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일삼아 국민의 지탄을 받는 재벌이 있는가 하면 꾸준한 선행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기업가도 있다. 국내외에서 ‘기부왕’으로 유명한 최신원(67) SK네트웍스 회장은 후자의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최 회장은 10월 10일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하는 ‘2019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데 이어 10월 16일 도산아카데미가 선정한 ‘도산봉사상’을 수상했다. 사재를 꾸준히 기부해 나눔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한 공로다.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장남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타계)으로 현재 SK가의 맏형인 그는 인재 육성과 나눔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해비타트 등 공식 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92년부터 28년간 학교와 장학재단 등에 1백32억원을 기부했다.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 쪽방촌 주민 등 어려운 이웃에게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기부금도 만만치 않은 액수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 ‘을지로 최’라는 이름으로 남모르게 기부를 했던 선행은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해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됐으며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이 모임의 총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그가 직접 이 모임에 가입시킨 회원은 1천 명이 넘는다.
최 회장의 나눔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서울 중구 SK네트웍스 사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직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회장님은 회사 근처 을지로에서 주로 식사를 하시는데 오가며 매일 마주하는 노점 주인을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어요. 거기서 붕어빵이랑 땅콩을 사다 직원들에게 나눠주세요. 개인적으로 기부를 많이 하시는데 거의 중독 수준이에요.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베푸는 삶을 즐기세요. 선행을 많이 하시는 회장님 덕에 직원들도 자부심을 느끼죠.”
SK매직이 가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데는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과 함께 오너가 선행을 많이 하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름다운 기부 습관으로 어려운 이웃에겐 희망을, 각박한 사회에는 온기를 퍼뜨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나눔 메신저’를 11월 초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나눔국민대상의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크고 작은 나눔을 이어왔지만 실제로 얼마를 어디에 해왔는지 잘 기억도 못 하고 몰랐어요. 굳이 하나하나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의 활동들을 쭉 정리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름대로 꾸준히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넉넉하지 않은데도 기부를 하는 많은 사람이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받은 느낌이에요. 기부와 봉사를 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도 이렇게 저에게 큰 상을 주신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계속 노력해달라는 당부이자 격려가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 등 소외계층에도 남몰래 기부한 액수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을 돕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할 어려운 이웃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 특히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매년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크게 늘고 있는데 아무 기반 없이 한국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나 편견으로 인해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들이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미래 통일 시대가 다가오면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의 구성원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나눔 활동을 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기부와 봉사를 하는 매 순간 행복과 보람을 느껴요. 어느 하나 의미 없는 활동은 없으니까요. 제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올해로 6년째 다문화가정 고향 보내기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최근 고향에 다녀온 결혼 이주 여성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14년 전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는데, 아이를 임신 중일 때 남편과 사별을 했더군요.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분이었어요. 한국에 온 후 고향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그사이 부모님까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가보지 못한 게 한이고 가슴에 맺혔었는데 덕분에 묘소라도 찾아가 인사드릴 수 있었다며 그분이 감사하다고 말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도운 어린이들이 지금은 대학생이 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소식도 참으로 반가웠어요.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나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주세요.
제가 어릴 적에 가뭄이 심해 한동안 물이 부족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그 귀한 물을 기꺼이 마을 주민들의 논에도 대주시더군요. 또 어머니께서 늘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쌀 한 줌씩을 모으는 모습도 봤고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저로서는 나눔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린 것이죠. 그래서 나눔 교육이 중요해요.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어린 시절부터 나눔을 생활화하도록 교육하고 독려한다면 우리 사회에 지속 가능한 나눔 문화를 정착할 수 있어요. 물론 어른들이 나눔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그 가치를 직접 깨달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면 그보다 효과적인 교육은 없을 겁니다.
나눔 교육을 위해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 일이 있는지요.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한데 어떻게 하면 나눔 교육을 확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후세에 전해지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나눔 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관련 경험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7분 공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나눔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어린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나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재와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검토 중이에요. 나눔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힘이 있어요.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요. 미래 세대가 더 밝고 행복한 내일을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고 최종건 회장께서는 부의 축적보다 인재 육성에 더 큰 뜻을 두고 기업을 경영하셨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나눔을 통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힘쓰신 듯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공장을 일으키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누룽지 하나도 직원들과 나누셨어요. 집에서 늘 콩을 한 말씩 볶아다가 당시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나누어주셨는데 값으로 치면 별것 아니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직원들의 복리 후생뿐 아니라 기량이 계속 좋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 늘 사업보국의 정신을 강조하셨는데 기업을 통해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으셨어요. 그래서 그 유명한 MBC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도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텔레비전을 통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이 말씀을 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프로그램 후원하길 잘했어.” 오로지 순수하게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시작하신 일이었기에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건 다른 조건은 일절 없었어요. 나라가 있어야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부친의 경영철학을 받들어 저는 물론이고 저희 회사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장학 사업에도 큰 뜻을 두고 계신 걸로 압니다. 모친이신 고 노순애 여사가 운영하시던 선경최종건재단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선경최종건재단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친께서 생전 강조하셨던 인재 양성의 뜻을 받들고자 저를 포함한 직계 가족들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어요. 모친께서 돌아가신 후 제가 이사장직을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주고자 장학 사업을 이어오고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잠재 역량을 가지고 있고, 여러 경험과 기회 속에서 계발되며 성장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초반에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피해 지역 학생들을 지원하다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전국 지역 학생으로 확대했어요. 최근에는 체육계 꿈나무들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치고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믿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원해나갈 계획입니다.
고 최종건 회장의 명언 중 ‘기업의 진정한 자산은 사람이다’ ‘기업의 성패는 고정관념의 탈피와 인재에 달려 있다’는 말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같은 경영 철학으로 기업을 이끌고 계시는지요.
저는 경영에도 나눔의 철학이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여깁니다. 그래서 평소 ‘셰어드 라이프, 셰어드 경영(Shared Life, Shared Business)’을 강조합니다. 조직 안에서는 구성원과 비전을 나누고, 밖으로는 고객과 가치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고객들이 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도 결국 나눔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죠. 즉 나눔과 기부, 경영의 선순환 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SK그룹이 경영철학으로 강조하는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이와 관련 최신원 회장은 SKC 회장 시절 공장마다 모금함을 두고 구성원들이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SK네트웍스와 워커힐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모금함을 항상 비치해두고 있다. 더불어 최 회장은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연탄 나눔, 김장 봉사, 행복 나눔 바자회 등의 선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고 그와 동시에 기업 경영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SK매직이 최근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2016년 말 인수 직후 SK매직 구성원들에게 “SK의 일원이 된 만큼, 고객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문했어요. 이후 품질과 디자인 관련 R&D(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같은 첨단 기술과 감성을 결합한 상품(올인원 직수 정수기, 파워워시 식기세척기 터치온, 모션 공기청정기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인 것이 꾸준한 렌털 고객 증가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SK네트웍스가 지닌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같은 해외 지역 개척에 나서는 등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이어가는 모습이 고객에게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서의 신뢰를 주었다고 판단됩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요즘 우리 회사 구성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키워드는 ‘행복’이에요. 최근 SK그룹의 화두이기도 한데 우리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회사도 성장할 수 있고, 이해관계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제 기업이 이윤 추구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돈 버는 것’에서 ‘구성원 전체의 행복 추구’로 바꾸고 있고, 여기서 말하는 구성원은 우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 주주, 사회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요. 더불어 평소 ‘도전과 개척 정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SK그룹의 모태인 SK네트웍스 태생 자체가 한국전쟁으로 폭격된 공장에서 불타버린 직기들을 재조립해 이루어졌고 우리나라 최초의 직물 수출, 폴리에스터 제품 출시 등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역사가 있지요. 그동안 수많은 위기와 역경을 특유의 DNA로 극복해왔고,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은 홈케어와 모빌리티 중심의 미래 성장형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구축에 성공하였습니다. 여전히 국제적인 불안 요인이 심화되고 있고 내수 침체 등 국가 경제가 불투명하지만,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과감히 나선다면 오히려 혁신과 지속 성장의 길을 여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소망이 있다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나눔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더 널리, 더 멀리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은 기부 규모로만 따지면 많은 성장을 이루었지만, 아직 세계에 나눔의 저변이 확대되지 않은 곳이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세계공동모금회(United Way Worldwide) 리더십위원회의 유일한 아시아 출신 멤버로서 어떻게 하면 아태 지역의 나눔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고 앞으로 필요한 역할을 다해나가려고 해요. 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발맞춰 국내 자선 생태계도 진화하고 발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선과 기술이 접목되면 나눔을 더 쉽고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르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나눔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장남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타계)으로 현재 SK가의 맏형인 그는 인재 육성과 나눔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해비타트 등 공식 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92년부터 28년간 학교와 장학재단 등에 1백32억원을 기부했다.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 쪽방촌 주민 등 어려운 이웃에게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기부금도 만만치 않은 액수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 ‘을지로 최’라는 이름으로 남모르게 기부를 했던 선행은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해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됐으며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이 모임의 총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그가 직접 이 모임에 가입시킨 회원은 1천 명이 넘는다.
최 회장의 나눔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서울 중구 SK네트웍스 사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직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회장님은 회사 근처 을지로에서 주로 식사를 하시는데 오가며 매일 마주하는 노점 주인을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어요. 거기서 붕어빵이랑 땅콩을 사다 직원들에게 나눠주세요. 개인적으로 기부를 많이 하시는데 거의 중독 수준이에요.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베푸는 삶을 즐기세요. 선행을 많이 하시는 회장님 덕에 직원들도 자부심을 느끼죠.”
SK매직이 가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데는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과 함께 오너가 선행을 많이 하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름다운 기부 습관으로 어려운 이웃에겐 희망을, 각박한 사회에는 온기를 퍼뜨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나눔 메신저’를 11월 초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한 후 잠실야구장에서 엄지척을 하며 기쁨을 함께하는 SK가의 4형제. 구단주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신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왼쪽부터).
제가 크고 작은 나눔을 이어왔지만 실제로 얼마를 어디에 해왔는지 잘 기억도 못 하고 몰랐어요. 굳이 하나하나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의 활동들을 쭉 정리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름대로 꾸준히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넉넉하지 않은데도 기부를 하는 많은 사람이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받은 느낌이에요. 기부와 봉사를 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도 이렇게 저에게 큰 상을 주신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계속 노력해달라는 당부이자 격려가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 등 소외계층에도 남몰래 기부한 액수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을 돕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할 어려운 이웃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 특히 다문화가정과 북한이탈주민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매년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크게 늘고 있는데 아무 기반 없이 한국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나 편견으로 인해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들이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미래 통일 시대가 다가오면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의 구성원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나눔 활동을 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기부와 봉사를 하는 매 순간 행복과 보람을 느껴요. 어느 하나 의미 없는 활동은 없으니까요. 제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올해로 6년째 다문화가정 고향 보내기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최근 고향에 다녀온 결혼 이주 여성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14년 전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는데, 아이를 임신 중일 때 남편과 사별을 했더군요.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분이었어요. 한국에 온 후 고향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그사이 부모님까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가보지 못한 게 한이고 가슴에 맺혔었는데 덕분에 묘소라도 찾아가 인사드릴 수 있었다며 그분이 감사하다고 말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도운 어린이들이 지금은 대학생이 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소식도 참으로 반가웠어요.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나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주세요.
제가 어릴 적에 가뭄이 심해 한동안 물이 부족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그 귀한 물을 기꺼이 마을 주민들의 논에도 대주시더군요. 또 어머니께서 늘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쌀 한 줌씩을 모으는 모습도 봤고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저로서는 나눔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린 것이죠. 그래서 나눔 교육이 중요해요.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어린 시절부터 나눔을 생활화하도록 교육하고 독려한다면 우리 사회에 지속 가능한 나눔 문화를 정착할 수 있어요. 물론 어른들이 나눔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그 가치를 직접 깨달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면 그보다 효과적인 교육은 없을 겁니다.
최신원 회장은 “사회 환원은 가진 자의 마땅한 도리이자 자식을 진정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한데 어떻게 하면 나눔 교육을 확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후세에 전해지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나눔 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관련 경험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7분 공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나눔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어린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나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재와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검토 중이에요. 나눔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힘이 있어요.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요. 미래 세대가 더 밝고 행복한 내일을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고 최종건 회장께서는 부의 축적보다 인재 육성에 더 큰 뜻을 두고 기업을 경영하셨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나눔을 통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힘쓰신 듯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공장을 일으키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누룽지 하나도 직원들과 나누셨어요. 집에서 늘 콩을 한 말씩 볶아다가 당시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나누어주셨는데 값으로 치면 별것 아니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직원들의 복리 후생뿐 아니라 기량이 계속 좋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 늘 사업보국의 정신을 강조하셨는데 기업을 통해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으셨어요. 그래서 그 유명한 MBC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도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텔레비전을 통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이 말씀을 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프로그램 후원하길 잘했어.” 오로지 순수하게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시작하신 일이었기에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건 다른 조건은 일절 없었어요. 나라가 있어야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부친의 경영철학을 받들어 저는 물론이고 저희 회사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장학 사업에도 큰 뜻을 두고 계신 걸로 압니다. 모친이신 고 노순애 여사가 운영하시던 선경최종건재단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선경최종건재단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친께서 생전 강조하셨던 인재 양성의 뜻을 받들고자 저를 포함한 직계 가족들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어요. 모친께서 돌아가신 후 제가 이사장직을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주고자 장학 사업을 이어오고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잠재 역량을 가지고 있고, 여러 경험과 기회 속에서 계발되며 성장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초반에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피해 지역 학생들을 지원하다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전국 지역 학생으로 확대했어요. 최근에는 체육계 꿈나무들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치고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믿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원해나갈 계획입니다.
고 최종건 회장의 명언 중 ‘기업의 진정한 자산은 사람이다’ ‘기업의 성패는 고정관념의 탈피와 인재에 달려 있다’는 말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같은 경영 철학으로 기업을 이끌고 계시는지요.
저는 경영에도 나눔의 철학이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여깁니다. 그래서 평소 ‘셰어드 라이프, 셰어드 경영(Shared Life, Shared Business)’을 강조합니다. 조직 안에서는 구성원과 비전을 나누고, 밖으로는 고객과 가치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고객들이 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도 결국 나눔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죠. 즉 나눔과 기부, 경영의 선순환 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SK그룹이 경영철학으로 강조하는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이와 관련 최신원 회장은 SKC 회장 시절 공장마다 모금함을 두고 구성원들이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SK네트웍스와 워커힐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모금함을 항상 비치해두고 있다. 더불어 최 회장은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연탄 나눔, 김장 봉사, 행복 나눔 바자회 등의 선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의 나눔 철학을 계승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최신원 회장.
2016년 말 인수 직후 SK매직 구성원들에게 “SK의 일원이 된 만큼, 고객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문했어요. 이후 품질과 디자인 관련 R&D(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같은 첨단 기술과 감성을 결합한 상품(올인원 직수 정수기, 파워워시 식기세척기 터치온, 모션 공기청정기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인 것이 꾸준한 렌털 고객 증가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SK네트웍스가 지닌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같은 해외 지역 개척에 나서는 등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이어가는 모습이 고객에게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서의 신뢰를 주었다고 판단됩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요즘 우리 회사 구성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키워드는 ‘행복’이에요. 최근 SK그룹의 화두이기도 한데 우리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회사도 성장할 수 있고, 이해관계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제 기업이 이윤 추구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돈 버는 것’에서 ‘구성원 전체의 행복 추구’로 바꾸고 있고, 여기서 말하는 구성원은 우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 주주, 사회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요. 더불어 평소 ‘도전과 개척 정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SK그룹의 모태인 SK네트웍스 태생 자체가 한국전쟁으로 폭격된 공장에서 불타버린 직기들을 재조립해 이루어졌고 우리나라 최초의 직물 수출, 폴리에스터 제품 출시 등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역사가 있지요. 그동안 수많은 위기와 역경을 특유의 DNA로 극복해왔고,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은 홈케어와 모빌리티 중심의 미래 성장형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구축에 성공하였습니다. 여전히 국제적인 불안 요인이 심화되고 있고 내수 침체 등 국가 경제가 불투명하지만,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과감히 나선다면 오히려 혁신과 지속 성장의 길을 여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소망이 있다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나눔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더 널리, 더 멀리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은 기부 규모로만 따지면 많은 성장을 이루었지만, 아직 세계에 나눔의 저변이 확대되지 않은 곳이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세계공동모금회(United Way Worldwide) 리더십위원회의 유일한 아시아 출신 멤버로서 어떻게 하면 아태 지역의 나눔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고 앞으로 필요한 역할을 다해나가려고 해요. 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발맞춰 국내 자선 생태계도 진화하고 발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선과 기술이 접목되면 나눔을 더 쉽고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르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나눔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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