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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청담동 며느리룩 ‘악어가죽 백’ OUT!

조지윤 기자

2025. 01. 09

악어가죽은 명품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명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청담동 며느리 룩의 정석으로 악어가죽 백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패션업계도 악어가죽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중이다. 왜일까? 

배우 클라라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르메스 히말라야 악어가죽 ’버킨 백’을 공개했다.

배우 클라라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르메스 히말라야 악어가죽 ’버킨 백’을 공개했다.

37만9261달러(약 5억4477만 원). 2017년 5월 31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에르메스의 핸드백 ‘버킨 백’의 가격이다. 핸드백 낙찰가로는 당시 세계 최고가였다. 해당 가방은 가죽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히말라야 악어가죽으로 만들었다. 버킨 백은 히말라야 설원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흰색과 회색을 띠는데, 해당 소재는 악어 1만 마리 중 100마리꼴로 얻을 수 있는 만큼 그 희소성 때문에 값어치도 높다.

악어가죽을 비롯해 파이톤(뱀 가죽), 타조 가죽 등 특수 피혁(exotic leather)은 오래전부터 하이엔드의 하이엔드로 불려왔다. ‘expectional piece’ ‘precious skin’ ‘special leather’ 등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특수 피혁을 가리킨다. ‘가죽 사전(leather dictionary)’에 따르면 특수 피혁은 육류 및 유제품 소비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이 아닌 동물에서 나온 가죽을 일컫는다.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가죽이 아니라 오로지 가죽만을 위해 길러지거나 사냥된 동물의 것을 뜻한다. 에르메스는 2020년 11월 호주 북부 다윈 지역에 최대 5만 마리의 악어를 사육할 수 있는 대규모 악어 농장을 조성했다.

에르메스뿐만 아니라 루이비통, 셀린느 등 초고가 하이엔드 브랜드는 특수 피혁 제품을 제품군의 최상위급으로 선보인다. 물왕도마뱀 가죽으로 만든 셀린느의 ‘틴 트리옹프 백’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118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루이비통은 ‘진귀한 크로커다일 가죽’이라는 설명과 함께 카퓌신 미니 백의 가격을 3110만 원으로 산정했다. 특수 피혁은 뻔한(!) 소가죽과는 달리 독특한 촉감과 제각기 다른 패턴, 형태로 럭셔리 소비자들을 매혹했다. 개중 대다수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브랜드의 충성고객임을 입증해야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수년을 기다려야만 구매할 수 있다. 실제 하이엔드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특수 피혁 가방은 여타 제품들과 달리 클라이언트 서비스 문의를 통해서만 구매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 퇴출되는 특수 피혁

동물보호 단체 페타 아시아지부가 공개한 악어 도살 과정.

동물보호 단체 페타 아시아지부가 공개한 악어 도살 과정.

패션업계에서 ‘응당’ 사용되는 특수 피혁을 두고 동물보호단체는 예전부터 거센 목소리를 내왔다. 고급으로 취급받는 상처 없고 매끈한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가혹한 환경에서 사육하는 것은 기본, 도축 과정까지 잔인하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인 동물보호 단체 페타(PETA) 아시아지부는 2021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루이비통과 구찌 등에 가죽을 공급하는 인도네시아 가축 도살장의 실황을 공개한 바 있다. 영상 속에서 비단뱀과 도마뱀은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피부가 벗겨졌다. 피부를 더 쉽게 벗기기 위해 머리를 제거하고 공기압축기로 몸통을 부풀리는 등 잔혹한 도축이 이어졌다. 당시 페타 아시아지부 측은 “어떠한 가방, 벨트, 지갑도 그렇게 많은 고통을 수반할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한국동물보호연합이 2024년 8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악어 도축 과정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살아 있는 악어의 코를 잡아 누른 후, 머리 뒤통수 부분을 자르고 칼을 집어넣어 척추를 꼬리 밑부분까지 쭉 밀어 내린 다음, 생가죽을 벗긴다”며 “최상의 가죽을 얻기 위해 피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하며, 악어는 앞뒤로 몸의 방향을 바꾸는 것조차 힘든 좁은 철창 속 감금 틀에 갇힌 채 사육된다”고 밝혔다.

패션업계 내부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샤넬은 2018년 명품 업계 최초로 뱀·악어·도마뱀 등 파충류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브루노 파블로프스키 샤넬 패션부문 사장은 당시 “(우리의) 윤리에 부합하는 동물 가죽의 수급이 어려워 추후 제품에 더 이상 희귀 동물의 가죽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질샌더, 멀버리, 비비안웨스트우드에 이어 2024년 5월 마크제이콥스도 이 행렬에 합류했다.

나아가 코펜하겐패션위크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2022년 모피를 금지한 데 이어 2024년 3월부터 특수 피혁 및 깃털 사용을 제재했다. 최종적으로 2025년부터 가죽이나 모피가 포함된 컬렉션을 코펜하겐패션위크 런웨이에서 볼 수 없을 예정이다. 런던패션위크도 2018년 세계 4대 패션위크 가운데 최초로 모피 사용을 제한했으며 2025년부터 특수 피혁 사용도 금지한다. 장기적으로는 야생동물 깃털 사용 금지도 검토할 계획이다.

악어 대신 버섯, 선인장, 대마

발렌시아가의 ‘루나홈 맥시 베스로만 코트’.

발렌시아가의 ‘루나홈 맥시 베스로만 코트’.

패션업계 내에서 특수 피혁 수급 과정에서의 비윤리성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적으로 쌓이고 있다. 미국 뷰티 인플루언서 카일리 제너는 2023년 11월 새로운 패션 브랜드 ‘카이(Khy)’의 론칭 파티 드레스 코드를 비건 레더로 정해 화제를 모았다. 카이의 제품들 역시 인조가죽(faux leather) 소재가 주를 이룬다. 명품 브랜드를 비롯한 패션 브랜드들도 하나둘 대체 가죽, 이른바 ‘비건 가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생로랑 등 최고급 브랜드를 거느린 프랑스 명품 패션 그룹 케링은 지난 2022년 대체 가죽 제조 스타트업 ‘비트로랩스’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참여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동물 가죽 조직을 복제해 세포배양 가죽 시험 생산에 들어갔으며, 샘플링된 동물의 세포는 단 몇 주 만에 동물 가죽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케링그룹 산하 명품 브랜드들도 자체적으로 신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구찌는 2021년 럭셔리 신소재 ‘데메트라’를 선보였다. 이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생 가능한 바이오 자원에서 유래한 소재다. 초기에는 이를 스니커즈 등에만 활용했지만 2023년 하우스의 상징인 ‘홀스빗 1955’ 가방에도 적용했다. 발렌시아가는 바이오 소재 전문 스타트업 ‘고젠’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신소재 ‘루나폼’을 개발했다. 전체 생산 과정에 동물성이 포함되지 않은 비건 소재다. 발렌시아가는 2024년 여름 컬렉션으로 루나폼 레더를 활용한 ‘루나폼 맥시 배스로브 코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보통의 동물 가죽과 유사한 질감을 구사하는 가운데 두께 등을 맞춤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내구성이 보다 뛰어난 편이다. 샤넬은 2019년부터 액세서리 부문에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가죽 대체재 ‘피나텍스’를 활용하고 있다. 에르메스 역시 2021년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 마이코웍스와 협업해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한 소재 ‘실바니아’를 선보였다.

데메트라 소재로 만든 구찌 ‘홀스빗 1955’ 가방.

데메트라 소재로 만든 구찌 ‘홀스빗 1955’ 가방.

동물 가죽은 원시시대부터 사용돼온 인류의 핵심 의류 소재다. 지금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하이엔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특유의 가죽 가공 실력과 수급 능력이 있었다. 소비층의 여전한 수요와 더불어 특수 피혁을 비롯한 동물 가죽이 수백수천 년간 쌓아온 럭셔리 이미지를 대체할 수 있는 ‘윤리적인’ 소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특유의 패턴이나 광택감, 질감 등을 따라잡을 수 있는 비동물성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 가죽, 특히 특수 피혁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 마련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럭셔리 자동차업계 역시 대체 가죽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벤틀리는 콘셉트 카 EXP 100의 내장재로 와인 생산 과정에서 폐기되는 포도 껍질을 이용한 비건 가죽을 선택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9월 독일 스타트업 리볼텍과 협업해 산업용 대마를 이용한 비건 가죽을 자체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체 가죽 시장 또한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영국 시장조사 기업 아이디테크엑스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비건 바이오 기반 가죽 시장의 2024∼2034년 연평균 성장률을 37.4%로 내다봤다. ‘레자’로 불리며 천대받던 인조가죽이 럭셔리 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수피혁 #비건레더 #여성동아

사진출처 에르메스 셀린 구찌 클라라 인스타그램 PETA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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