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콰야 작가에게 인터뷰 섭외 메일을 보냈다. 답변이 왔다. “매체 인터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비슷한 내용이 공유되면서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을 받았다. 보편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참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정이 엇갈렸다. 그럼에도 이제껏 그의 그림을 봐왔던 탓일까. 메일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그의 솔직함과 진중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섭외 연락을 계획해두진 않았지만, 두 달 만에 인터뷰가 성사될 줄은 몰랐다. 6월 14일, 현장 취재에서 우연히 마주친 콰야의 전시가 기자를 움직였다. 롯데 갤러리 동탄점에서 열린 콰야와 가수 최백호의 2인전. 전시장에 기록된 그의 일기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김환기 작가의 일기 중 좋아하는 단락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 할 것인가’가 생각났다. 공감하고, 스스로에게 과제 같은 말이다. 울리는 음악과 울리는 미술….”
꽤 충격적이었다. 그의 글처럼 미술 작품을 보고 울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작가의 기록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인터뷰 섭외 연락을 취했다. 7월 13일 장맛비가 쏟아지는 오후, 서울 마포구 당인동 작업실에서 콰야를 만났다.
주황빛을 찾아 온 아틀리에
작가의 당인동 작업실 내부.
작가는 고양이 키키 · 코코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쯤인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 조건에 맞춰서 (작업실을) 알아보다가 이 동네에 왔는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이 동네에서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지금까지 지내게 됐죠.
특히 어떤 점에 끌렸나요.
마포는 제게 익숙한 동네예요. 이 근처에 작업실을 얻고 싶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조용하고, 근처에 갈 곳도 많고, 교통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홍대 번화가 근처였다면 밤에 시끄러워 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집과 작업실을 분리해 사용하면 좋은 점이 뭔가요.
대단히 꼭 의도를 한 건 아닌데 공간을 구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작업실이 아예 집과 다른 동네에 자리한 적이 있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작업을 지칠 때까지 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식이라 거리가 멀면 힘들더라고요. 같은 동네, 근처를 찾다가 집과 작업실을 따로 구하게 됐어요. 원래는 집과 작업실을 분리하지 않고, 한 공간에 넣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분리됐죠. 지내다 보니 한 공간을 나눠서 쓰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문을 닫고 열고의 차이가 확실히 있더라고요.
캔버스가 벽에 다 걸려 있네요.
유화 작업을 해서 건조 시간이 필요한데 고양이들과 같이 지내느라 캔버스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벽면에 걸어 말리고 있어요.
콰야의 작업 공간은 당인동과 연남동 두 곳에 있다. 당인동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그림 넣을만한 창고 공간을 찾다가 그리 멀지 않은 연남동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사용한 지는 1년 즈음.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고 있다. 연남동 작업실은 당인동보다 층은 높지만, 면적은 더 작은 아담한 공간이다.
작업실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뭔가요.
일단 층수를 보는 것 같아요. 작업을 편하게 하려면 층수가 중요하거든요. 지층에도 있어봤는데 습해서 작품 관리가 어려웠어요. 또 고층으로 가면 작품 옮기는 게 힘들고요.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화물용이 아니면 큰 작업이 안 들어가거든요. 1~2층 정도가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작업은 주로 평일에만 하시나요.
저는 평일과 주말 구분이 따로 없어서 거의 연중무휴로 작업합니다. 주말에도 똑같이 작업 해요. 아무래도 지인을 만날 때는 주말 작업이 좀 어렵긴 하죠.
지난 6월 콰야의 그림을 만난 전시장에서는 그림마다 콰야의 그림 일지가 적혀 있었다. “이번 전시 작업을 준비하기 전에는 별걱정이 없었다” “나는 (최백호)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고자 하였고, 가사를 한 자 한 자 더듬거리며 읽다 보니 뭔가 마음이 답답해졌다”는 내용의 시시콜콜한 기록들이다. 작가에게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기록을 보내줄 수 있느냐” 물으니, 12페이지 분량의 짧고 긴 일기를 메일로 보내왔다. 어느 작가가 깊은 고민없이 그림을 그리겠냐만 자신의 고양이 ‘키키, 코코’부터 자신의 마음 상태, 그림, 사람 간의 관계 등 그를 둘러쌓고 있는 여러 내외부 요인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연상됐다.
기록에서 그림으로 흐르다
[초기 작품] 잠, 2015
자연스러운 일이라 특별한 의미는 없고,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기록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 있잖아요. 나에게 중요했던 것들을 남기고 기록하는 거죠. 요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기록의 일부잖아요. 저는 그걸 글로 하는 거예요. 일기처럼 남겨놓는 거죠.
자기표현, 그냥 좋아서일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 그림을 그리시나요.
큰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업이라고 하면 업이지만, 딱히 업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표현의 수단으로 생각해요. 나를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할까요. 정착해서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이 된 거죠. 작업은 대체로 결핍에서 오고, 어떤 결핍이 있어 작업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세상을 굉장히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꼈다면 아마도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른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웃음).
전시장 안 일기처럼 작가님이 생각하는 울리는 작업, 좋은 작업이란 무얼까요.
말 그대로 (마음을) 울리는 작업이요. 울리는 작업 자체를 미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음악을 듣거나 영화, 연극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과 전율을 미술 영역에서 비슷하게나마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들과 다른 감동이 있고 감동의 종류도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감동을 미술에서 받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야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항상 그런 생각을 갖고 작업하고요.
작품에 영향을 주는 분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개념미술을 하는 안규철 작가님을 좋아해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업도 좋아하고요. 울리는 미술 이야기의 연장선인데, 저는 (미술이 대중을 울리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로 불친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감동을 느끼려면 단편적인 작업이 아닌, 한 작가의 일대기를 봐야 하잖아요. 두 작가의 작업은 그 안에서도 스토리가 있고, 그림을 봤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계속 감상하게 돼요.
사실 콰야는 상명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출신의 패션학도다. 한때 패션 회사의 막내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계속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2016년부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옷을 공부할 때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초기 작품] 둘, 2018
초기 작업은 조금 더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고 했어요. 작업을 오래 했다고 보긴 어렵지만요. 어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감정들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그 감정이 작품에 잘 녹아들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도 어린 인물의 초상을 그렸나요.
어린 인물이 등장한 건 얼마 안 됐어요. 처음부터 그런 식의 작업을 생각한 건 아니고,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저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다가 그리게 됐어요. 이전 그림들의 초상은 저랑 비슷한 또래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어린 인물일 때 더 잘 나오는 것 같아서 그 방식을 이어오고 있어요.
작가님 그림에는 항상 인물이 등장해요.
네. 인물이 항상 들어갔죠. 제가 관심 있는 건 어떤 관계에서 생기는 이야기이다 보니까,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꼭 인물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관계성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주변 인물을 그대로 그리진 않아요.
아이의 초상이 작가님을 대변하나요.
꼭 어린 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보편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면서 작업해요. (단지 그림 속) 이야기의 화자가 그들인 거죠. 시기가 지나면 인물들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고요. 근데 최근에 딱 보면 어린 인물인데 성인이 할 법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고민되긴 해요. 어린 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작업했는데 ‘성숙한 인물의 행동으로 비쳤을 때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더 나아가 불편하게 느끼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최근 작품]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2022
[최근 작품] 달빛 아래에서, 2022
작업 초반부터 여러 가지 재료를 썼는데 매체에 계속 오일파스텔이 주재료로 소개됐어요. 파스텔은 잘 안 쓰는데 다 파스텔 작업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전시 그림도 다 유화 작업이에요. 그걸 또 제가 “파스텔 아닌데”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그래서 그냥 그렇게 알려졌죠. 거의 다 유화 작업이고 오일 스틱도 오일 베이스의 재료예요.
밑그림 없이 바로 작업하시나요.
스케치는 저에게 불필요한 과정인 것 같아서 꼼꼼하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구상한 걸 대략 구도만 잡아놓고 작업하거든요. 스케치는 밑그림을 그려놓고 그 위에 칠을 하는 느낌이잖아요.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스케치 (과정) 없이 색으로 계속 생각하며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최근 작품] 종이비행기 날리기, 2022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작업하는 사람의 과제인 듯해요. 어떤 장르의 작업자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찾아주시는 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걸 계속 경계하면서 여러 작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게 스스로의 과제예요. 중간을 맞춰 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솔직하게 작업해야 한다’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지금이야 감사하게도 작업을 많이 찾아주시니까 ‘이것저것 작업할 게 있어도 계속 특정 그림 요청이 들어오니 (이것만) 그려야 하나?’ 고민하지만, 언젠가 제 작업을 찾는 분이 눈에 띄게 줄었을 때 ‘예전에 사람들이 이 작업을 많이 찾았으니까 이걸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되잖아요. 그걸 다스리는 게 중요하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고민을 하게 될 때가 분명히 올 테니 제 중심을 잡고 싶어요.
평생 작가를 꿈꾸다
롯데갤러리 동탄점에서 열린 콰야×최백호 2인전.
금전적인 문제부터 전업 작가의 삶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생활고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엄청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애초에 생활하는 데 많은 품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서요(웃음). 현재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많지 않아서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이건 나중에 바뀔 수도 있죠. 여러 가지를 눈치 보지 않고 작업하는 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은 뭔가요.
좀 웃긴 얘기지만 제가 한 작업들 안에서는 편애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작업 안에서 편애가 생기면 내 작품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해서 (모든 작업을) 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바라보려고 해요. 힘든 부분이라면, 저는 특정한 기간에 동일한 페이스로 작업을 마무리 짓는 편인데 (작업) 시간에 공백이 생기면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당시에 생각했던 거랑 이야기가 달라져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더 힘들더라고요. (중단한 작품을) 계속 갖고는 있어요. 일례로 A라는 생각을 작업하다가 중단했는데 그 생각과 기억이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러면 B나 C로 이야기를 전환해서 작업하곤 해요. 도저히 그렇게도 안 되겠다 싶으면 완전히 다른 작업으로 바꿀 때도 있는데, 흔하지는 않고 가끔 있어요.
콰야는 미술업계가 눈여겨보는 떠오르는 샛별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미 ‘어반브레이크 2021’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서울) 2021’ 등 각종 아트페어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며 인기를 입증한 지 오래. 작업을 시작한 2016년부터 개인·단체전, 커머셜 활동, 매체 인터뷰 등 부지런히 달려왔다. 지난해에만 25건 이상을 진행했다. 이길이구 갤러리의 ‘태도에 대하여’, 목인박물관 목석원의 ‘Pray: 단지 가벼이 소망하는 것’을 비롯해 작년에 열린 개인전만 5건이다. 콰야는 “작업을 위한 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시 후 본인 작품을 소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전시를 하고 작품이 팔리면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만 조금 허탈할 때가 있어요. 나를 쏟아부은 덕분에 긍정적인 결과가 생겼지만요. 제 작품이 팔리면 보고 싶은데 다시 볼 수 없잖아요. 사실 제 작업을 다시 찾아보진 않지만, 제가 갖고 있는 것과 영영 볼 수 없는 것의 차이가 있어요. (작업)한 것들이 공간 한쪽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원동력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작품 수가 적게 가는 단체전은 소장이 어렵지만, 개인전 때는 ‘내가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한두 점씩 남겨놓게 됐어요.
어떤 작품들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특정한 도상이 있는 건 아니고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 내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거나 직접적인 추억이 담긴 작업들을 작가 소장품으로 둬요. 소장 그림을 쭉 놓고 보면 겹치는 키워드는 없을 거예요. 도상도 다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요.
7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만큼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올해 전시가 좀 많았는데, 좀 더 솔직한 작업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휴식을 위한 쉼이 아니고, 작업으로서 더 나아가기 위한 쉼이랄까요. 요즘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해요.
늘 스케줄을 꽉 채우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성격은 그런데 일정 제안이 오면 거절을 잘 못 해요. 그러다 보니까 일정이 쌓이고 쌓이는 거죠. “지금은 어렵고, 나중에”가 저의 거절 방식인데, 그 나중이 쌓여 한꺼번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걱정은 없으세요.
부담은 없는데 계속 드는 생각은 있어요. 작가보다 작품이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생각요. 사람들이 그냥 작품이 좋아서 봤는데 “아 이것도 그 작가 작품이네” 하는 반응요. 단지 작가가 유명해지면 어떤 작업을 해도 “그 작가가 그렸대” 이렇게 알려지는 것 같아서요. 애초에 저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는 것 같지만요.
유화 외에 다른 형태의 작업도 시도해보고 싶은가요.
할 수 있다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전시가) 몇 년은 예정돼 있어서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고, 다른 형태의 것들은 고민하면서 취미 겸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요. 그걸 작업에 활용할 수도 있고요.
콰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볼 때 “저 작가는 저런 작가야” 특정 지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노력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분간 콰야는 예정돼 있는 전시를 위해 또 자신을 깎고 채우며 울리는 작업에 정진할 것이다. 청년 작가의 성실한 행보가 한껏 기대된다.
#콰야 #비하인드아틀리에 #여성동아
콰야의 미공개 일기장
QWAYA's Diary
2022.05.05_ 크리스마스의 선물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어쩌지 싶은 때가 많다. 몇 년 전부터 전시를 준비할 때면 “‘밤하늘’이 들어간 도상을 그려주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 요청이 있을까 항상 조마조마하다. ‘이번에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어떻게 복잡한 마음을 에둘러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특정 도상 작업을 오히려 더 멀리하고 머릿속 구석진 방에 가둬두었다. 물론 무엇이든 그 사람을 특정하는 것이 생기고, 찾아 불러준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또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누가 들으면 ‘배가 불러서 미쳤구나’ 싶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별을 팔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소설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 속 주인공들이 소중한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소중한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곗줄을 사는 것처럼 나도 나의 소중한 추억을 팔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되짚는 것보다 그 자체로 남겨두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 아닌가. 뭐 아직은 채취할 수 있는 기억들이 있어서 그려내지만 더 이상 채취할 수 있는 기억이 없는데 요청이 계속된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두가 소중함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내가 아직 어른이 덜돼 당연한 것을 무겁게 생각하는 것일까.
2022.03.29_ 동그라미와 세모
원래도 그랬지만 작업하면서, 아니 작업을 공유하고 활동하면서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 얘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얘기에 데이고 데여서 마음에 굳은살이라도 생긴 걸까. 물론 주변 지인에 대한 이야기도 다른 이들에게 굳이 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두고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추측일 뿐이고, 많은 추측들이 사실로 이어지진 않는다. 대개 “그렇다더라” “그렇다던데?”라는, 소위 말해 ‘카더라’식의 화법은 모난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 또한 편견일 수 있다.
나는 둥글지 못한 말을 줄이고 줄여 둥근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런 집착 속에 평생을 살았다. 물론 세모난 사람이 둥근 말을 한다고 둥근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둥근 사람이 세모난 말을 뱉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그냥 세모난 말들에 지친 것 같다. 차라리 모든 세모난 사람들이 둥근 말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진심이 없더라도 그것이 더 나은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니 그 전에 세모난 사람과 둥근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 또한 편견일 수 있겠다. 그러면서 나는 듣고 있는 듯 귀를 닫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를 중얼거리면서 자체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와 노이즈 캔슬링의 공존이라니 참 모순적이다. 아 언제나 생각의 끝은 모순덩어리인 것 같다.
사진 김도균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롯데갤러리 콰야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