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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두 힙스터 감독의 대결 ‘애스터’ vs ‘애스터’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2023. 07. 31

아트 필름 열혈 팬들이 극장에 걸린 두 편의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 이른바 애스터(의 영화) 대 애스터(roid city).

보 이즈 어프레이드,
“어머니, 당신은 누구입니까”

5년 전, 빼어난 오컬트영화 ‘유전’을 만든 감독 아리 애스터의 등장은 그야말로 번뜩이는 신인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공개된 차기작 ‘미드소마’의 괴랄하고도 잔혹한 묘사는 고대하던 이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다. 관객의 향방은 여기서 정확히 엇갈렸다. 감독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는 선언이 속출한 반면, 어떤 이들은 그의 과감한 스타일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런 와중에 아리 애스터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7월 5일 개봉했다. 전작만큼 고어한 묘사는 없다지만 혼란의 정도로 따지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문제적 영화.

장장 3시간에 걸친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편집증 중년 남성의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분한 중년 남성 ‘보(Beau)’는 시종일관 겁에 질려 있다. 그가 겪는 일련의 경험들은 실제인지, 기억인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다. 편집증 환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한 피해의식의 퍼포먼스가 초현실적인 영화의 편집 리듬을 입고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이웃으로부터 거듭 컴플레인을 받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비행기를 놓치고, 걸인과 광인들의 습격을 받는 등 혼미할 정도의 어지러운 사건들이 보의 불안을 가중한다.

하지만 여러 사정이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일정을 망치는 이유는 외부가 아니라 보 스스로에게서 기인한다. 이러저러한 공격의 발원지는 사실상 보 자신이며, 결국 그가 어머니를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성녀 조각상을 어머니 선물로 고른 보, 축축한 동굴 속을 통과하는 보, 지난한 성적 불구 상태에 놓인 보를 보여주며 마더 콤플렉스(mother complex)를 정면으로 다룬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의 내면에 뿌리내린 어머니의 영향을 각종 증상과 상징물로 드러내고 있다.

가학의 코미디여, 컬트가 되라

아리 애스터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번 영화가 ‘코미디’ 장르임을 어필했다. 하지만 객석에서는 자그마한 웃음도 새어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했다. 단 한 번의 실소가 있었다면 아마 남근 괴물이 등장하는 다락방 장면 정도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부분마저도 보의 트라우마를 아로새기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관객은 결코 쉽게 웃지 못한다. 자조적인 테마에서 오는 웃음이 블랙코미디의 속성이기에 애스터의 발언에 담긴 심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수년간 보를 상담해온 의사가 상담 내용을 어머니와 공유하고 있었다는 내용에까지 이르면, 이 농담의 수위는 매우 지독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리 애스터의 팬들은 그의 가학적인 가족해체 드라마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미드소마’와 ‘보 이즈 어프레이드’ 두 편을 놓고 나뉜 양극단의 반응들만 보아도 이제 아리 애스터는 ‘컬트영화’(소수의 열광적인 팬이 있는 영화)의 신흥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다수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물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히 신선한 감흥이자 보기 드문 야심으로 다가올 법하다.



한국영화의 팬이기도 한 아리 애스터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콕 집어 자신에게 표현할 용기와 영감을 준 영화라 말하기도 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개봉 당시 10만 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했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대표 컬트영화다. 비난과 열광 사이에 놓인 애스터의 영화가 훗날 어떠한 영화로 재평가될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토록 지독한 농담에 거액을 투자한 제작사 A24(‘미나리’를 만든 그 제작사)의 배짱이 남아 있는 한 야심 찬 작가들이 더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의 강박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소행성이 떨어진 자리가 있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황량한 사막 도시의 이름이다. 소행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된 과학 영재들과 부모가 이곳에 모이는데, 이들이 외계인을 목격하면서 정부의 통제 아래 격리된다. 제이슨 슈워츠먼, 스칼렛 조핸슨, 톰 행크스,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애드리언 브로디, 스티브 카렐, 마야 호크, 윌렘 대포, 마고 로비…. 총출동한 웨스 앤더슨 사단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의 이름들로 일찍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는 난데없는 격리 상황에서 각기 다른 유대를 쌓아간다.

그러나 방금 언급한 내용은 영화 속에서 실제가 아니다. 영화는 사막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나의 연극으로 상정하고, 이 연극을 만드는 무대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영화 내부의 리얼리티로 삼는다. 일종의 극중극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배우들은 이중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웨스 앤더슨은 시네마스코프(2.39:1)와 고전적 화면비(4:3) 또는 파스텔 톤 색감과 흑백 화면을 교차해가면서 영화를 구성해둔다. 과연 이러한 장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트 필름과 블록버스터의 합성어인 ‘아트버스터(Artbuster)’는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흥행과 함께 등장한 조어였다. 그의 인공적인 세계와 아웃사이더적인 감수성에 빠진 관객들이 이른바 웨스 앤더슨의 미장센을 탐닉하며 팬을 자처했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은 그의 영화가 키덜트의 욕망을 자극할 뿐인 영화라는 평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정말로 단지 스타일밖에 남지 않는 영화인지 제대로 물어야 할 시점이다. 적어도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그러한 반문을 가져오기 충분한 영화로 보인다.

그가 좋아하는 강박적 대칭의 프레임 내부에서는 다소 작위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보인다. 카메라는 모든 장면에서 입체성을 지워내고, 가로세로의 평면적인 움직임을 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공적인 세계 속에서 숏(shot)의 힘은 빛을 발한다. 인물의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찰나를 표현하는 압축적인 운동감이야말로 숏과 숏이 만나 발휘하는 영화 매체의 본질적인 힘을 곱씹게 한다.

속도감을 주고자 빠르게 휘발되고 남발되는 숏들로 무장한 영화 시장에서 이런 영화를 만나는 일은 몹시 소중하다. 훌륭한 장면이 많지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소개하고 싶다. 사랑의 섬광을 시선의 마주침과 잠깐의 침묵, 지연된 시간의 감각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앤더슨의 분명한 영화적 재능이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나지 못해”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분위기만 있고 내용이 없다”는 오해를 잠재우기 위해, 다시 극중극 형식으로 돌아가 보자. 극중극의 주인공 어기 스틴백을 맡은 존스 홀(제이슨 슈워츠먼)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연극을 두고 고뇌하는 인물이다. 극작가 콘래드 어프(에드워드 노튼)는 극본의 최종 장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픽션을 위해 현실을 고뇌하는 사람들. 이들은 다시 말해 감독 웨스 앤더슨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나지 못해(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는 어쩌면 감독이 강박적인 형식을 통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힌트 같다. 우리는 너무나 진짜 같아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만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라는 환상을 일깨우는 인공적인 장치들을 통해 기꺼이 몰입할 때야말로, 내가 앉은 객석의 현실 감각을 쥐고서 영화가 전하는 몽상으로 빠져든다.

#보이즈어프레이드 #아리애스터 #애스터로이드시티 #웨스앤더슨 #여성동아

사진제공 스튜디오디에이치엘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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