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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언니들의 행복찾기 1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악착같이 살았지만 남은 건 우울증, 나를 찾기 위해 중국행”

글 | 권이지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입력 2012.11.16 11:22:00

올봄 이혼한 조혜련이 첫 공식석상으로 방송 대신 강연을 택했다.
여자들에게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행복에 더 닿는 것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돌싱’이 돼 우리 곁으로 돌아온 조혜련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과 명예가 아닌 나를 위한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지난 4월 남편 김모(45) 씨와 13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후 훌쩍 중국으로 떠난 개그우먼 조혜련(42)이 돌아왔다. 8월 말 동생 조지환(34)이 출연한 영화 ‘미운오리새끼’의 홍보를 도운 것 외에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나선 건 10월 13일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에서 열린 ‘원더우먼 페스티벌’이 처음이다. ‘원더우먼 페스티벌’은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북돋워주기 위해 강연, 공연, 놀이, 힐링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행사다.
그는 “마흔셋에 돌싱이 된 조혜련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공원이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와 응원이 쏟아졌다. 순간 그의 얼굴에 고마움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여섯 달여의 은둔 생활을 접고 나온 그에게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조혜련은 고개 숙여 화답하며 행복하지 않아 죽음까지 고민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날 동생 조혜숙(39) 씨도 언니를 응원하러 무대 위에 함께 나타났다. 조혜숙 씨는 중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언니가 삶에서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중국에서 말 그대로 보통 사람이 됐죠.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2천~3천원 정도 쓰면서 자전거 열심히 타고 건전하게 살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었어요. 그동안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을 맘껏 발휘하면서 지냈죠. 함께 지내는 동안 제가 언니에게 미션을 줬어요. 언니가 ‘미래일기’라는 책과 자서전을 썼잖아요. 거기 있는 걸 중국어로 중국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고 했죠.”

왜 사서 고생하나 생각하니 우울증 생겨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호랑이 중국어 선생님으로, 든든한 지원군으로 어려운 시간 함께해준 동생 덕분에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조혜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조혜련 하면 가장 먼저 악바리 이미지가 떠오른다. 날 때부터 전쟁 같은 환경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난 조혜련은 출생부터 부정당했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그는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의 어머니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까지 딸을 낳았다.
“넷째가 마지노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가졌죠. 태몽을 꿨는데 100% 남자였대요. 어머니는 열 달 동안 남자라는 확신을 갖고 태교를 했습니다. ‘야는 남자 같다. 야가 집안을 일으킨다잉’ 하고요. 달 채우고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 머리부터 장군감이더래요. 그런데 나왔더니 아래에 원하는 게 없던 거죠. 그래서 ‘조용히 가라’ 하곤 엎어놨답니다. 참 생명도 질겨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호흡하고 살았습니다. 여섯, 일곱째도 딸입니다. 여덟 번째가 돼 드디어 아들(조지환)이 태어났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은 꿈도 못 꿨다.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이었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고 스스로 자라야만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자립심이 생겼단다. 부모는 고등학교도 많이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조혜련은 조금 더 욕심 내 대학에 가고 싶었다. 둘째 언니에게 돈을 빌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의 꿈이던 연기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와는 전혀 달랐다. 개그맨 시험도 세 번이나 낙방했다.
“김국진 씨랑 콤비로 시험을 봤는데 저만 떨어졌어요. 제가 왜 떨어졌냐고 당돌하게 물어봤죠. ‘얼굴이 방송용이 아니다. 머리는 크고, 팔다리 짧고 오버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때는 개그를 몰랐으니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고민했죠.”
3전 4기 끝에 1992년 ‘KBS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한 조혜련은 행복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에는 CF 많이 찍고, 계절마다 돌아오는 방송 개편 때 잘리지 않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 끌고 다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일본 방송에 도전했다. 일주일에 여섯 번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아무도 오라고 한 사람 없는데 명함까지 돌리며 일을 하기 위해 일본에 머물렀다. 하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은 곳에서 악착같이 일본어를 공부하며 버텼지만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가 추락해서 조용히 삶이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
“왜, 조혜련이란 사람은 사서 고생하나 하고 자책했어요. 우울증이 왔죠. 같이 있는 가족들도 힘들었겠죠? 너무 괴로운데 죽지 못하니 이 악물고 책을 읽었습니다. 두 달 동안 거의 70권을 읽었죠. 자기계발서란 이름을 단 책은 모조리 읽었어요.”
책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다진 그는 2009년 ‘조혜련의 미래일기’라는 책을 냈다. 이듬해에는 ‘열렬하다 내 인생’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내면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이야기에 힘을 얻은 사람들이 늘었고, 개그우먼으로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무대가 아닌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꼈다.



“3~4년 동안 강연을 수백 회 한 것 같아요. ‘세바퀴’나 이런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음을 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강연은 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산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는 거잖아요. 어려운 길, 괴로운 길 대신 내가 지름길을 알려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열정적으로 살던 그는 중국어에 도전했다. 중국 인구가 14억이나 있는데, 우리나라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고, 앞으로의 잠재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중국에서 지내던 그는 2012년 4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로는 동생 조혜숙 씨와 함께 공부에만 매진했다. 자신을 알아볼 만한 한국 사람들이 거의 없는 작은 마을에서 노자와 장자, 공자 등 중국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여행가 한비야를 만나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이 뭘까, 다시 복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그러곤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자신의 대표곡 ‘아나까나’를 열창하는 조혜련. 공연이 끝난 뒤 ‘가사하나 안 까먹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축복받은 탄생은 아니지만 악착같이 살아왔고, 또 삶의 의지가 한풀 꺾이며 남모르는 고통의 시간을 살아온 조혜련은 힘들고 나서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에게 힘을 준 책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라고. 책을 읽으며 조혜련은 남보다 작고 못나게 태어났고, 머리도 크다며 나를 미워한 자신을 되돌아본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여러분 잘 생각해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굴까요? 나예요. 그런데 누가 제일 싫어할까요? 나예요.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내 인생이니 내가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나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다리는 짧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돈도 없고, 삶이 괴로워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이 싸움은 죽어야 끝나요. 미리 죽을 분 계시나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내 마음과 타협합시다. 내면의 내게 사랑한다고 하면서요.”
그는 오른손을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에 얹고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섯 번 ‘ㅇㅇ야 사랑한다’라고 말하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미워했는지 나에게 사과하고 그 자리에 사랑의 에너지를 넣어주라는 이야기였다. 마구 대한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보듬어 주라는 것. 그는 자신이 기적적으로 삶의 의지를 갖게 된 것처럼 최근 싸이와의 다툼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가수 김장훈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아무리 좋은 강연을 들어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남자 친구랑 싸우고 남편과 싸웠을 때 스스로에게 ‘넌 느낌이 어때?’라고 물어보며 마음을 다스립시다. 나와 대화하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꼭 불어 넣어주길 바랍니다.”

독서는 행복한 삶을 위한 초석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조혜련은 이날 동생 조혜숙 씨와 함께 중국 생활 이야기를 털어놨다.



조혜련은 이혼 후 떠난 중국 유학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 있다고 한다. 칩거하는 동안 여러 책들을 읽으며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다는 것. 그중 하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법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행해져요. 남의 생각에 따라 내 생각이 바뀌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죠.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인생론’에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것은 내 행복의 10%도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남의 생각도 필요하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이니까.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남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행복의 80%를 차지해요. 그래서 내가 없어요. 나를 찾으려면 남의 시선을 내려놓으세요. 중국에 있으면서 나를 내려놓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내 행복을 찾으려면 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아파트에 사는 등 풍요로운 것도 좋지만 이것은 행복을 위한 한 가지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깨치는 것이라고.
“친구들과의 수다로 문제가 해결이 안 돼 비싼 돈 들여 심리치료사를 만나러 가잖아요. 하지만 그들의 말은 책에 다 있어요. 우리가 고민해온 것은 고대, 중세, 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민해왔던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어려워요, 안 맞아요’ 하면서 멀리해요. 그러면 안 돼요. 행복하려면 의식 지수가 4백 이상은 돼야 해요. 7백~1천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 맹자, 부처님, 예수님이죠. 우리는 2백이에요. 이 정도 수치로는 진정한 행복을 못 느껴요. 여러분 책을 읽으세요. 책을 읽으면 우리 의식이 깨어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혼 아픔 딛고 돌아온 에너자이저 조혜련


조혜련은 40분간의 짧고 굵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중국어 공부를 하다 큰 감명을 받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공부하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아무도 이 사람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아 죽기 위해 해변에 갑니다. 물속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하는데 노인이 와서 보더니 ‘왜 그러느냐’ 물어요. 그러자 청년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내가 살 가치가 없다’고 해요. 그러자 노인이 바닥에 있는 모래를 하나 들었다가 떨어뜨려요. 청년에게 ‘당신이 떨어뜨린 모래를 찾아보라’ 고 하니 못 찾아요. 노인이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진주를 떨어뜨려요. 진주는 바로 찾을 수 있었죠. 노인이 이어 말해요. ‘넌 아직 진주가 아니고 모래다’라고요. 누구든 알아주는 진주가 되고자 저도 살면서 쭉 고민할 겁니다. 모래가 더 작은 모래가 되더라도 마지막엔 진주가 꼭 돼서 인생 마무리하자고요.”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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