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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명문가의 비결

아버지 홍진기 회장의 남다른 자녀교육

삼성 홍라희 여사, 주미대사 홍석현 등 6남매 모두 최고로 키운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중앙일보 제공

2005. 07. 14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홍석현 주미대사 등 6남매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엘리트로 성공하기까지에는 아버지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남다른 자녀교육이 있었다. 홍진기 회장의 ‘엘리트로 키운 자녀교육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버지 홍진기 회장의 남다른 자녀교육

서울대 유민홀 개관식에 모인 홍씨 일가. 왼쪽부터 홍석현 주미대사, 홍라희 리움 관장, 고 홍진기 회장 미망인 김윤남 여사, 홍석조 광주고검장, 홍라영 리움 수석부관장과 남편 노철수 박사. 정가운데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지난5월 열린 ‘제8회 전국박물관인대회’에서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수석부관장(45)이 박물관·미술관 발전유공자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세계적 수준의 삼성미술관 리움 설립에 힘쓰고,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2004 서울 세계박물관대회(ICOM)’의 현대미술분과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한국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그는 미술계에선 대표적인 현대미술 전시기획자로 명성을 떨쳐왔다.
그의 수상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고(故) 유민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집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장녀 홍라희 리움 관장(60)이 우리나라 최고 재벌인 삼성그룹의 안주인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또한 지난 2월 주미대사로 부임한 장남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56)은 차기 유엔사무총장,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차남 석조씨(52)는 광주고검장, 삼남 석준씨(51)는 삼성SDI 부사장, 사남 석규씨(49)는 보광그룹 회장으로 6남매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 어느 집안 못지않은 명문가를 이룬 셈이다.
유민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법조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서울대에서 2003년 새로 단장한 법학동 로비를 후학들이 그의 공로를 기리고 본받으라는 의미로 ‘유민홀’이라고 명명했을 정도. 그는 또한 경영인으로, 언론인으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7년 태어나 86년 작고한 유민은 40년 경성제국대(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일제 강점기 때 판사를 지내다 해방 뒤 대검 검사로 활동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엔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이로 인해 4·19 혁명이 일어난 뒤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때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그를 면회하고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평생 인연을 맺었다. 감옥에서 나온 후부터 평생 경영 파트너로 동고동락했을 뿐 아니라 유민의 장녀 홍라희씨와 이병철 회장의 삼남 이건희씨가 혼인, 사돈관계를 맺은 것.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유민과 상의했던 이병철 회장은 86년 유민이 타계하자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유민은 공식적으로는 66년부터 86년까지 중앙일보를 경영한 것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삼성그룹은 이씨 가문과 홍씨 가문이 키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 유민은 특히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건희 회장을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시켰고, 이병철 회장의 후계 구도에도 깊이 관여해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독서의 중요성 강조하고 칭찬으로 동기 부여

그런데 유민 집안이 원래 명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결혼할 때 처가에서 그의 집안을 보고 탐탁지 않아 했을 정도. 따라서 그가 오늘의 명문가를 일군 데에는 남다른 자녀교육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사에서 출간된 ‘유민 홍진기 전기’를 토대로 그의 특별한 자녀교육법을 살펴보았다.

아버지 홍진기 회장의 남다른 자녀교육

유민의 자녀교육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독서를 들 수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 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4·19혁명 후 옥고를 치를 때도 당시 갓 중학생이 된 장남 석현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독서를 많이 한다니 좋은 일이다. 요즘 아버지는 플루타르크 영웅전, 한중록, 백만인의 성서 등을 읽었는데 무척 좋았다. 너도 읽어보아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고 권했다. 또한 같은 해 대학생이 된 장녀 라희씨에게는 “사람의 일생에서 말을 배우는 5~6세 때와 철학을 배우는 18~19세 때, 이 두 시기가 정신과 지식이 가장 크게 발달한다. 이때 배운 것이 거의 일생을 지배한다. 힘껏 독서하라”고 강조했다.
석현씨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를 받고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에서 근무하기 직전이었다. 안부전화를 건 유민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석현씨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 한 달도 채 안되고 입사 준비와 이사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때여서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기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유민은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며 호되게 질책을 했는데 석현씨는 “이때처럼 크게 혼난 적은 없다”고 회상한다.
유민은 독서를 강조하지만 어느 책을 읽으라고 정해주지 않고 자율적으로 맡기는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항상 살피고, 그 책을 끝까지 읽도록 당부했다고.
또한 석현씨에 따르면 유민은 자녀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시사성 있는 문제나 세상이야기, 정치·경제·세계 문제를 주제로 삼아 자녀들의 의견을 묻고 자연스럽게 토론을 이끌었는데 이를 통해 자녀들의 관심과 의식을 살폈다는 것. 이때 유민은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설령 누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도 가르치려 하거나 말을 중간에 막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고 한다.
유민은 토론을 할 때뿐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꾸중을 하거나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꼭 이래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지도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자녀 스스로 판단해서 잘할 때까지 지켜보는 스타일이었다고. 유민은 생전에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지는 것이지 자식이라도 부모가 그 됨됨이를 만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유민은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자녀들이 잘한 것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칭찬을 통해 아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라희씨에게는 “네가 찍어 보내준 사진이 아주 우수하다”고 격려하고, 막내 라영에게는 “사진에 나온 모습이 여전히 귀엽다. 풍부한 표정이 이 다음 장래의 확실한 개성을 의미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자녀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45년 라희씨가 태어나자 “매일 아침 딸을 목욕시켜주고 출근하는 게 즐거움”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식사랑이 극진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늘 자녀를 잘 키워온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원불교 신자인 부인을 위해 새로 집을 지을 때 기도실을 따로 만들어줄 정도로 아내 사랑이 극진했다고 한다.
아버지 홍진기 회장의 남다른 자녀교육

고 홍진기 회장과 홍라영씨의 단란한 모습.


홍라희, 홍라영 두 딸이 미술에 관심이 많고, 손녀들까지 미술과 인연이 많은 것 역시 유민의 영향이 크다. 유민의 지인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가족들도 유민이 문학과 예술을 사랑해서 음악회나 전시회를 자주 가는 것은 물론 때때로 직접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석현씨는 자신이 중학교 때 미술숙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채 완성하지 못했던 걸 아버지가 마무리를 해준 적도 있다고 말한다. 유민은 미술작품을 보는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6남매 모두 수백억원의 재산 보유



한편, 홍씨 일가는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한 중앙일보 외에 보광그룹을 소유하고 있다. 보광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겨울마다 스키를 즐기기 위해 찾는 곳으로 유명한 보광휘닉스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주)보광을 비롯해 편의점으로 기반을 잡은 보광훼미리마트, 코스닥 상장회사인 휘닉스PDE 등 9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업계에선 계열사들이 모두 상장을 하면 당장 20대 그룹 반열에 들 것으로 보고 있다.

홍씨 일가 형제들의 재산관계를 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각 형제들에게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업이 하나씩은 골고루 배분돼 있는 것. 지난 2월까지 중앙일보 회장을 지낸 장남인 홍석현 주미대사는 중앙일보 최대 주주이고, 차남 홍석조 광주고검장은 보광훼미리마트의 최대주주다. 삼남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보광창업투자의 최대주주, 막내 홍라영 리움 수석부관장은 휘닉스벤딩서비스의 최대주주, 사남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주)보광과 휘닉스PDE 등 나머지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되어 있다.
지난해 휘닉스PDE가 코스닥 상장을 하면서 주가가 뛰어올라 올해 초 고위 공직자 재산등록에서 광주고검장으로 있는 차남 석조씨가 80여억원이 늘어난 2백74억원의 재산을 신고해 화제를 모았다. 휘닉스PDE는 형제들이 비교적 고루 주식을 나눠 갖고 있어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나머지 형제들도 최소 1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른 계열사들도 주식시장에 상장될 경우 재산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장녀 홍라희 여사는 개인 재산이 5천7백50억원, 장남 홍석현 주미대사는 7백3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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