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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여왕들의 워맨스, 김희애와 문소리의 연대

최현수 비슬라 에디터

2023. 04. 24

모두가 진정으로 기다렸던 조합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드라마 퀸 김희애와 영화 퀸 문소리가 처음으로 한 프레임에서 연기 호흡을 맞췄다. 

‘퀸메이커’의 두 주인공, 김희애와 문소리.

‘퀸메이커’의 두 주인공, 김희애와 문소리.

200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문소리와 1984년 조명화 감독의 영화 ‘스무해 첫째날’의 막내딸 역으로 데뷔한 김희애. 합친 연기 경력만 62년에 달하는 두 배우의 앙상블이 넷플릭스 ‘퀸메이커’를 통해 마침내 성사됐다.

문소리는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에 특별 출연하고 영화 ‘서울 대작전’의 강인숙 역을 맡은 바 있지만, OTT 시리즈의 주연은 처음이다. 김희애 역시 ‘퀸메이커’로 OTT 시리즈 첫 도전에 나섰다.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두 배우의 첫 만남에 많은 관심이 모인 가운데, 4월 11일 ‘퀸메이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문소리는 “어느 순간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극 중 ‘황도희’와 ‘오경숙’처럼 서서히 맞춰져 가는 순간을 느꼈다”고 김희애와의 연기 호흡 소감을 전했다.

4월 14일 전 세계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는 이미지메이킹의 귀재인 대기업 전략기획실 출신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동안 권력 암투를 그리는 정치드라마는 남성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퀸메이커’는 재벌부터 조력자까지 여성들의 연대와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를 그리고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김희애는 “예전에는 주로 남성이 많이 나오는 장르의 작품이 워낙 많았던 터라 (이런 작품을 하기 위해) 남장이라도 해서 출연하고 싶다 할 정도로 부러워했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드라마 퀸×영화 퀸의 만남

김희애와 문소리의 조합이 왜 이제야 성사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문소리는 주로 영화 위주의 활동을 한 반면, 김희애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연기 합을 맞춰볼 기회가 없었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이후 임상수, 이창동, 홍상수, 김태용, 임순례 등 충무로의 유명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하며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은 대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과 ‘바람난 가족’ ‘오아시스’ ‘효자동 이발사’ 등 2000년대 충무로는 문소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김희애는 당시 7년 가까운 공백기를 지나 2003년 ‘아내’를 시작으로 ‘완전한 사랑’ ‘부모님 전상서’ ‘내 남자의 여자’ 등 연이은 드라마 시리즈의 흥행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특히 지고지순한 순정파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파격적인 불륜 연기를 선보인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그녀는 2007년 SBS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문소리와 김희애는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4년 김희애는 20년 만의 영화 복귀작 ‘우아한 거짓말’을 필두로 ‘쎄시봉’ ‘사라진 밤’ 등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특히 2018년과 2019년 각각 ‘허스토리’와 ‘윤희에게’를 통해 여성 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그녀의 커리어에 새로운 변곡점을 찍었다.

문소리 역시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 이후로 ‘라이프’ ‘미치지 않고서야’ 등에 얼굴을 비치면서 스크린이 아닌 TV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를 마련했다. 물론 2007년 ‘태왕사신기’에서 주연급 배역을 맡은 바 있었지만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21년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오랜만에 주연을 맡아 호연을 펼치며 담백한 직장물의 매력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대 이후 두 배우가 드라마, 영화 가릴 것 없이 호연을 펼치기 시작한 덕분에 비로소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에서 김희애와 문소리의 앙상블이라는 조합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불과 얼음의 시너지

4월 11일 ‘퀸메이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희애와 문소리.

4월 11일 ‘퀸메이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희애와 문소리.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던 김희애와 영화계를 주 무대로 삼았던 문소리가 각자 활동 범위를 넓힌 것처럼, ‘퀸메이커’에서 두 사람이 연기한 황도희와 오경숙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출발해 하나의 목표로 뭉친다. 은성그룹 전략기획실장으로 재벌가의 이익을 위해 투신하는 황도희와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을 불사하는 인권변호사 오경숙. 물과 기름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는 결코 연대가 없을 것 같았다. ‘퀸메이커’를 연출한 오진석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마치 “불과 얼음” 같다고 말했다.

황도희와 오경숙은 첫 만남부터 서로 얼굴을 붉힌다. 은성백화점 옥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단식투쟁을 이어 나가는 오경숙에게 황도희는 수십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 협박한다. 오경숙은 이에 지지 않고 그녀를 대기업의 더러운 일까지 봐주는 존재라며 “황변”이라고 조롱한다. 불과 얼음 같은 두 인물은 절대 함께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오 감독은 “황도희는 어떠한 경우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얼음 같은 존재”라며 “킬힐 등의 스타일을 통해 얼음이 부서지더라도 절대 녹지 않는 이미지를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희애는 “황도희는 은성그룹을 떠난 후에도 킬힐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며 “킬힐은 자기를 지키는 갑옷”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오 감독은 오경숙에 대해선 “불의를 대할 때 물불을 가리지 않기에, 뜨거운 에너지를 지닌 불을 상징한다”며 “다만 누군가를 태우는 불이 아닌 주위를 따스하게 만드는 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상반되는 이미지의 두 여성은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다. 불과 얼음이 함께하는 순간 서로의 기세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2배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얼음은 불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지는 법을 배우고, 불은 얼음처럼 흔들리지 않는 완고함을 지니면서 무모해 보이는 선거에서 오경숙과 황도희는 판을 뒤흔드는 게임체인저가 된다.

제작발표회에서 정치드라마를 제작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냐는 질문에 오진석 감독은 “문지영 작가와 처음 이 드라마를 기획할 때 로그 라인을 영화 ‘델마와 루이스’로 잡고 끝까지 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문소리 역시 “여배우들이 한데 모여 이렇게 앙상블을 보인 것이 ‘우생순’ 이후로 처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언급한 작품은 여성들의 연대라는 키워드로 엮인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두 여성의 우정과 모험을 다룬 리들리 스콧의 대표작 중 하나. ‘우생순’ 역시 여성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퀸메이커’에는 김희애와 문소리 외에도 다양한 여성 배우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역할은 선한 인물부터 악역, 재벌까지 한계가 없다. 극 중에서 오경숙의 경쟁 상대로 등장하는 백재민 역의 류수영과 그의 조력자 칼윤 역의 이경영을 제외하면 핵심적인 역할은 모두 여성의 몫이다. 특히 은성그룹의 회장 손영심 역의 서이숙과 화수 이모 역의 김선영은 대작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우다. 독립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옥자연과 김새벽도 ‘퀸메이커’에 참여했다. ‘퀸메이커’는 서사 안에서도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수많은 여성 배우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희애 #문소리 #퀸메이커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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