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원을 투자해 구입한 독일산 핸드 그라인더 ‘코만단테’. 그라인더를 ‘명품’으로 만드는 수제날. 손으로 직접 핸들을 돌려 커피콩을 가는 재미 또한 소소한 행복이다(왼쪽부터).
나는 평소 카페 핸드드립커피를 즐긴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핸드드립커피를 집에서도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우연은 가끔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때마침 누군가가 홈 카페 세트를 선물한 것. 핸드드립 입문자용 10만원대 전동 그라인더가 들어 있었다.
로스터리를 겸하고 있는 카페는 현장에서 원두를 구입하면 같은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커피 한잔을 서비스한다. “집에서도 이런 맛이 나야 제대로 한 겁니다”라는 일종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셈. 기자는 유명 로스터리 카페에서 원두를 구입하며 커피를 마셨다. 컵 노트에 쓰인 대로 체리 맛이 도드라지는, 주스 같은 한 잔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집에 도착해 그라인더에 콩을 갈았다. 결과물은 판이했다. 캐릭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의 커피가 내려졌다. 처음엔 나의 핸드드립 숙련도가 부족해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카페에서의 상담, 유명 바리스타들의 유튜브 채널 시청 끝에 원인은 그라인더의 성능 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커피콩이다. 재료의 질이 떨어지면 좋은 요리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재료의 맛을 온전하게 살리는 장비가 없으면 좋은 재료를 구입한 의미가 없어진다. 좋은 그라인더는 균일하게 콩을 분쇄한다. 금속 날이 커피 성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두 조건이 만족돼야 커피콩의 성분이 온전히 추출돼 캐릭터가 살아 있는 커피가 내려진다.
고민 끝에 내가 구입한 그라인더는 ‘코만단테’ 핸드 밀. 코만단테는 독일의 커피 전문가와 장인이 협업해 만든 그라인더다. 금속 날을 수작업으로 깎기에 대량생산이 어렵다. 전문가들의 평은 뛰어나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여러 바리스타가 세계대회에 들고 간 그라인더이기도 하다.
그래도 입문자에게 37만원은 부담이다. 수백만원까지 하는 그라인더 중 내가 꼭 집어 코만단테를 고른 이유는 카페의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는 최저가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수동 핸드 밀 방식이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코만단테와 성능이 비슷한 전동 그라인더 가격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코만단테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가져다줬다. 수동의 수고스러움은 오히려 재미로 다가왔다. 서걱서걱 가는 손맛이 남다르다. 원두를 으깬다기보다 잘라낸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과물도 ‘모범 답안 커피’에 근접하게 나온다.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해도 실점하지 않으면 최소한 지지는 않아서다.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면 홈 카페는 그라인더 놀음이다. 그라인더가 좋으면 초보가 커피를 내려도 준수한 퀄리티가 보장된다.
홈 카페를 시작하려는 계획이라면 많은 장비들 중에서 그라인더에 가장 많은 예산을 배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다른 장비는 저가여도 준수한 성능을 내지만 그라인더는 비용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홈카페 #코만단테 #핸드드립 #여성동아
오홍석의 Drinkology
마시는 낙으로 사는 기자. 시큼한 커피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 안 가리고 찾는다. 술은 구분 없이 좋아하지만 맥주와 위스키를 집중 탐닉해왔다. 탄산수, 차, 심지어 과일즙까지 골고루 곁에 두는 편. 미래에는 부업으로 브루어리를 차려 덕업일치를 이루고자하는 꿈이 있다.
사진 오홍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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