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아이돌 출신 ‘대표님’이 만든 요즘 아이돌 그룹, 성공 확률은?

조지윤 기자

2024. 04. 12

2030 세대에게는 여전히 ‘아이돌’로 익숙한 가수들이 ‘사장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이돌 출신이 키워내는 아이돌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지코(오른쪽 첫 번째)와 보이넥스트도어 멤버들.

지코(오른쪽 첫 번째)와 보이넥스트도어 멤버들.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미한 요즘, 연예인도 예외는 없다. 특히 댄스 음악 중심의 아이돌 그룹의 평균 수명은 7년 내외다. 대다수 그룹의 ‘아이돌’로서의 전성기는 20대에 막을 내린다. 10대 때부터 노래와 춤에 매진해온 이들이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솔로 가수나 예능인, 작곡·작사가 등 연예 업종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다. 바로 ‘아이돌 제작자’. 본인이 성공한 경험이 있는 영역이고 가장 오랫동안 몸담아온 분야에서 노하우를 나누고 같은 꿈을 꾸는 후배를 키울 수 있다니, 누구든 욕심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인기 있는 K-팝 그룹의 경우 국내외에서 콘서트 투어를 진행하면 벌어들이는 수익은 수백억 단위. 마음이 혹하는 요소가 다분하다. 이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나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CCO(창의성총괄책임자)처럼 아티스트 출신들이 활약하며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성공한’ 아이돌 출신 제작자는 없다?

이해인(가운데)과 키스오브라이프 멤버들.

이해인(가운데)과 키스오브라이프 멤버들.

의외로 K-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통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후 제작자로 커리어 전환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작자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H.O.T. 출신 가수 토니안은 2008년 직접 제작한 보이 그룹 ‘스매쉬’를 데뷔시켰다. 젝스키스 출신 김재덕도 스매쉬의 두 번째 미니앨범부터 공동 제작자로 합류했다. 토니안은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날 우리를 상품으로 보던 것이 싫어,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이돌 그룹 제작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1세대 보이 그룹의 양대 산맥이 힘을 합쳐 뛰어들었지만 스매쉬는 데뷔 7년 만에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다. 신화 출신 앤디 역시 보이 그룹 ‘틴탑’과 ‘백퍼센트’의 제작과 프로듀싱을 맡은 바 있다. 아쉽게도 두 그룹 모두 제작자의 소속 그룹인 신화의 인기를 뛰어넘었다고 말하기엔 무리였다.

아이돌로서 온몸을 부딪쳐가며 깨우친 ‘아이돌 성공 공식’이 틀리지는 않았을 터다. 무대 매너라거나 팬들을 대하는 태도, 방송에서의 캐릭터 등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돌의 요소들에 대해선 통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마음같이 잘 안 풀리는 까닭 중 하나는 그때의 팬덤과 지금의 팬덤 사이 간극이다.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K-팝 세계에서 트렌드는 무자비한 속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기본은 통하기 마련이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언제나’ 통하는 공식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아이돌로서 필요한 역량과 제작자로서 필요한 역량도 다르다. 아이돌 ‘그룹’을 띄우기 위해서는 멤버 개개인의 외모나 춤, 노래 실력만으로 주목받을 수는 없다. 기획, 안무, 의상, 홍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만 원석들이 빛날 수 있다. 아무리 본인이 아이돌로서 크게 성공했더라도 제작자로서의 성공마저 쉽게 점칠 수 없는 이유다.

2세대 감성으로 사로잡은 5세대

앤디(가운데)와 틴탑 멤버들.

앤디(가운데)와 틴탑 멤버들.

그럼에도 아이돌 제작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때의 성공 방정식이 지금도 통용될 순 없다고 해도 현역 아이돌로서 수년간 쌓아온 감각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플레이어가 아닌 메이커로서 발돋움하려는 시도가 줄곧 이어지는 까닭이다.



최근 들어서는 성공의 낌새가 보이는 ‘아이돌 사장님’이 만든 아이돌들도 속속 태어나고 있다. 블락비 출신의 지코가 만든 ‘보이넥스트도어(이하 보넥도)’가 그 시작을 알렸다. 힙합 음악 프로듀서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지코는 2018년 연예 기획사 ‘KOZ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약 4년 6개월 동안 멤버 선정부터 앨범 프로듀싱까지 공을 들인 끝에 지난해 5월 보넥도를 자신 있게 선보였다. 보넥도 팬들로부터 ‘짘버지’라고 불릴 만큼 스케줄을 모두 따라다니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도 목격된다.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보넥도의 데뷔 앨범인 미니 1집 ‘WHY..’는 데뷔 112일 만에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162위에 올랐다. 아직 성공을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긍정적인 성과임은 분명하다.

주목할 점은 보넥도는 지코가 활동했던 블락비의 공식을 답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블락비는 악동 콘셉트와 더불어 ‘난리나’ ‘Very Good’ ‘닐리리맘보’ 등 강렬하고 후킹한 음악으로 사랑받았다. 멤버 7인 중 3명이 래퍼인 만큼 대표적인 힙합 아이돌로도 자리매김했다. 지코가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힙합 아이돌일 것이라고 짐작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코는 오히려 보넥도 데뷔 전에 “제작하는 아이돌이 힙합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을뿐더러 데뷔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아직 래퍼를 뽑지 않았다”고 밝혔다.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지코가 만드는 그룹이 아예 래퍼가 없는 그룹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횡행하기도 했다. 베일을 벗은 보넥도가 ‘리틀 블락비’일 것이라는 추측은 역시나 빗나갔다. 스타일링은 물론이고 음악 역시 최신 아이돌 사이 트렌드인 일상적인 소재의 이지 리스닝 트랙이 주를 이룬다. 자신이 아이돌로서 성공했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K-팝 팬들이 원하는 것을 섬세히 살핀 결과다.

박재범, 김재중, 백현 (위부터).

박재범, 김재중, 백현 (위부터).

I.B.I 출신 이해인도 지난해 7월 데뷔한 걸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이하 키오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출격했다. 2010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이해인은 2016년 Mnet ‘프로듀스 101’, 2017년 ‘아이돌학교’에 출연하며 2010년대 중후반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수많은 팬에게 ‘픽’이 되는 멤버들과 인기를 모은 음악 스타일, 콘셉트, 스타일링 등을 보며 익힌 감각 덕분일까. 키오라에 따라오는 수식어는 ‘뻔하지 않은’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신인 걸 그룹이 쏟아지는 가운데 걸 그룹에서 흔하지 않은 힙합 장르를 들고 나왔다. 데뷔 앨범부터 멤버 모두가 솔로곡을 수록하면서 실력도 확실히 입증했다. 이해인은 멤버 선정부터 멤버 개개인의 콘셉트, 스타일링까지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치열한 현장 한가운데서 감각을 기른 이해인의 안목이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자연스레 하나둘 덧입힌 거다. 키오라가 ‘중소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함께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해 ‘2023 멜론 뮤직 어워드’ ‘제33회 서울가요대상’ ‘2024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 등 7곳에서 신인상을 석권했다.

앞으로의 아이돌 제작을 예고한 이들도 적지 않다. 2PM 출신의 원조 아이돌 박재범이 대표적이다. 그는 2022년 3월 아이돌 제작을 위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회사 ‘모어비전’을 설립했다. 이어 지난해 말 AOMG와 하이어뮤직 대표직을 내려놓고 힙합 음악 프로듀서가 아닌 아이돌 제작자로서의 새로운 전환점을 도모했다.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조현아의 목요일 밤’에 출연해 “AOMG, 하이어뮤직은 제가 창립해서 힙합 쪽에서 정상으로 많이 갔다”며 “더 이상 제 역할이 대표로서 필요성을 못 느껴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가 생겼다”고 아이돌 제작에 도전하는 포부를 밝혔다.

동방신기와 JYJ 출신인 가수 겸 배우 김재중 역시 지난해 5월 큐브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출신인 노현태 대표와 함께 새로운 기획사 ‘인코드’를 설립했다. 그는 인코드의 아티스트이자 CSO(최고전략책임자)로서 신인 아이돌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엑소 백현 역시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개인 회사 설립 후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적 있다.

성공한 아이돌 출신이 만드는 아이돌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에 30여 팀이 데뷔하는 가운데 대중의 눈에 띄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안다고 했던가. 사실 덕후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 넘치는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애정의 대상, 아이돌일 터다. 사랑을 받아봤기에 그 사랑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아는 만큼,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아이돌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한 기대를 가져본다.

#아이돌프로듀서 #아이돌제작 #여성동아

사진 출처 티엔엔터테이먼트 엘조 트위터 지코 인스타그램 이해인 인스타그램 INB100 모어비전 인코드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