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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90주년 기획| 운보 김기창의 빛과 그림자

창간 90주년 특집 기획 | 표지화 이야기⑤

안현배 예술사학자

2023. 09. 08

1933년 ‘신가정’으로 창간한 ‘여성동아’는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창간호부터 1981년 3월까지 표지를 장식했던 수많은 그림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여성동아’ 1970년 2월호 표지화.

‘여성동아’ 1970년 2월호 표지화.

1994년 발간된 운보 김기창의 전집 도록은 4000점이 넘는 작품이 수록돼 있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전체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을 수록했는데도 4000점이나 된다는 점이 대단하다. 또 한 사람이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한국화와 일본풍 조합의 초기작부터 순수 추상이나 민속화 혹은 서양화풍까지 김기창의 작품은 오랜 시간 드라마틱한 변화를 거듭해왔음이 느껴진다.

한때 한국의 대표 화가라고 하면 여성 화가는 천경자, 남성 화가는 김기창으로 불렸다. 이처럼 한국 예술계에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던 운보 김기창의 작품은 ‘여성동아’ 표지화의 한 챕터로 등장한다.

‘김기창’이라는 존재감

황금 백자 재현 작업을 하고 있는 김기창 화백.

황금 백자 재현 작업을 하고 있는 김기창 화백.

외부 문물의 유입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환경에선 어떤 문제가 생길까. 서양 세력으로 인해 개화가 시작된 일본이나 그 일본에게 문호를 개방당한 한국 모두 서양 문명에 위축된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문화 수용 과정에서 서구화가 현대화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리의 것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고유한 문화를 지키기보다 서둘러 남의 것을 보고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특히 서양화라는 장르는 우리로선 처음 접하는 문화였다. 한국 작가들은 일본에서 직접 배우거나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교육 등으로 서양화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그 순서와 적극성에 따라 성취가 달라지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한꺼번에 문호가 개방되면서 다양한 사조가 소화될 시간이 부족했다.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형식이 많았다. 그래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의 그림에 여러 사조가 혼합돼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였던 운보 김기창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이다. 오랜 시간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도 순수하게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로만 기억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와 전후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불거진 친일 문제를 비롯해 자신을 대표하는 통일된 스타일이 없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너무 많은 작품을 남겨서 찍어내듯 했다는 비판 등을 생각하면 김기창이라는 예술가를 다면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김기창은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 치하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를 둔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장티푸스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청각장애인으로 평생 살았던 개인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포기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어머니의 격려로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김기창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들을 가르친 화가는 이당 김은호였다. 오래지 않아 김은호는 김기창의 실력을 알아봤고, 김기창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이 시기의 그림은 당연하게도 스승 김은호의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김은호는 원래 한국화로 출발해 일본풍을 받아들이고 서양의 여러 가지 사조들을 보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실험하는 전형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적어도 1940년대 이전까지 김기창은 이런 김은호와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김기창은 자신이 일제에 협조했다는 비판에 대해 훗날 “대표적인 친일 작가인 스승 김은호의 길을 비판 없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회에서 입선하는 능력을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운보의 도약은 해방 이후 일본풍을 배제하고 본인의 길을 모색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했던 아내 박래현 작가의 도움으로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한편, 좀 더 안정된 상태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운보는 당시 시대의 변화를 같이하면서 일본풍의 그림에서도 벗어나는 중이었다. 원래 일본 그림은 세밀한 붓 터치와 섬세한 색감, 서양화풍과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정교한 완성도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김은호의 영향 아래에서 운보 역시 비슷한 그림을 그렸으나 해방 이후 굵고 힘 있는 붓 터치를 사용했고, 단순하고 강한 표현을 주로 하게 된다.

서구 유럽에서 유행하던 입체파와 표현주의 등도 운보의 그림에 영향을 끼쳤다. 공간과 색을 다루는 방식에서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실험이 들어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붓질에 나타난 선이 시원하고 힘이 있으며, 색채감은 어떤 부분에서도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어렵고 이해 못 할 세계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이라는 변치 않는 예술의 요소를 전해줬기 때문이다.

운보 김기창의 존재와 한국 화단

운보 김기창의 1 ‘군마도’. 2 ‘병자 고치다’. 3 ‘복덕방’

운보 김기창의 1 ‘군마도’. 2 ‘병자 고치다’. 3 ‘복덕방’

학교에서의 정규교육과 등단 과정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신인 작가부터 중견 예술가까지 각자의 시장이 있으며, 비평과 검증 역시 신뢰성을 담보한 채 판매가 활성화되는 환경. 미술이 문화의 한 축으로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의 풍경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가들이 서로 경쟁하고 작품을 남기며 역사를 이끌어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작가들이 활동하는 무대의 한계가 명확하다. 경쟁이 부족한 화단에선 완성도가 아쉬운 작품들이 생겨나고, 평론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적은 숫자의 유명 작가에게 힘이 쏠리고, 다양성보다는 스타의 활동 역량에 의존하게 된다.
운보 김기창은 이런 부족한 체제하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였다. 어떤 면에서 재능과 운이 다 따랐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스승으로부터 이어지는 인맥과 수상 경력은 평단의 자상한 지원이 따르도록 했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았으며, 그가 가진 장애는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그를 더 빛나게 했다.

해방 이후 김기창의 성장과 활약은 말 그대로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순수 추상화 작업을 하면서도 수시로 원시적인 힘이 정교함을 압도하는 민화를 그렸다. 또 주문을 받고 아카데믹한 그림을 그렸던 운보의 작품들은 작가의 순수한 도전 정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열정 때문이었는지를 회의하게 만든다.

“과연 이것이 한 사람의 작품인가”라는, 그의 도록에 대한 평가는 칭찬처럼 들리지만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림 사이사이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이질감은 천재 작가 운보의 그림이 예술을 향한 작가의 정신보다 그가 장애인들을 돕고 여러 제자들을 길러내고 한국 미술을 이끌었다는 미술 외 업적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또다시 우리들은 여기서도 인간을 발견해야 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기, 첫발을 내디디는 새로운 시도와 아직 경험이 짧은 세상에 자극을 주는 일은 소중한 가치가 있다. 운보 김기창 역시 우리에게 그런 그림을 남겨준 업적이 중요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지나간 아쉬움이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도약할 발판이 되고 작품 속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용기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친일 행보가 그 자신의 고백처럼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본인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비겁함이 끌고 온 결과라는 것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업적으로 과오를 덮기보다 그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시간에게 겸손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올바른 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성동아’를 위한 하나의 그림

운보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다. 그가 그린 1970년 ‘여성동아’ 2월호의 표지화는 운보의 자유로움을 빠르고 편안하게 드러내는 듯 보인다. 뒤에 보이는 선명한 색 앞에 단순한 검은색의 여성 초상화는 기시감을 주지만, 색과 선이 드러내는 시원함이 동시에 표현된 대가의 솜씨라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동아90주년 #표지화 #김기창 #안현배 #여성동아

안현배는 
파리 제1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사를 공부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소에서 ‘예술과 정치의 사회학’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사학자로서 예술을 사회와 역사의 관계 속에서 살핀다. 저서로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의 예술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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