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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나홀로 집에! 내향형 경제가 뜬다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5. 03. 06

일명 ’I의 소비법’으로 불리는 ‘내향형 경제(Introvert Economy)’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번지고 있다. 

MBTI는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의 밈을 넘어 일반적인 지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MBT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마케팅업계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많은 브랜드가 MBTI를 통해 소비자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전개한다”며 “소비자와의 감성적인 연결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쌓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까지 브랜드가 전개하는 MBTI 마케팅의 메인 타깃은 ‘외향형’을 띤 E 소비자였다. 사교적인 외향형은 자기 생각이나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E 성향의 소비자가 긍정적인 소비자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주변에 널리 알리는, 전파 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등장도 마케팅 방식의 변화를 부채질했다. 사용자 한 명 한 명이 채널을 보유하면서 더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진 것. 이렇게 탄생한 그룹이 바로 ‘인플루언서’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하며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유통 방식은 어느새 전통적인 판매 채널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의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202억4000만 달러(약 29조2185억 원)로 추산될 정도다.

소리 없이 강한, 내향형이 온다

내향형 소비자들이 즐기는 틱톡 북톡과 인스타그램 북클럽.

내향형 소비자들이 즐기는 틱톡 북톡과 인스타그램 북클럽.

그런데 이처럼 외향적인 소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장에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타인에게 보이는 소비나 이벤트 대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 이를 일컫는 신조어가 바로 ‘내향형 경제(Introvert Economy)’다. 처음 주목한 이는 맨해튼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경제학자 앨리슨 슈레거다. 그녀는 내향형 경제에 대해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주도하는 경제 환경”이라고 설명한다. 내향형은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단 자신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떠들썩한 동호회에 참여해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기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등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향형 경제를 주도하는 계층은 Z세대, 즉 젠지(Gen Z)다. 1997~2012년에 태어난 이들의 공통점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는 것. 웹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는 데 익숙한 만큼,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취미 생활이나 소셜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이보다 나이가 많은 밀레니얼세대 중에서도 내향형 소비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팬데믹 시기에 온라인 쇼핑이나 구독 경제, 배달 음식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케이스다.

외식 대신 배달, 술 대신 무알코올 음료

내향형 소비를 즐기는 이들은 외식보다는 배달을 선호한다.

내향형 소비를 즐기는 이들은 외식보다는 배달을 선호한다.

내향형 경제 인구의 등장으로 가장 먼저 변화를 겪고 있는 분야는 레스토랑 사업이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뉴욕은 ‘해가 진 후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나이트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늦은 밤 대신 이른 저녁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온라인 레스토랑 예약 서비스의 통계자료가 이를 입증한다. 예약 사이트 ‘Resy(레시)’에서는 오후 5시 30분 예약이 증가하는 반면, 오후 8시 이후 예약은 감소하는 추세다. 역시 예약 사이트인 ‘Yelp(옐프)’의 데이터에서도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의 식당 이용률이 5%에서 10%로 2배가량 늘었다. 이런 수요에 발맞춰 레스토랑 업계에서는 낮 시간대 댄스파티를 열거나, 오후 8시에 끝나는 ‘마티네 파티’를 여는 등의 대응을 펼치고 있다. 주류 시장 역시 영향권에 있다. 회식이나 음주 중심의 사교 활동이 줄어드는 탓이다.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18~34세 성인의 정기적 음주 비율이 20년 전에 비해 10%p 감소했다. 대신 무알코올 음료의 수요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분위기다. 소주와 맥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를 줄이고 회식을 피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형성된 까닭이다. ‘술 취하지 않은(sober)’이란 형용사와 ‘궁금한(curious)’이란 단어를 합친 이 신조어는 ‘술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을 뜻한다. 술 취한 저녁 대신 건강한 아침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전통적으로 ‘술판’으로 여겨졌던 신입생 환영회나 대학교 MT에서 무알코올 방이 등장할 정도로 Z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직장에서는 술을 동반하는 저녁 회식 대신 점심 회식을 실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추세다. 실제로 주류 판매량도 감소세다. 국세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384만kL(킬로리터)를 넘겼던 주류 출고량은 2023년 361만9000kL로 6%가량 줄었다. 특히 소주의 출고량이 91만5000kL에서 84만4000kL로 약 8% 감소했다. 자연히 20세 이상 국민의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텍스트 힙과 OTT로 즐기는 취미 생활

이렇게 외부 활동을 줄이는 대신 젠지가 꽂힌 집콕 취미는 의외로 ‘독서’다. 가장 고전적이지만, 멀티미디어의 범람에 밀려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오해를 받았던 책이 재발견되고 있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스턴트적이라고 여겨졌던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이 독서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틱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시태그 중 하나인 #북톡(#booktok)이 키워드다. #booktok 해시태그를 단 틱톡 영상의 조회수는 1000억을 훌쩍 넘길 만큼 세계적으로 반응이 뜨겁다. #book, #reading 등 관련 해시태그를 더하면 조회수 3000억을 상회할 정도다.

한국 젠지는 ‘텍스트 힙’에도 관심이 많다. 텍스트 힙은 글을 읽는 행위를 SNS나 블로그에 공유하는 현상이다. 독서를 통해 도파민을 충족한다는 의미의 ‘독파민’이라는 신조어는 젠지 사이에서 독서가 더 이상 지루하거나 고루한 취미가 아닌, 도파민 넘치는 재밋거리로 복귀했다는 증거다. 덩달아서 ‘북 클럽’도 인기다. #북클럽 해시태그가 포함된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18만 개에 가깝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북 클럽을 언급한 게시물은 8300개가 넘는다. 독서에서 파생된 취미도 함께 인기 급상승 중이다. 읽은 구절을 베껴 쓰는 ‘필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손 글씨 쓰기나 펜글씨 쓰기 등을 통한 필체 교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식이다.

팬데믹 종료 이후 인기가 주춤했던 OTT의 매출도 다시금 증가세다. 시간과 장소 관계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동안만 감상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 그 이유다. 넷플릭스는 2024년 4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가입자 수가 사상 최초 3억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은 102억4700만 달러(약 14조7249억 원)에 달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 고착화하면서 젊은 층의 주머니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상황도 내향형 경제와 관련이 높다. 화려한 파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대신 실속 있는 식사와 취미를 선택하는 알뜰족까지 포함하면, 내향형 경제의 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 내향형경제 # i의소비법 #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틱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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