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을 빼기 위해 얼마나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요?”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중1부터 통하는 통 공부법’(팜파스)을 펴낸 학습법 전문가 이지은 씨는 뜬금없이 운동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뱃살과 이별하기 위해 세웠던 계획들, 줄넘기·윗몸일으키기·자전거 타기·다양한 채식 식단… 하지만 여전히 뱃살은 오랜 친구처럼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오랫동안 했다면 대단한 결심이 있었겠지요. 어떤 일이든 뚜렷한 목표와 꼭 해야 한다는 결심이 있을 때만 가능하죠.”
이씨는 김연아와 박태환 선수를 예로 들었다. 본인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미친 듯이 훈련을 했기에 이들이 오늘의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공부도 운동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자기주도학습은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연습입니다. 공부 시간, 감정 등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미래에 자기가 원하는 삶은 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자기주도학습 시작은 초등 4학년부터
이지은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교과목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이때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 중학교 이후의 성적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초등 고학년이 시작될 무렵은 사춘기가 서서히 고개를 드는 시기다. 부모와 가깝고, 부모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 나이다.
시작 시기가 너무 늦어도 곤란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부모의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워진다. 여자아이들은 엄마에게 말하기 싫은 비밀이 생기고, 남자아이들은 엄마가 목욕탕에 등을 밀어주러 들어올까봐 욕실 문을 잠그기 시작하는 시기다. 갑작스럽게 부모와 멀어지려는 아이들. 아이들은 2차 성징과 함께 변화를 시작했지만 엄마는 늘 그 자리다. 결국 당황스러운 사람도 엄마다.
“대화의 끈을 놓치면 안 됩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해야죠. 어른들이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아이가 시작한 것일 뿐이에요.”
대화를 이끄는 방법은 어때야 할까. 공부가 하기 싫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때마다 야단치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많은 고민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건 엄마나 아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질문이 하나 생겼다고 해서 네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아이도 이해를 할 겁니다. 대신 부모는 솔직한 자세로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할 거예요.”
많은 학부모들은 자기주도학습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과외도 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씨는 자기주도학습은 스스로 공부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 아무 도움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저러한 공부를 위해 얼마간의 학원 공부가 필요하겠다, 이 단원은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게 좋겠다는 식의 계획을 짜는 것도 자기주도학습의 연장이다.
그는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은 부모와 아이의 신뢰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부모가 공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가 실천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을 찾고, 자녀가 그 방법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소중하단다” 같은 따뜻한 말로 아이를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주도학습은 혼자 다 알아서 하는 거야’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선 안 돼요. 실제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자녀의 자기주도학습력에 차이가 나요. 부모에게 애정, 자율, 성취를 느끼는 학생일수록 학습력이 높게 나오죠.”
성적표 분석하고 공부 계획 짜는 것부터 시작
자기주도학습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동안 보던 책이나 학습지, 다니던 학원을 바꾼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스스로 책상에 앉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일상, 학교생활, 매일 푸는 학습지에 대해 마음과 태도를 달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에서 매긴 성적이 아닌 아이에게 스스로 성적을 매겨보게 하세요. 아이는 시간이 부족했다, 열심히 했는데 공부법을 몰랐다,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다양한 평가를 내릴 겁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의논하는
거죠.”
의외로 해결 방법이 간단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듯하다. 아이가 자기에게 유리한 변명만 늘어놓아도 부모가 화내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부모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아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목표를 설정하면 어떨까. 무턱대고 높은 목표를 정하지 않게 조언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어떻게 채울 것인지 같이 의논해준다면 어느새 아이도 진심을 털어놓지 않을까.
학습계획표를 짜는 것도 중요하다. 이지은 씨는 회사원처럼 주간, 월간 단위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신 매일 자투리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며, 그것이 쌓여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도록 실천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계획표를 세우는 방법도 아이마다 다르다. 수학, 영어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운동, 악기를 배우는 아이 등 스케줄을 체크해 모두 계획표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학원에 가는 것도 공부 시간에 포함된다.
“예습과 복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일계획표에서 반드시 시간을 정해둬야 합니다. 그날 배운 것을 그날 복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할 요소는 자기 공부 시간입니다. 무조건 자기가 시간과 과목을 정해야 해요. 선택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이씨는 초등생의 경우 복습할 때 아이가 학교 수업을 확인하는 느낌을 주게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가 배운 것을 부모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때의 희열을 느낀 아이는 저절로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된다. 아이가 그런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자기주도학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자기주도학습을 잘 해낼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봐요. 스스로 무언가 해내려면 그것을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하거든요. 따라서 아이들이 한 가지만이라도 잘하는 것이 있고, 이를 스스로 발견했다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잘하는 것 하나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다 보면 그와 연관되는 또 다른 일을 잘 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아이의 자신감을 향상시켜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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