매되는 등 새로운 K-컬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뉴욕 등지의 인기 있는 현지 바(bar)에서도 소주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몇 달 전 넷플릭스를 통해 송출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부터 한국 소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관련 인터뷰 요청까지 받았다. 흔하디흔한 소주는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글로벌 술 문화의 신흥 강자, 소주
영국 주류 전문 매거진 ‘드링크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에 따르면 한국의 녹색 병 소주는 이미 수년간 세계 판매량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이는 한국인의 높은 음주량이 크게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최근 들어 외국에서도 소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분이다.
한국에 거주하거나 장기간 여행 중인 디지털 노마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은 소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한국에서 소주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소매점에서 2000원 내외, 음식점에서는 5000~6000원 정도로 도수 10도 이상의 술치고는 부담 없는 가격이다. 자국에서도 소매점에서 10달러, 바에서는 15~20달러에 판매되기 때문에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가격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칼럼을 쓰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 미주, 유럽, 동남아시아권 거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왜 소주를 좋아하나요?”라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다수가 “맛있어서”라고 답했다. 이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소주가 주로 안주의 맛을 돋우는 술로 여겨져, 그 자체로는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소주를 새로운 ‘맛’을 지닌 술로 경험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수도 낮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로 평가했다. 국적을 막론하고 음주를 즐기는 이들에게 소주는 새로운 장르의 술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같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주를 그렇게나 많이 마시는 우리는 왜 소주를 좋은 술로 평가하지 않을까. 싸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걸까? 감미료가 들어가서 몸에 해롭다는 인식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 공업용 알코올을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 ‘화학주’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혹은 소주를 마시고 크게 실수한 경험이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받은 기억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과연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정말 나쁜 술일까?
많은 한국인은 소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주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래 소주의 진짜 의미는 불에 태운 술이라는 뜻의 ‘증류식 소주’를 말한다. ‘스피릿(spirit)’이라 불리는 이 술은 곡물을 쪄서 발효시켜 알코올을 추출하기 때문에 곡물 본연의 향과 맛, 즉 ‘영혼’이 담겨 있다. 고급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생산 비용이 높고 대량 생산이 어려워 희소성이 있으며 가격대도 높다.
단,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색 병 소주는 희석식으로, 값싼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 주조 과정도 차이가 있다. 주정을 200번 이상 증류해 순수한 알코올을 얻고,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섞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순물뿐만 아니라 곡물의 향과 맛도 모두 사라진다. 결국 희석식 소주는 ‘영혼’이 제거된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증류식 소주의 알코올은 좋고,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은 나쁜 것일까? 이 역시 단정할 수 없다. 술의 본질은 알코올 그 자체이며, 증류식이든 희석식이든 과도한 음주는 모두 해롭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도록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온 희석식 소주는 두말할 것 없는 한국의 대표적인 술이자 우리 문화의 일부로, 단순히 저렴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소주와 한류의 만남
블랙핑크 로제는 유튜브를 통해 ‘소맥’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 소주와 함께하는 술자리 흐름은 10가지 단계로 정리된다. 이 과정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적 가치와 사회적 유대감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한국 술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수작(酬酌)’의 흐름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것은 ‘두 손으로 받기’와 ‘고개를 돌려 마시기’다. 이는 한국인의 배려와 존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은 행동이다. 예의를 지키며 술을 마시다가도 흥을 돋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놀이 문화를 펼치는 것도 신기해한다. 소주병을 돌려 따는 퍼포먼스나 술자리 게임은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며, 외국인들은 저마다 따라 해보려 한다.
나아가 외국인들이 특히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소맥(소주와 맥주의 조합)’이다. 소맥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체험이 된다. 예를 들어 30%의 소주와 70%의 맥주를 잔에 넣고 섞은 다음 숟가락을 꽂아, 잔 바닥을 톡 쳐서 회오리를 만드는 모습은 환호를 자아낸다. 모두가 돌아가며 마치 바텐더가 되어 소맥을 만드는 장면은 외국인들에게는 한국만의 독특한 술자리 문화로 느껴진다. 전 세계적으로 술을 마시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제조법을 선보이며 모두가 함께 소맥 제조에 열광하는 술 문화는 찾기 힘들다.
소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문화, 예절 그리고 놀이를 담은 작은 세계다. 한국 대학가나 모꼬지 촌에서 볼 수 있는 술 게임 ‘아파트’가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소주는 더 이상 ‘싸고 흔한 술’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K-컬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우리의 음주 문화를 글로벌 무대에 당당히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파트, 아파트!” 이 목소리가 서울뿐 아니라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방콕의 밤을 물들이고 있다면 그 중심에 우리의 술 문화가 있음을 기억하자. 소주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도 새로운 사람들의 손에, 입에 그리고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퍼니준(김완준)은 소주를 오브제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주 아티스트’다. 2021년 7월 소주와 관련한 한국의 음주 문화를 소개하는 책 ‘알랑말랑 소주 탐구생활’을 펴냈다. 국내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등 해외에서 소주를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소주 #한류열풍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퍼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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