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 첫 등장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 스타가 몇 명 있다. ‘마지막 승부’의 심은하, ‘내일은 사랑’의 고소영, ‘사랑의 기쁨’의 이미연이 그랬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분위기와 신인이면서도 흠잡을 데 없이 청순하고 세련된 외모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셋 가운데 데뷔가 가장 빠른 이미연(41)은 198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스 롯데로 선발됐으며 이듬해 ‘사랑의 기쁨’을 시작으로 ‘빙점’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 그와 함께 영화 ‘회사원’에 출연한 곽도원(38)은 시사회에서 “이미연 선배 때문에 영화 출연을 결심했노라”고 고백했다. 학창 시절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들고 다니던 이미연과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영광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미연의 외모는 흠잡을 데 없었다. 곽도원은 “실제로 뵈니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예쁘다”라며 추켜세웠다. 검정색 원피스에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이미연은 외모에 대한 칭찬이 나올 때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외모 찬사에 흥분해 다음 질문을 잊기도 했다. 상투적인 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라고 한다.
“여전히 외모에 대해 칭찬해주시니 고마운 일이죠.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바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 위해서도 어제부터 스킨케어를 받고 손톱 발톱 손질하고, 공을 많이 들였답니다.”
일찍 결혼해 자녀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 보면 부럽기도
메가폰을 잡은 임상윤(34) 감독도 “제가 원래 이미연 씨 팬이라 등장인물 이름도 유미연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2007년 ‘어깨 너머의 연인’을 끝으로 스크린을 떠났던 이미연이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온 것도 임 감독의 끈질긴 구애 때문이었다.
“감독들이 캐스팅할 때 ‘당신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죠. 한때 그런 말에 흔들리기도 했는데, 다른 배우에게 갈 뻔한 배역을 맡아 더 잘된 적도 있고, 캐릭터와 배우는 운명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의 경우엔 감독님의 진심이 느껴졌고, 기존에 했던 배역들이 모두 강한 역이라 변화를 주고 싶어 선택했어요. 소지섭 씨한테 묻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회사원’은 금속 제조 회사로 위장한 살인청부업체의 킬러 지형도(소지섭)가 평범한 인생을 꿈꾸게 되면서 벌어지는 조직과의 사투를 그렸다. 이미연이 맡은 유미연은 지형도가 다니는 회사의 아르바이트생인 훈(김동준)의 엄마로, 한때는 촉망받던 가수였지만 아이를 낳은 뒤 홀로 넉넉지 않은 삶을 꾸려가는 인물. 이미연은 이 배역을 위해 처음 기타와 재봉틀을 배웠다. 하지만 김동준처럼 장성한 아들을 둔 엄마로 출연하는 건 여배우로서 좀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현대극과 사극이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라마 ‘명성황후’ 때는 극 중 아이를 넷이나 낳았어요. 10년 전 그런 역을 했기 때문에 장성한 아들이 있는 배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색하거나 그러진 않더라고요. 지금 어딘가에 동준이처럼 잘 자라준 아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 친구들 중에 일찍 결혼한 이들은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친구처럼 지내더라고요.”
패션 PPL 같은 외적인 부분보다 연기로 승부하고 싶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이미연의 성격이 ‘반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예가에서 이미연의 별명은 ‘여자 최민수’. 다혈질에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모습은 후배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애교가 많고 여성스럽더라는 것.
곽도원은 “별명 때문에 첫 만남부터 바짝 긴장을 했다. 소지섭 씨가 회식을 시켜준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밥을 먹었다. 20분쯤 이야기해보니까 편안해지더라”고 말했다. 김동준도 “사실 우리 또래에게 이미연 선배는 국모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엄청 무서울 줄 알았는데 누나처럼 대해주더라. 애교 많은 모습에 놀랐다”고 전했다.
이미연의 터프한 이미지는 이혼, 명성황후 중도 하차 같은 사건들과 함께 MBC ‘무릎팍도사’등 토크쇼에 출연해 거침없이 솔직한 발언들을 내뱉은 탓에 생겼다. 이미연도 지난해 영화 잡지 ‘시네21’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혼자 되고 드라마 ‘명성황후’를 하고 나서 이미지가 그렇게 잡힌 것 같다. 스스로 성격이 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세진다”면서 “기가 세야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집중을 못하는 배우는 별로다. 요즘 시대가 연기 외에 다른 것으로도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라는 걸 인정하지만 그래도 기본을 무시하고 패션이나 트렌드를 좇기에 급급하다거나 다른 외적인 목표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는 게 눈에 보일 때 애석하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이미연은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패션이나 PPL로 화제가 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이미연은 “지난 작품을 다시 보면 난 약간 후회가 될 정도로 메이크업이나 의상에 설정이 없다. 연기할 때 속눈썹 붙이거나 부자연스럽게 진한 입술 화장을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처음엔 이번에는 달리 가보자고 설정했다가도, 좋은 연기가 있고 그다음에 헤어, 의상, 메이크업이 있는 거라는 생각에 결국은 또 편안한 스타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아름다운 외모 뒤에 감춰진 이미연의 진지함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섯 살 연하의 소지섭과 담백한 멜로 연기를 펼친 이미연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 열심히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이미연, 그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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